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잡아먹는 하마, 인공지능
1979년 3월 28일 새벽,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도핀 카운티의 스리마일섬의 원전 2호기가 이상에 빠진다. 열 교환기에 물이 공급되지 않으며 통제에 벗어나기 시작한 2호기. 직원들은 급히 노심냉각장치(ECCS)를 작동시키려 했으나, 운전원의 실수로 중지가 되고 말았으며, 이 작은 실수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증기는 빠르게 차올랐다. 압력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결국 파이프는 파열되었고, 냉각수 유출로 원자로 내부 온도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갔다. 결국, 핵연료봉은 서서히 녹아내렸고, 용융된 연료는 원자로 용기 하단까지 흘러들어 간다. 이로 인해 건물 내부 방사능 수치는 평소의 1000배까지 치솟는다.
16시간. 사고가 발생한 후 이 긴 시간 동안 상황 파악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관계자들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으며, 원자로의 방호장비마저 녹아내린다. 파국 직전의 상황에 한 직원이 가압기 압력 방출 밸브의 누설을 발견했다. 이후, 수동으로 밸브를 닫고 냉각 펌프를 재가동하며 상황은 겨우 진정되었다. 노심 절반 이상이 녹아 스리마일섬 원전 2호기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원자로가 붕괴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방사능 누출 사실이 곧바로 퍼지면서, 사람들의 공포 역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임산부와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들은 서둘러 대피했으며, 약 1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방사능 노출 수준은 X선 촬영 2~3번 수준에 불과하다고 발표되었지만, 사람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아무도 방사능이 얼마나 퍼졌고,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미국의 원자력 정책 전반을 뒤흔들었다. 미국은 사고 이후 원전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스리마일섬 원전과 비슷한 구조의 원자로 역시 즉각 가동을 중단했으며, 스리마일의 원전 2호기는 영구 폐쇄된다. 그리고 일대를 정화하는데 1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비용이 소모되었다.
무엇보다 대중의 불신이 생겨났다. 전 세계에서 원전 반대 운동이 결렬해졌다. 인류는 원자력 발전이 양날의 검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사건도 충격이 컸지만, 훗날 벌어지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의 재앙으로 세계는 원전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더 나은 안전 조치를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탈원전'으로 이어진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미국 내 최악의 원전 사고였지만, 몇 년 후 벌어진 체르노빌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후쿠시아 원전 사고로 비교적 잊힌(?) 사고였다. 하지만, 스리마일섬 원전이 다시 대중에 회자가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MS) 때문이다.
미국 최대 원자력발전 기업인 콘스텔레이션에너지는 MS와 독점 계약을 맺고, 향후 20년간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력 전체를 MS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콘스텔레이션은 이를 위해 스리마일섬 원전의 운전을 재개할 예정이다.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만 보면 원전 사고가 발생한 원전 2호기를 재가동하는 것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사고가 난 2호기는 영구 폐쇄가 되었으며, 이번에 MS만을 위해 재가동하는 원전은 사고 난 2호기 옆에 위치한 1호기이다. 1호기는 1979년 2호기 사고 당시 가동 중지되었지만, 1985년에 재가동되었으며, 2019년 경제적 이유로 운영이 중단될 때까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그렇다면, MS가 원전을 독자적으로 가동하면서까지 전력 공급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인공지능 때문이다. MS의 데이터 센터와 인공지능 서비스 운영에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고, 24시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소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체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발전소는 원하는 전력을 공급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찾은 것이 탄소만 놓고 봤을 때는 청정에너지라 할 수 있는 원자력 에너지였다.
MS가 악명 높은 스리마일섬 원전을 재가동해 이슈의 중심이 되었지만, 인공지능 기업들은 모두 전력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챗GPT가 하루에 쓰는 전기는 미국 일반 가정 1만 7000개가 쓰는 총량에 맞먹는다. 또한, 대화 한 번에 생수 한 병을 소모한다. 챗GPT가 대화하면서 목이 말라 물을 마시는 건 당연히 아니다. 챗GPT를 구동하며 발생하는 데이터센터의 발열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냉각수의 양이 대화 한 번 당 생수 한 병이라는 뜻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는 수천에서 수만 개의 GPU가 장착된 데이터센터가 필수이다. 그리고 이를 구동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량은 천문학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예측에 따르면, 인공지능을 위해 사용되는 전력량이 2026년에는 일본과 캐나다 등 한 국가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을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인공지능 산업을 이끌어 가는 미국의 전력 소비량 증가도 가파를 전망이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이자 인공지능 기업인 xAI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촉발된 전력 부족 사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인공지능(AI)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지금까진 칩(Chip) 공급 부족이었다면 이제는 전력 공급이다.”
'전기 먹는 하마'인 인공지능을 위해 빅테크 기업들은 해결책을 찾고 있다. 이들의 눈에 띈 것은 안전을 이유로 외면받았던 원자력 발전이다. 스리마일섬 원전을 재가동한 MS처럼, 구글, 아마존, 오픈AI 등도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구글은 미국의 스타트업인 카이로스 파워와 계약을 맺고, 2030년까지 소형모듈원전(SMR)에서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다. 이 전력은 수심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인데, 일반 가정으로 가지 않고 구글만을 위해 사용된다. 아마존 역시 원전으로 구동되는 데이터센터를 6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오픈AI 역시 핵융합 스타트업인 오클로에 투자하며, 2027년 가동될 예정인 SMR의 전력을 끌어오려 한다.
탈(脫) 원전이 대세였다. 하지만 세계는 이제 '脫탈원전'하고 있다. 1990년 원전 가동을 멈췄던 이탈리아는 2050년까지 원전이 전체 전력의 11% 이상을 맡게 할 계획을 밝혔다. 2017년 탈원전을 확정한 스위스 역시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한다. 프랑스 역시 탈원전 계획을 뒤집고, 신규 원전 14기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안전을 이유로 탈원전했지만, 저탄소 시대에 대응할 에너지원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다시 원전으로 회귀하는 것이 현재 세계적 트렌드이다. 원전이 탄소는 배출하지 않으니 말이다. 거기에 인공지능까지 한몫한다.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무탄소 전력원을 찾다 보니, 원전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구글의 CEO인 순다르 피차이와 엔비디아의 CEO인 젠슨 황은 각종 인터뷰에서 원전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꼽았다.
매년 말이 되면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가트너(Gartner)에서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를 발표한다. 며칠 전, 2025년 주목해야 할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가 발표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에너지 효율적 컴퓨팅(Energy-Efficient Computing)이다. 탄소 발자국 감소도 신경 써야 하는 빅테크 기업이기에, 더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술 개발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가트너의 의견이다. (참고로 가트너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 중 9개가 인공지능과 관련이 있다)
이처럼, 전력과 관련된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전세계는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원전, 특히 SMR에 대한 기술 개발이 급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시류가 급변하는 시기일수록 이에 대한 대응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추세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