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포카텔로 Nov 05. 2019

첫 고기

초식남이지만 고기를 좋아합니다

인생은 매 순간 처음의 연속이다.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어제 했던 행동과 오늘 했던 행동이 다르듯이 어제 내가 먹은 고기와 오늘 내가 먹은 고기는 엄연히 다르다. 그중에서도 처음 맛보는 고기의 맛은 잘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처음 고기를 입 속으로 넣었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가 처음 먹었던 고기는 이유식 속에 섞여있던 간 고기였을 거다. 어릴적이니 식감보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을테지. 그렇다면 내가 기억하는 첫 고기는 뭘까? 첫 고기 얘기를 하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금이니까 삼겹살을 게눈 감추듯이 다 먹지. 어릴 적엔 기름장에 찍어서 오물거리다가 뱉었어. 물만 쪽 빨고 뱉은 거지"


네? 고기를 먹다가 뱉었다고요?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어렴풋이 옛 기억이 떠올랐다. 전등이 켜진 환한 거실에서 가족과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 자리였다. 노란 벽지만큼 영롱한 빛깔을 내던 기름장에 삼겹살을 콕하고 찍어 입안으로 넣었다. 그리고 몇 번 씹은 후 고기를 뱉었다. 옆에 계셨던 고모는 "고기 먹을 줄 모르네"라고 핀잔을 했다. 하긴 네 살짜리 꼬마가 삼겹살의 고소함과 육질의 쫀득함을 느끼는 건 쉽지 않았을 거다. 어린 시절 내 옆에서 삼겹살을 함께 먹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고기를 보며 얼마나 아깝다고 생각했을까? 어릴 때는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해서였는지 삼겹살뿐만 아니라 다른 고기도 대충 먹기 일쑤였다. 특히 삼겹살에 대한 홀대는 꽤 오래갔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얼마나 아까워했을지 지금도 눈에 훤히 그려진다.


이하 구글 이미지

그러다가 외갓집에 놀러 갔을 때 사촌누나와 사촌동생이 상추에 삼겹살, 고추, 쌈장을 턱 하니 얹어서 먹는 걸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너 고기를 그렇게 맛없게 먹어?'라고 말하는 누나의 표정과 '형이라면서 쌈도 안 싸 먹네'라는 듯한 동생의 웃음은 고기 먹을 줄 모르는 놈이라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도록 했다. 그날 이후 초등학생이 먹을 수 있을 쌈 완전체 고기+상추+쌈장 조합을 시도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따라 하는데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이후 고기, 특히 삼겹살을 제대로 먹게 됐다. 양념을 곁들여 조화롭게 먹는 법도 좋지만 최근엔 고기의 질이 좋다면 가급적 양념 없이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쪽으로 먹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입맛이 발달하고 먹는 방법도 진화하는 듯하다. 점점 고기 본래의 맛을 찾다가 육회를 좋아하게 됐으니 말이다. 몰랐던 방법을 알게 돼 새롭게 고기를 즐기는 첫 경험도 있는 반면 '이걸 어떻게 먹어?'라며 도저히 친해지지 않을 것 같은 경우도 있다. 본연의 맛과 거리가 있는 고기를 처음 만난다면 당황스러움은 배가 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거 고기 맞아?'


아버지는 홍어회를 좋아하신다. 해마다 단골 홍어집에서 홍어를 몇 킬로씩 주문해 집으로 배송한다. 덕분에 나도 홍어로 만든 웬만한 요리는 다 먹게 됐다. 범인(凡人)들은 범접하기 힘든 홍어 코, 홍어탕, 홍어전 등등. 비염 증상이 있는 나로서는 홍어를 만난 게 참 반가울 따름이다. 홍어를 먹는 순간 온몸에 육향이 퍼지기 때문이다. 홍어요리는 아버지에게 영혼의 파트너 같은 존재지만 홍어와의 만남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어릴 적 나와 삼겹살의 만남이 약간 삐걱거렸던 자전거 안장 같은 사이였다면 아버지와 홍어의 만남은 그야말로 브레이크 없는 고속도로와 같았다. 아버지가 놈을 만났던 첫날은 외갓집으로 인사를 드리러 간 날이었다. 어머니 고향은 전라도 담양이다. 예부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거나 잔칫상에 커다란 홍어를 놓곤 했다.  



그날 역시 할머니께서는 예비 사위를 맞이하기 위해 잘 삭은 홍어 한 마리를 준비하셨다. 홍어회와 함께 갈비, 죽순 요리 등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상 한편엔 홍어무침과 같은 홍어요리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홍어탕이나 홍어전은 없었던 모양이다. 처갓집에 가서 맛있게 먹어야 점수를 잘 딸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진 식탁에 놀랐다. 그런데 그 가운데 홍어라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분명 회라고 들었는데 심상치 않은 놈의 모습. 긴장한 예비사위는 여자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회인데 색깔이나 상태가... 원래 이런 건가요?"


홍어를 처음 본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 본 홍어라는 녀석은 분명 생선회라고 했는데 색이 탁하고 상(上)품이라고 들었는데 특이한 냄새가 났다. 입에 넣으니 톡 쏘는 맛에 특이한 향까지 났다. 동공이 흔들리고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게 당연했을 상황. 다행히 예비 사위는 꾹 참고 회를 삼켰다고 한다. 아버지는 경상도 분이어서 그날 홍어를 태어나서 처음 봤다고 했다. 군 전역 후 부산에서 지낼 때 세상 신선한 횟감을 보다가 회색빛이 도는 정체불명의 회를 봤으니 놀랄 만도 하지. 더군다나 홍어는 다들 알다시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녀석이다. 너무나 강렬한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던 걸까. 시간이 지나서 익숙해진 걸까. 홍어 향처럼 톡 쏘는 첫 만남 이후 아버지는 녀석과 급격하게 친해졌다. 덕분에 겨울마다 집에는 홍어나 과메기가 한 상자씩 배달된다.


삶을 살면서 처음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그 순간 자신을 떨게 만든다. 즐거움에 떠는 걸 수도 있고 낯선 느낌에 긴장하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떨림은 아련한 주파수처럼 몸속에 남아있는다. 고기와 처음으로 만난 그 시간도 마찬가지다. 익숙하지 않은 고기 한 점을 입속으로 집어넣던 어색함 대신 우리의 뉴런 속에는 고기 냄새가 배었다. 첫 고기에 대한 기억과 맛, 촉각이 온몸에 스며들어 단어만 들어도 생각나는 아는 맛이 됐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