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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작가 Feb 25. 2021

뜨거웠던 그대여, 안녕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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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째 잘 쓰고 있던 에스프레소 머신이 지속적으로 이상 메시지를 띄워 열심히 청소했는데 청소가 다 끝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결착부가 이상하게 결착이 되지 않는다. 매뉴얼을 다시 읽어보고 여러 영상을 보면서 따라해 보아도 번번이 실패다. 아주 살짝만 힘을 주어도 결합되던 과거와 달리 아무리 힘을 주어도 제대로 결착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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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만원을 주고 샀던 것으로 생각했던 기기를 7년 정도 썼고, AS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우엔 보통 꽤나 비싼 수리비를 물게 되어 차라리 새 제품을 사는게 유리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 이제 이 녀석을 보내주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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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분이 묘하다. 나는 아주 가끔씩 내가 애착을 들여가며 사용했던 물건들을 판매하거나 수명이 다 하여 버리게 될 때 묘한 감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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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아하는 휴대폰 태블릿 등을 팔 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런데 학창 시절 타고 다녔던 스쿠터를 판매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학교를 누비던 기억, 때로는 혼자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앞뒤로 앉아 바람 맞으며 달렸던 기억.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다음 시험은 기필코 잘 보겠다고 스스로 꾹 다짐하며 집으로 향하던 새벽 밤. 처음 인수 받을 때 운전 할줄도 모르던 스쿠터를 끌고 비바람이 쏟아져 거의 울다시피 집으로 와놓고 무사히 도착해 그저 좋다고비에 홀딱 젖은 옷 대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 찍었던 기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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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과 전자 기기는 나만 쓰는 기기라서 다른 사람과 교류한 기억이 없었다면, 이렇게 한 곳에서 묵묵하게 자리를 지켜준 기기들에게는 묘하게 정이 들어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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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늘 습관적으로 누르던 전원 버튼, 에스프레소 4샷은 마셔야 제대로 하루를 시작하던 나를 위해 특히 원격 근무 동안 애써주던 녀석. 비 쫄딱 맞은 후배녀석을 크게 걱정하며 집으로 데려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건넸던 따뜻했던 커피 한잔. 밖에서 커피 사먹을거면 내 집에서 마시라고 너스레를 떨며 친구들을 불러와 떠들던 대화의 시간, 결혼식 때 축가 불러주어 고마웠다며 커피 두잔 앞에 놓고 서로에게 감사함을 표하던 시간, 소중한 사람에게 정성스레 음식 차려주며 함께 내놓았던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눈이 확 커지며 '맛있어' 라는 말을 들으면 흐뭇하게 미소 짓던 그런 모든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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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고장난 커피 머신을 보며 괜히 감상에 젖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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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뜨거웠던 그대여 이제 안녕.

그대가 있어 내 삶이 풍부했고, 진했고, 시원했고 아주 때로는 따뜻했어.

또 다른 머신이 오면 금세 잊혀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네가 나에게 선사했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은 결코 잊지 못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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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선을 다 했던 지난 시간 뒤로 하고 편히 쉬길.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던 네게 진심으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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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재성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하고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맥킨지(McKinsey & Company) 컨설턴트 생활을 거쳐 제일기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전략을 담당했다. 현재 카카오에서 전사 전략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슈퍼업무력 ARTS』 (도서출판 이새, 2020) 『행동의 완결』(안나푸르나, 2019)과 에이콘출판사에서 펴낸 『퍼펙트 프리젠테이션』(2012), 『퍼펙트 프리젠테이션 시즌 2』(2017), 『퍼펙트 슬라이드 클리닉』(2020)이 있다. 『퍼펙트 프리젠테이션』은 삼성전자와 제일기획 직원 프리젠테이션 교재 및 다수의 수도권 대학에서 프리젠테이션 주교재로 채택돼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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