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인공이 아이에게 보낸 추석 축하 메시지
추석 연휴, 아이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나 만들어줬다. 챗GPT로 유명한 오픈AI가 최근 공개한 동영상 생성 인공지능 '소라 2(Sora 2)'로 만든 영상이다. (아래 영상은 소리를 켜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아이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푹 빠져있다. 특히나 빌보드 8주 1위를 기록한 '골든'을 부른 '헌트릭스'를 정말로 좋아한다. 그래서 헌트릭스가 아이의 이름인 '윤우'를 불러주며 말을 거는 영상을 만들어줬다. "팬미팅장에 와줘"라는 멘트에는 "알겠어"라고 대답을 하고, 마지막에 모든 멤버가 "사랑해! 윤우!"라고 할 때는 완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도 사랑해"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악역, '사자 보이스' 영상도 소라2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반응이 안 좋았다. 아이는 사자 보이스가 악령이라 무서워한다. 그래서 나쁜 형아들이 자기를 부르는 걸 싫어하며 당장 꺼라고 하면서 도망쳤다.
아이는 물어본다. 어떻게 누나들이 자기에게 영상을 보냈냐고. 당황한 아빠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온 매니저 '바비'에게 연락해서 영상을 받아왔다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다.
챗GPT로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을 만들던 열풍, 그다음엔 구글의 AI 제미나이에 내장된 나노 바나나로 피규어 이미지를 만들던 놀이. 최근엔 연예인 화보 느낌 프로필 사진 만들기까지. 이미지 생성 AI가 우리 일상에 파고들며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왔다.
이제 그다음 단계가 왔다. 영상이다.
오픈AI의 소라2는 2025년 9월 말 출시되자마자 앱스토어 인기 1위에 올랐다. 수백만 명이 몰려들었고, 오픈AI의 소라 책임자는 앱 출시 5일도 안 돼 다운로드 100만 건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챗GPT를 능가하는 속도다. 소라2가 폭발적 인기를 끌게 된 건 사용하기가 너무나도 쉬웠기 때문이다. 간단한 텍스트 프롬프트 몇 줄이면 뚝딱 완성이다. 내가 만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영상 역시 사진 한 장과 프롬프트 몇 줄로 만들었다.
소셜미디어에는 기상천외한 AI 영상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KFC에서 마이클 잭슨이 치킨을 훔치는 영상부터, 피겨 스케이터가 고양이를 머리에 얹고 트리플 악셀을 하는 영상까지. 그리고 소라2로 만든 영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오픈AI의 CEO 샘 알트만이다. 그는 매장에서 GPU를 훔치다 잡히기도 하고, 텔레토비와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아래 링크에서 영상 하나 볼 수 있습니다)
https://x.com/GabrielPeterss4/status/1973120058907041902
소라2가 정말 놀라운 이유는 단순히 영상을 만들어내서가 아니다. 나노바나나가 보여줬던 것처럼 맥락을 기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간 동영상 생성 AI에게 부족했던 물리 법칙의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또 다른 혁신은 영상과 오디오를 동시에 생성하면서, 어색함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물론 비난 의견도 많다. 누구나 손쉽게 합성 영상을 만들게 되면서 딥페이크 악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제 눈으로 보는 것조차 신뢰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로 만들어진 저품질의 대량 AI 영상이 범람하는 'AI 슬롭(slop)'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미 유튜브에는 저품질의 생성형 AI가 만든 영상이 범람하고 여기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이를 눈치채지만, 소라2와 같은 고품질 생성 AI가 나오게 되면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만 가능하다 여겨졌던 동영상 생성 기술이 이제 우리의 일상적인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우리는 여기서 오픈AI가 사용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라2는 단순히 동영상을 생성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용 크리에이티브 툴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개별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형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틱톡처럼 AI 영상 소셜 플랫폼으로 설계되어 일반 대중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간 오픈AI가 취해온 전략이 녹아있다. 지브리풍 사진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처럼 소라2 역시 대중적 인기와 밈 문화의 촉발자로서 영상 생성 AI를 대중화하고자 하는 것만 같다.
이 부분이 구글의 전략과 큰 차이를 보인다. 구글은 역시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나노바나나를 단독 앱으로 내놓기보다는 자사 기존 서비스에 통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제미나이 앱에 들어가 있으며, 다른 구글 서비스에도 백엔진으로 탑재하고 있다. 이는 구글이 나노바나나를 일상적인 생산성 향상 도구로 위치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오픈AI는 새로운 놀이공간을 만들어 활발한 실험을 장려하며 자신들의 네임 밸류를 높인다면, 구글은 기존 자사 생태계에 새로운 AI 기술을 녹이며 조용한 혁신을 이루려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왜 지금 소라2가 공개되었는지 슬쩍 살펴보기만 하자. 요즘 가장 화두 중 하나가 'AI 버블'이다. 오픈AI와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오라클 등은 서로 막대한 투자를 하며 AI 인프라 투자에 올인하고 있다. 글로벌 AI 투자액은 7조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경원에 다다를 전망이다. 조가 아닌 경이다. '경'!
이를 두고 누군가는 버블을, 누군가는 뉴노멀을 이야기한다. 이제 전 세계 경제 시장은 AI가 무너지는 순간 다 무너지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그 말은 계속해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멈출 수 없는 기관차가 되었다. 그래서 버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AI 기업들은 신모델을 발표한다. 버블과 뉴노멀 사이 이야기는 차차 풀어보도록 하겠다.
사자보이스 영상을 만들어서 보여주니 아이가 시무룩하다. 그래서 급히 나노바나나로 새로운 이미지 하나를 뚝딱 만들어줬다. 아이는 헌트릭스 누나들과 찍은 셀카 사진을 보며 매우 좋아했다. 그리고 하는 말.
"사진 같이 찍어서 너무 좋아. 그런데 사진 언제 찍었는지는 까먹었어." (긁적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