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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를 또 봐야 하는 이유

22년 만에 리메이크되어 색다르게 다가오는 [지구를 지켜라]

by 천둥벌거숭숭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2003년작.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많은 평론가들의 비판을 받은 해맑은 표정의 영화표지가 나는 오히려 좋았다. SF장르는 선호하지 않지만, 이 영화가 주는 특별한 유머가 포스터에 담겨있어서 더 좋아했다.

하지만 내 주변사람들은 이해해주지 않아 혼자 자주 보는 영화였다.

그러던 중, 22년 만에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어 개봉된다는 소식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제법 잘 만들어졌다는 평이 많았다. 그렇다면 원작을 다시 보고 리메이크작을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장면을 볼 생각에 시작부터 설레는 덕후다.


유제화학 사장 강만식은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모범이 되는 사람은 아니다.

금전적으로 부유하지만 대리비 4만 원이 아까워 2만 원만 건네는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집 앞 주차장에서 납치를 당한다. 깨어보니 머리가 깎여있고, 의자에 묶여 있었으며 지하실 같은 공간에서 두 명의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발음하기도 어려운 외계어라며 말하는 병구가 우스울 뿐이다. 황당함과 억울함을 표출하지만 좀체 듣지를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순이에게 호소를 해보지만, 순이도 병구의 눈치를 볼 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발등이 벗겨지고 물파스로 고문을 당하면서 진짜로 미친 인간과 마주했다는 사실에 체념할 뿐이다.

400v가 넘는 전기고문을 당하고,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소변을 보기도 한다. 삶에 대한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도망칠 기회를 얻었지만, 병구의 공간에서 자신의 기지는 어린아이의 장난과도 같이 금세 끝이 나버렸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순이와 대화하면서 자신의 탈출을 돕는 일이다. 순이가 떠나고 홀로 남은 공간에서 극심한 고문을 받고 다리를 심하게 다치게 된다.

누군가 병구의 집을 찾아오게 되고, 나름의 구조요청을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강만식은 묶인 쇠사슬을 풀었고, 도망을 가려다 우연히 가리어진 문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병구의 과거행적을 한눈에 보게 된다. 외계인을 찾기 위한 노력, 왜 그가 외계의 존재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추론할 수 있는 어릴 적 그의 일기장에 동요된다. 강만식은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다.

곧이어 찾아온 병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외계존재가 맞음을 설명한다.

가만히 듣던 병구는 자신의 기록을 강만식이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의심을 하게 되지만, 몇 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겨우 생명을 연장할 뿐인 엄마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을 믿게 된다. 강만식이 말하는 행위를 했지만, 엄마가 죽고 만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가지고 강만식에게로 갔지만, 외계생명체의 말에 속아 다시 그를 믿기로 한다.

병구는 진짜로 외계인을 만난 것일까. 병구는 진짜로 지구를 지켜낼 수 있을까.


누군가가 오래도록 써왔던 일기장을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세상을 그때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마치 성악설을 인정하게 만드는 아이들 특유의 순수악을 이 영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외계 생명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기 위한 특수 행동. 강력한 무기가 되는 이태리타월과 물파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운 고문이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에게 행해진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수행하고, 눈치를 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실행하는 순이마저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인가.

SF영화이지만 드라마, 로맨스, 코미디가 적절히 녹아들어 있어 지루함이 없다.

일단, 강만식 사장은 정직하게 부를 축적했다기에 너무 옳지 못한 행동을 많이 저질렀다. 불륜은 기본이고, 자신의 곁에서 수행하는 기사의 어머니 생일 관련 휴일마저도 불평을 가질 만큼, 대리비 4만 원이 아까워 2만 원만 주는 인색함이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인식을 흐리게 만든다.

전기고문 또한 그러하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100V가 넘어가면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는 전기고문을 강만식은 400V도 버텨내는 기염을 토한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겠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강사장이 진짜 외계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괴랄한 이야기에도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감독의 연출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태초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진짜로 있을 법한 주인공 병구의 과거 이야기. 피해자로서의 병구의 삶에 마음이 기울게 된다.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저절로 수긍이 가게 만드는 연출에,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병구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잔악무도한 연쇄살인마다.

외계의 존재로부터 인간들을, 지구를 지키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잡아와 고문하고 잔인하게 죽이는 것에서 발전해 그들의 장기를 수집하는 괴랄한 방식이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의 이상행동에도 기꺼이 따라주었던 순이는 과연 정상인일까.

서커스 단장인 아버지 밑에서 정규교육을 받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학습하지 못한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마음이 기우는 쪽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병구가 옳지 않은 행동을 권할 때, 내키지는 않지만 그를 따르는 것은 흔히 사랑에 눈이 먼 사람이 하는 행동과도 같았다. 순이가 병구를 떠난 이유는 그의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선택한 이별에서 슬퍼한 것은 순이었고,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찾아간 사람 람 역시 순이었다.

병구는 조현병 환자이며 나쁜 약에 중독된 환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외계인에 대해 조사한 것이 사실이었다고 말하는 결과가 진실이 아닌 그의 꿈이 아니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상한 외계언어를 그가 진짜로 분석하고 알게 된 것인지, 진짜로 머리카락의 촉수가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였는지. 그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아도 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고민이 계속될 때는 그저 코미디 영화라고 보면 그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실현해 내는 것. 예술가만이 가진 특권이다.

우리는 아직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나아가 우주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도 없다.

진짜로 우리 곁에 외계의 존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가 더 재미있는 것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과 연쇄적으로 발생한 폭력이 병구를 미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약자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어야 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좋은 마음은 귀한 것이다. 흔하지 않기에 가치 있고 좋은 사람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악한 마음이 일렁일지라도 조금은 멈추어 보기를 바랄 뿐. 물론 나조차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어떤 일이든 인과응보는 반드시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보다 좋은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울 것이다.

지구가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들보다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본다.

[지구를 지켜라]. 22년이라는 세월에도 굳건히 좋은 영화로 자리 잡는 영화는 오늘 봐도 참 재밌다.

이렇게 추운 날이면 이불을 싸매고 보는 영화로 이만한 영화가 또 없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지켜라]를 적극 추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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