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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텔로 Nov 05. 2019

첫 고기

초식남이지만 고기를 좋아합니다

인생은 매 순간 처음의 연속이다.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어제 했던 행동과 오늘 했던 행동이 다르듯이 어제 내가 먹은 고기와 오늘 내가 먹은 고기는 엄연히 다르다. 그중에서도 처음 맛보는 고기의 맛은 잘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처음 고기를 입 속으로 넣었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가 처음 먹었던 고기는 이유식 속에 섞여있던 간 고기였을 거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첫 고기는 뭘까? 첫 고기 얘기를 하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금이니까 삼겹살을 게눈 감추듯이 다 먹지. 어릴 적엔 기름장에 찍어서 오물거리다가 뱉었어. 물만 쪽 빨고 뱉은 거지"


네? 고기를 먹다가 뱉었다고요?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어렴풋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전등이 켜진 환한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였다. 노란 벽지만큼 영롱한 빛깔을 내던 기름장에 삼겹살을 콕하고 찍어 입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몇 번 씹은 후 고기를 뱉었다. 옆에 계셨던 고모는 "고기 먹을 줄 모르네"라고 핀잔을 했다. 하긴 네 살짜리 꼬마가 삼겹살의 고소함과 육질의 쫀득함을 느끼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어린 시절 내 옆에서 삼겹살을 함께 먹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고기를 보며 얼마나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어릴 때는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해서였는지 삼겹살뿐만 아니라 다른 고기도 대충 먹기 일쑤였다. 특히 삼겹살에 대한 홀대는 꽤 오래갔다.


이하 구글 이미지

그러다가 외갓집에 놀러 갔을 때 사촌누나와 사촌동생이 상추에 삼겹살, 고추, 쌈장을 턱 하니 얹어서 먹는 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너 고기를 그렇게 맛없게 먹어?'라고 말하는 누나의 표정과 '형이라면서 쌈도 안 싸 먹네'라는 듯한 동생의 웃음은 고기 먹을 줄 모르는 놈이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도록 했다. 그날 이후 초등학생이 먹을 수 있을 쌈 완전체 고기+상추+쌈장 조합을 시도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따라 하는데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이후 고기를 제대로 먹게 됐다. 최근엔 고기의 질이 좋다면 가급적 양념 없이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쪽으로 먹고 있다. 몰랐던 방법을 알게 돼 새롭게 고기를 즐기는 첫 경험도 있는 반면 '이걸 어떻게 먹어?'라며 도저히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홍어회를 좋아하신다. 해마다 단골 홍어집에서 홍어를 몇 킬로씩 주문해 집으로 배송한다. 덕분에 나도 홍어로 만든 웬만한 요리는 다 먹게 됐다. 범인(凡人)들은 범접하기 힘든 홍어 코, 홍어탕, 홍어전 등등. 비염 증상이 있는 나로서는 홍어를 만난 게 참 반가울 따름이다. 



홍어요리는 아버지에게 영혼의 파트너 같은 존재지만 홍어와의 만남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어릴 적 나와 삼겹살의 만남이 약간 삐걱거렸던 자전거 안장 같은 사이였다면 아버지와 홍어의 만남은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고속도로와 같았다. 아버지가 놈을 만났던 첫날은 외갓집으로 인사를 드리러 간 날이었다. 외갓집에서는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커다란 홍어를 준비했다. 홍어회, 홍어무침 등 여러 가지 요리와 함께 홍어요리도 선보였다. 처갓집에 가서 맛있게 먹어야 점수를 잘 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식탁에 놀랐다. 그런데 그 가운데 홍어라는 녀석이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조심스레 여쭤봤다고 한다.


"회인데 색깔이나 상태가... 원래 이런 건가요?"


홍어를 처음 본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경상도 분이어서 그날 홍어를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했다. 군 전역 후 부산에서 지낼 때 세상 신선한 횟감을 보다가 회색빛이 도는 정체불명의 회를 봤으니 놀랄 만도 하지. 더군다나 홍어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향이 있지 않은가.


홍어 향처럼 톡 쏘는 첫 만남 이후 아버지는 녀석과 급격하게 친해졌다. 덕분에 겨울마다 집에는 홍어나 과메기가 한 상자씩 배달된다.




삶을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그 순간 자신을 떨게 만든다. 즐거움에 떠는 걸 수도 있고 낯선 느낌에 긴장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떨림은 아련한 주파수처럼 몸속에 남아있는다. 고기를 오래 먹다가 뉴런 속에 밴 고기 냄새처럼, 첫 고기에 대한 기억과 맛, 촉감 역시 온몸에 저장돼 있다. 어느새 익숙한 맛, 아는 맛이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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