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스레 마음이 쓰이는 마츠코는 곧 나였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어두운 분위기. 헐랭해보이는 주인공.
처음 알게 된 고모의 죽음과 그의 집을 청소하라는 아빠의 부탁 아닌 명령.
억지로 끌려와서 하는 일에 흥미와 재미가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마츠코는 특별했다.
낯선 이들로부터 듣는 마츠코 고모 인생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그림으로 완성될 때, 그녀를 향한 연민과 그리움이 피어난다.
신묘하고 이상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사랑에 늘 진심이었던 마츠코에게 마음이 쓰여서이다.
도서관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이보다 반가울 수 있으랴.
2권이지만 단숨에 읽어나가는 것은 이미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자세하고 많은 마츠코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무뚝뚝한 아버지, 병약한 여동생과 막내동생, 어머니와 함께 사는 마츠코는 언제나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였다.
늘 아픈 동생에게만 마음을 쓰는 아버지에게 이쁨 받기 위해 자식으로서 부모가 바라는 일들을 했지만, 생각보다 보통의 삶이 쉽지 않다.
수학여행 답사에서 교장선생님의 추행이 있었을 때, 대화를 나누고 조언을 할 수 있는 기댈 구석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약하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부모님은 그녀에게 기댈 구석이 되진 못했다.
수학여행에서 벌어진 매점 도난 사건.
분명한 용의자가 있었지만, 당장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마츠코는 실천해 버리고, 사건은 그녀의 상상보다 더 큰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학교로부터 사직을 종용받고 그녀는 미련 없이 짐을 싸서 나온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에 가출을 감행한다. 자신을 쫓아 나오는 동생에게 매정하게 대하면서.
어린 나이의 사회초년생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접객 일을 하다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난다.
가난했지만 꿈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꿈과 현실의 괴리감에 허우적대던 남자는 마츠코를 학대한다.
그럼에도 마츠코는 자신이 가진 사랑을 아낌없이 베푼다.
마치 그녀의 사랑에 압사라도 당할 듯, 괴로워하던 남자는 혼자서 멀리 떠나버린다.
몸과 마음이 지친 그녀는 사랑할 다른 사람을 급히 찾고 다시 사랑둥이가 되었지만, 그녀에게는 사람 보는 눈이 없다.
또다시 버려지고, 완전한 유흥의 길로 접어든다.
나쁜 곳에는 더 나쁜 인간들이 가득하다.
바지사장과 함께 한 일은 그녀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주었지만, 그 돈은 바지사장의 유흥에 소비되었다.
제 몫을 찾으려는 마츠코에게 남자는 사과조차 하지 않는 주제에 당당히 그녀를 버리고자 했다.
홧김에 사건이 발생했고, 그녀는 죽기 위해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내천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만난 소박한 이발사는 그녀에게 살 용기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완벽한 도피처는 없다.
그녀는 죗값을 치르고, 교도소 안에서 이발사와 반갑게 만나기 위해 미용기술을 배운다.
7년의 시간이 지나 그녀는 출소를 했고, 이발사를 찾아갔지만, 이미 이발사는 새로운 가정을 꾸려 잘 살고 있었다.
사랑할 수 없어.
사랑하기 싫어.
그런 그녀에게 한 남자가 다시 나타난다.
그녀의 인생에 큰 좌절을 안겨준 계기가 된 '류'라는 청년이다.
사랑한다며 그녀를 찾아왔던 류는 절대로 마츠코 곁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마츠코가 평생 듣고 싶었던 말.
곧, 그녀는 제 인생을 류에게 바쳐 온전히 사랑한다.
그랬던 그녀는 왜 혐오스러운 마츠코가 되어 죽음이라는 결말을 맞이했을까.
마츠코는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했고 하루를 살아내었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라도 굳건히 받아들였다. 왜 그랬던 그녀는 혐오스러운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될까.
평범한 것. 순리대로 살아가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삶의 지향점이다.
그녀 또한 그러한 삶을 살았다.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고, 아픈 동생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수학여행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고를 제 손으로 무마하고 싶었고, 잘못한 학생을 대신해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조금의 현명함, 잘못을 이끌어줄 사람이 그녀의 곁에 함께하지 못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이 걷잡을 수없는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응당 그녀만의 문제일까.
사랑에 목말랐던 마츠코는 언제나 사랑하고 있었다.
그 고귀하고 숭고한 사랑은 절대 스스로에게 와닿지 않았다. 사랑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던 그녀는 언제나 외롭고 처절하고 순수했다. 그런 마음을 그녀의 사랑을 받은 이들은 진심으로 느끼고 있었다.
사랑은 사람을 숨 쉬게 만든다.
하지만 그저 맹목적인 사랑은 때론 질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간중간 마츠코의 일상에서 배여 나오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글의 집중도를 모은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임에도 자신의 존재가 민폐가 되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뛰어난 재능이 있었음에도 주류에 서지 못했던 작가, 그녀를 사랑했지만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류.
함께 웃어주는 것,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 함께 미래를 그려가는 것.
그녀가 바라는 것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인생은 제목 자체로 설명된다. 혐오스럽다는 말의 역설. 끊임없이 사랑스러웠던,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사랑했던 마츠코의 일생은 책으로, 영화로 함께 즐길 수 있다.
글 속에, 영상 속에 살아있는 마츠코가 내 안에도 존재한다.
누군가는 혐오스럽다고 할지라도, 나는 마츠코를 애정하고 존중한다.
부끄럽지 않았던 마츠코를 아마도 사랑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