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대화를 넘어 행동하는 인공지능의 시대

AI와 채팅만 해보고 AI를 무시하시는 분들께

by 최재운

본 글은 제가 필진으로 참여 중인 신문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한 칼럼 초안입니다. 아래 초고를 신문사에 넘겼고, 약간 수정된 형태로 지면에 나올 것 같습니다. 날 것의 초안도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요즘 주변에서 이런 반응을 심심찮게 마주친다.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는 "역시 AI는 아직 멀었어", "결국 사람이 다 손봐야 하네"라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 이해한다. 챗봇에게 보고서를 맡겨봤더니 그럴듯하게 생긴 헛소리가 돌아온 경험,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어보면 뭐든 대답은 하는데, 막상 진짜 업무에 쓰려면 영 미덥지 않다. 그래서 "AI는 아직이야"라고 결론 내린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경험만으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재단하기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너무 빠르고 크다. 단순 챗봇 형태의 인공지능만 써보고 AI 전체를 평가하는 건, 자전거만 타본 사람이 "탈것은 별거 아니네"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AI 시대를 맞이하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한쪽에는 'AI 블루(AI Blue)'가 있다. 뉴스는 온통 AI로 도배되고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AI 전환을 선언하는데, 정작 우리 회사는 챗GPT 유료 구독 하나 결재하기도 망설여지는 현실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이다.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 다른 한쪽에는 'AI FOMO(Fear Of Missing Out)'가 있다. 경쟁사가 AI를 도입했다는 소식에 조바심이 나고,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다. 두 감정 모두 자연스럽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느끼는 적응 불안은 인터넷 시대에도, 모바일 시대에도 반복되어 왔다. 중요한 건 그 불안에 머무르지 않고, 변화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 실체 중 하나가 바로 'AI 에이전트'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챗봇은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안내 직원이다. 메뉴를 추천해 주고, 간단한 질문에 답해 준다. 하지만 직접 요리를 하거나 테이블을 세팅하지는 않는다. 반면 AI 에이전트는 주방에 들어가 재료를 손질하고, 불을 켜고, 요리를 완성해서 서빙까지 해주는 존재다. 대화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해낸다. 사용자가 목표를 제시하면 에이전트는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도구를 선택하며, 단계별로 작업을 수행한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우회 경로를 찾기도 한다. 이것이 단순 챗봇과 에이전트의 결정적 차이다.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다. 2025년 11월, 오스트리아의 개발자 피터 슈타인베르거(Peter Steinberger)가 오픈클로(OpenClaw)라는 오픈소스 AI 에이전트를 공개했다. 파일을 읽고 쓰고,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웹을 탐색하는 등 컴퓨터 앞에서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을 AI가 대신 수행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인 깃허브(GitHub)에서 60일 만에25만 개의 별(star)을 받으며, 10년 걸려 비슷한 수치에 도달한 리액트(React)의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워크(Claude Cowork)와 클로드 코드(Claude Code), 오픈AI의 코덱스(Codex) 앱도 에이전트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실리콘밸리 전체가 '에이전트의 시대'를 선언한 셈이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가트너(Gartner)에 따르면 2026년 말까지 기업용 애플리케이션의 40%가 AI 에이전트를 탑재할 전망이며, 이는 불과 1년 전의 5% 미만에서 폭증한 수치다. AI 에이전트 시장 규모는 2025년 78억 달러(약 11조 원)에서 2030년 526억 달러(약 74조 원)로 연평균 46%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딜로이트(Deloitte)는 "실리콘 기반 인력(silicon-based workforce)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까지 표현했다. 에이전트는 더 이상 실험실의 개념이 아니라, 기업 현장에 본격 투입되고 있는 실전 도구인 것이다.




거창한 통계는 여기까지 하고,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주변에서 에이전트를 실제 업무에 활용하는 흥미로운 사례를 세 가지 접했다.


A 씨는 최근 이사를 앞두고 재무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주식, 부동산, 연금, 적금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각기 다른 형식의 엑셀 파일들이 폴더 곳곳에 잠들어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하나하나 열어보며 반나절은 씨름했을 것이다. 그는 클로드 코워크에게 해당 폴더의 접근을 허용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폴더에 있는 엑셀 파일들을 전부 분석해서 자산 현황 대시보드를 만들어줘." 에이전트는 스스로 파일을 열고, 셀 구조를 파악하고, VLOOKUP과 피벗 테이블을 활용해 자산 유형별·시기별 현황을 정리한 대시보드를 완성했다. 카테고리 분류, 총액 계산, 추이 그래프까지 포함해서.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B 씨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최신 연구 자료를 기존 강의안에 반영하려면, 예전에는 파워포인트를 열고 슬라이드를 한 장씩 손봐야 했다. 이제 그는 PDF와 워드 파일로 된 최신 논문들을 에이전트에게 건넨 뒤 이렇게 지시한다. "기존 강의자료의 톤과 디자인을 유지하면서 새 내용을 반영한 슬라이드를 만들어줘." 톤, 구성, 시각적 일관성까지 기존 자료와 맞춰서 결과물이 나온다. 물론 완벽하진 않다. 전문 용어를 잘못 쓰거나, 맥락에 안 맞는 내용이 끼어들기도 한다. 허나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과 80%짜리 초안에서 다듬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반나절짜리 작업이 한 시간으로 줄었다.


C 씨의 시도는 가장 실험적이었다. 연구자인 그는 AI 에이전트로 구성된 가상의 연구팀을 만들었다. 한 에이전트는 문헌 조사를 맡고, 다른 에이전트는 데이터 분석을, 또 다른 에이전트는 논문 초안 작성을, 마지막 에이전트는 비평가 역할을 수행한다. 각자의 역할과 목표를 부여하니, 마치 진짜 연구팀처럼 단계별로 결과물을 주고받으며 논문의 뼈대를 잡아갔다. 최종 판단과 수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지만, 연구의 초기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A 씨와 B 씨와 C 씨는 모두 같은 사람이다.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다. 대단한 기술 배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에이전트에게 명확한 목표와 맥락을 전달하고, 결과를 검토하며 방향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했을 뿐이다. 이것이 에이전트 시대의 새로운 역량이다. 코딩 실력이 아니라, 일을 잘 시키는 능력. 무엇을, 어떤 맥락에서, 어떤 수준으로 해달라고 전달하느냐가 결과의 질을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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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누구나 당장 오픈클로나 코덱스 같은 도구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도구들은 아직 터미널 환경에서 작동하며, 어느 정도의 코딩 지식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클로드 코워크처럼 코딩 없이도 에이전트의 힘을 체감할 수 있는 도구들이 이미 나와 있다. 폴더를 지정하고, 할 일을 자연어로 말하면 된다. 마치 유능한 신입사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자료 정리해줘", "이 형식으로 보고서 만들어줘", "이 데이터에서 패턴 찾아줘."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어려운 도구는 나중에 배워도 된다. 지금은 쉬운 것부터, 작은 자동화 하나에서 시작해 점차 에이전트의 역할을 넓혀가면 된다.


AI 블루가 됐든, AI FOMO가 됐든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같은 질문이 놓여 있다.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지?" 에이전트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구체적인 답이다. 거창한 AX 전략을 세우기 전에, 내 업무 중 반복적이고 시간이 많이 드는 일 하나를 에이전트에게 맡겨보자. 그 작은 경험이 쌓이면 개인의 업무 효율화를 넘어, 팀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결국 조직 전체의 생산성이 달라진다. AI에게 "알려줘"가 아니라 "해줘"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 그 문은 이미 열렸다.


"AI가 대화만 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 다시 볼 때가 되었다. 에이전트는 이미 대화를 넘어 행동하고 있다. 중요한 건 완벽하게 이해한 뒤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서툴더라도 한 가지 업무에 에이전트를 써보는 것, 거기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최재운 · 광운대 경영학부 빅데이터경영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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