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탈출: 상처받은 교사가 학교를 떠난 이유

by 플루토쌤

우주에는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하는 어둠의 구역, 블랙홀이 존재한다. 그곳에서는 중력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우리가 알고 있던 물리 법칙과 시간의 감각마저 무너진다. 교직 생활에도 그런 블랙홀 같은 시절이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그해 겨울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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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아주 사소한 어긋남이었다. 당시 학교장과 나는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어느 날, 합리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는 지시가 내려왔고 나는 오래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교장 선생님, 현실적으로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서서히 ‘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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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서 배제되는 일은 흔했고, 회의 자리에서는 투명 인간이 되었다.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상황도 묵묵히 견뎌야 했다.

소속은 분명 이 학교인데 나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는 느낌.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나는 깊은 물속에 잠겨 숨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버텼다.


가장 괴로운 것은 억울함이었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건 아닌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아무리 스스로에게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학교라는 견고한 중력장 앞에서 일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을 보며 버텨 보려 했지만 정작 내 안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의 빛이, 나의 에너지가 검은 구멍 속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블랙홀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선생님도 도움이 필요한 날이 있구나

교사는 늘 강해야 하고, 늘 아이들을 붙잡아 주는 존재여야 한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나 역시 상처받으면 피를 흘리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의 궤도 자체가 붕괴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였다. 살아야 했다. 교사로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나는 교실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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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은 도망이 아니었다. 구조 요청이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 나는 점점 성장했고, 다행히 우주는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내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궤도 밖에서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나의 활동을 오래 지켜보셨던 과학과 장학사님은 “선생님, 다른 일에도 도전해 봐요.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해 주셨고, 교육청 시절 인연을 맺은 정책연구소 연구사님은 전혀 새로운 길을 제안해 주셨다.


파견 근무.


학교 밖에서 교육 정책을 연구하고 지원하는 일. 나에게는 완전히 미지의 우주였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곳에서도 나는 여전히 교사일 수 있을까?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지금 이 블랙홀보다는 어디든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 그 블랙홀에 여러 선생님들이 빠지기 전에 돕고 싶다는 마음도.


그렇게 나는

2025년 3월, 그제야. 정들었던 교실을 뒤로하고 새로운 우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익숙한 교실, 왁자지껄한 복도, 창문 틈으로 스며들던 오후의 햇살. 그 모든 것이 그리울 걸 알면서도 나는 짐을 쌌다.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더 건강하게 만나기 위해, 나를 소모시키는 시스템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해 나는 필요한 만큼의 탈출 속도(Escape Velocity)를 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러나 속으로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블랙홀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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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막은 그렇게, 가장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