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안내해 준 <카라바조 전시회>
현재 예술의 전당에선 화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바로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이다. 지난 주말 예술의 전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지하 1층 전체를 감싸고 있는 티켓팅 줄이었다. 반 고흐 전시회를 관람하기 위한 관객들의 줄이 전시회가 열리는 1층을 넘어 지하 1층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문제는 이 줄이 발권줄일 정도로 사람이 어마어마했다는 것.
반 고흐 전시회는 쾌적한 관람이 힘들다는 평이 워낙 많았기에, 애초부터 이건 포기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시기에는 모두가 반 고흐만을 바라보기에, 다른 전시회에 눈을 돌리는 게 좋다. 마침,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도 아주 멋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바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우피치 미술관에서 보고 홀딱 반한 바 있다. 특히,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는 화가의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격정적이었다. (그래서 아래의 격정적 사진도 찍고 왔다. 가려진 부분의 얼굴 표정은 메두사와 동일하다) 그가 바로크의 문을 활짝 연 것처럼, 그의 작품은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로 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서일까. 애초부터 반 고흐전보다는 카라바조전이 더 가고 싶었다. 그래서 짬이 난 주말, 와이프와 아이와 함께 예술의 전당을 찾아 카라바조전을 관람했다.
우리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관람할 때면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냥 작품 그 자체만 보는 것도 감동적이지만, 설명이 곁들여지면 감동이 더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곤 한다. 아니면, 전문 도슨트 투어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만 해도, 늘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해 전시를 즐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5살 아이와 함께하는 미술전 관람에서 오디오 가이드와 도슨트는 언감생심이다.
주말에 열리는 유명 전시회치고는 쾌적한 편이었지만, 여전히 유명 작품 앞에는 사람이 많다. 반 고흐전으로 인파가 몰렸다고는 하지만, 카라바조전 역시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반 고흐전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관객이 몰렸을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설명이 있는 패널도 인파로 자세한 설명을 읽기가 어렵다. 이럴 때면 오디오 가이드 부재가 아쉽다. 그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챗GPT에게 물어보자!"
맘에 드는 작품을 하나 골라 챗GPT에게 사진을 찍어 설명을 요청해 본다.
설명이 완벽하다! 아무런 힌트 없이 사진만 찍어 주었는데도, 챗GPT는 화가와 작품명을 정확하게 맞췄다. 작품의 특징도 꽤 완벽하게 설명해 준다. 그냥 봤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그림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해석해 준다. 여기에 작품명까지 알려주니, 챗GPT는 더욱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간다.
내 뻘짓을 보던 와이프는 다른 그림에 대한 해석을 요구한다. 분명 설명을 봤는데도 아리송한 그림이었다. 이 그림도 사진만 찍어 챗GPT에게 물어봤다.
아! 설명에 있던 바쿠스가 디오니소스였구나! 그러니 작품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다. 분명 작품 옆 패널에 바쿠스가 주인공이라는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 신화는 알아도 로마 신화는 잘 모르지 않은가. 그래서 바쿠스가 누구지 했는데, 챗GPT가 바쿠스는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콕 집어주었다. 챗GPT가 없었다면 바쿠스라는 듣보잡이 아이에게 술을 줬구나 하며 넘어갈 뻔했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계속해서 찍어가며 챗GPT의 맞춤형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례 하나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위 사례에 등장하는 그림은 아이가 열심히 보던 그림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고자 챗GPT에게 설명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림이 제대로 찍히지 않은 탓인지 설명이 부정확했다. 그래서 옆의 설명문에 언급된 화가와 제목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언급된 탄크레디라는 이름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 십자군에 등장한 탄크레디와 이 그림의 탄크레디가 같은 인물인지 물어보니, 챗GPT는 맞다고 하면서 그림에 담긴 뒷이야기까지 들려준다. 역시나 어디선가 들어본 1차 십자군 이야기가 맞았다. 참고로 그림 옆 설명문에는 십자군의 '십'자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이 장면을 보면 챗GPT가 개인 맞춤형 도슨트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는 일방향적인 정보 전달이 전부다. 도슨트 투어를 하면 더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지만,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궁금한 점을 더 질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챗GPT 같은 인공지능이 옆에서 도와준다면, 궁금한 건 마음껏 물어볼 수 있다. 챗GPT가 아니었다면 구에르치노의 그림에서 십자군까지 연결 짓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인공지능 도슨트의 미래가 꽤나 밝아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챗GPT는 가끔 오류를 내기도 하고, 그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당시 예술의 전당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스마트폰의 무선 통신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그래서 챗GPT의 반응 역시 상당히 느렸다. 그림을 찍어 보내면 10여 초가 지나고 나서야 답변이 완성되었다. 만약 무선 인터넷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챗GPT의 도움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속도를 보면, 머지않아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미술 감상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전시회에서는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녀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혹은 스마트폰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인공지능 기기가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하기 전에 관련 서적을 살 일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책장에 꽂혀있는, 방문했던 박물관의 가이드 서적을 뒤적이는 재미는 줄어들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