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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텔로 Nov 07. 2019

2인분 먹을 건데요?

초식남이지만 고기를 좋아합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음식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도 음식 먹는 건 쉬운데 무슨 말이냐고? 유럽에 가면 저녁 6시가 지나면 대부분 식당이 문을 닫는다. 밤 10시가 되면 편의점에서 음식이나 주류를 구매하기도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는 음식의 종류도 많은 데다가 24시간 열려있는 가게가 많고 어디를 가나 식당이 서너 개는 줄지어 있다. 김밥 천국만 가도 뭘 먹을지 고민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어디를 가서 먹어야지'하는 고민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음식에 관대하고 누구나 편히 먹을 수 있는 나라이지만 딱 한 가지 고기를 혼자 먹으러 가면 문제가 생긴다. 고기 외에도 포장마차에서 여성 혼자 혼술 하는 일, 커플 가득한 공연장에 혼자 공연 보러 가는 일, 패밀리 레스토랑에 혼자 가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일 등 생각보다 혼자 하기 힘든 일들이 꽤 있다. 그냥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눈치가 보여 쉽게 시도하지 못할 때도 많다.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혼자 오는 손님을 꺼리는 가게도 꽤 있다 / 영화 <엽기적인 그녀>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1인 손님을 위한 칸막이 고깃집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혼자서 온전히 고기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고 모든 쌈과 양념, 밥, 술이 1인분에 맞춰 준비된다고 한다. 너무 좋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식당은 홍대, 합정, 상수동에 몰려 있다. 내가 사는 공릉동에는 없다. 평범한 동네에는 북적대는 고깃집이 줄지어 서있는 경우가 더 흔하다. 기다려야 될 정도로 인기 있는 집이 아니더라도 고깃집에 혼자 가서 고기를 먹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처음 혼자 고기를 먹으러 갔을 때는 소심한 마음 반, 고기를 영접할 기쁨 반을 안고 가게에 들어섰다. "몇 분이서 오셨어요?"라는 종업원의 물음에 "한 명이요"라고 말하고 몇 초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종업원은 잠시 동안 생각하더니 자리를 안내해줬다. 그는 "저희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한데 괜찮으시겠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술 한잔과 고기 한 점을 너무 먹고 싶었지만 2인분은 자신이 없었다. 한참 고민한 끝에 "다음에 다시 올게요"라고 말하고선 자리를 떴다. 아마 그날 근처 맥줏집에서 치킨과 맥주 500cc를 마셨던 걸로 기억이 난다.


집 근처에도 이런 가게가 있으면 좋을 듯싶다 / 이하 구글 이미지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몇 달뒤 어느 날, 고기 신이 나를 찾아왔다. '오늘 고기를 먹도록 허하노라'라는 신의 메시지를 받은 기분이었다. 퇴근길에 여러 식당이 눈에 띄었지만 왠지 끌리지 않았고 집 앞에 다 와서야 식당에 들어갔다. 사장님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자 "혹시 혼자 왔는데 1인분 주문되나요?"라고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히 되죠"라는 그의 말에 안심이 됐다. 


쌈채소와 소주, 소고기 1인분이 나왔다. 그날따라 소고기 빛깔을 석류 열매를 닮은 듯 붉게 빛났고 소주는 오르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듯한 소리를 냈다. 당연히 술이 설탕물처럼 단 날이었다. 마음속 근심을 가라앉히는 "촤악~!"소리와 함께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1인분은 적었고 순식간에 한 접시를 끝냈다. 검지 손가락을 올리는 내 모습을 보고 사장님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2인분 시키셨으면 더 드렸을 텐데"라고 말했다.


'아 역시 2인분의 시대인가' 혼술 손님을 거리낌 없이 받은 사장님이었지만 2인분에 대한 기대치는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날 고기 2인분에 잔치국수까지 클리어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 종종 혼자 고기를 먹긴 하지만 여전히 1인분만 시킬지, 2인분을 시킬지 고민이 된다. 사장님의 속마음을 보고 나서 나도 모르게 소심해진 탓일까? 시간이 많을 때는 집에서 고기판을 펼친다. 그래도 사람들 가득한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에 집중하고 있는 느낌은 꽤 이채롭다.




혼자 고기를 먹다가 다른 이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 쓸만한 방법이 있다. 가급적이면 고기의 연속성을 위해 고기는 한 번에 다 구워 놓도록 하자. 대신 한 템포에 한 번씩, 온기가 유지될 정도의 양만 굽고 그 이후에 고기를 다 먹으면 다시 굽는 쪽이 좋다. 꽤 고기가 쌓였다면 술과 함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영화나 유튜브 영상을 켜자. 우리가 다른 이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이유는 우리도 타인의 시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다른 곳에 두고 귀를 막으면 오롯이 고기와 즐거운 분위기에 집중할 수 있다. 혼자 고기를 먹는 일, 신경 쓰일 수 있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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