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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텔로 Nov 08. 2019

굽부심

초식남이지만 고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난다. 여러 친구 가운데 곁에 있으면 좋은 친구가 몇 있다. 성격이 잘 맞고 착한 친구, 돈이 많지만 허세 부리지 않는 친구, 조금 까다롭지만 깐깐한 입맛을 갖고 있어 맛집을 많이 아는 친구, 소소한 것까지 잘 챙겨주는 친구 등등. 그중에서도 고기를 먹을 때 곁에 두면 좋은 친구가 있다. 바로 고기를 잘 굽는 친구다. 결국 내 이야기다. 나름 고기 굽는 노하우가 있어 손에서 집게를 잘 놓지 않는 편이다.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 있었던 일이다. 회사에서 하는 가장 흔한 만찬, 삼겹살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사장님은 "맘껏 드세요. 모자라면 더 시키고"라며 "(내가 소고기는 못 사줘도) 돼지고기는 무한 리필해주겠다"며 나름의 허세를 부렸다. 옆에 있던 동기는 나만 들리는 목소리로 "그럴 거면 소고기를 사주시지"라며 퉁명스럽게 받아넘겼다. 식탁마다 삼겹살이 도착했고 테이블마다 고기 좀 굽는다는 사람들이 집게와 가위를 집어 들었다. 그날따라 고기가 썩 당기지 않아서 '맛있게 구워줘야지'하고 집게를 들려는 찰나 후배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눈앞에서 집게를 가져갔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뭐 자신 있으니 가져갔겠지'라며 그의 실력을 지켜보기로 했다.


드라마 <미생> 스틸컷


후배 C는 말재간이 좋은 친구다. 고기를 굽는 내내 테이블에 있던 모든 사람의 대화를 주도하며 고기를 구웠다. 잘 달궈진 불판에서 고기는 구워져 갔고 대화도 무르익었다. 그 순간 눈에 띈 게 하나 있었다. 좀만 더 놔두면 탈 것 같은 애처로운 모습의 삼겹살 한 점이었다. 후배보다 고기가 중요했던 나는 "C 씨, 태우면 안 되지. 집게 줘봐요"라며 핀잔을 줬고 그는 "한눈팔다가 깜박했네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히 그 고기는 구했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굽기 실력은 조금 오버 쿠킹 된 느낌이 강했다. 소고기에 비해 돼지고기를 좀 더 노릇노릇하고 오래 구워야 하지만 조금만 더 구우면 타거나 튀김처럼 너무 바삭해지기 일쑤다. 그 간극을 잘 조절하는 게 '굽너' 의 능력이다. 굽가 뭐냐고? 내가 만든 말이다. 그냥 굽는 사람(굽+ner)이라는 뜻이고.


C가 화장실 가는 사이 고기 3인분이 채워졌다. '이제 내 차례인가'라는 마음이 들자마자 가위와 집게로 무장했다. 흰색에서 노르스름한 색으로 넘어가는 그 타이밍에 뒤집고 양면을 구운 후 테이블에 고기를 배분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C는 내가 구워낸 결과물을 보자 아까 핀잔을 준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글 이미지


고기를 좀 굽는 편이긴 하지만 요리사에 미치지는 못한다. 요리를 잘하면 고기를 잘 굽는 걸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진정한 굽너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건은 뭘까? 아무래도 구워질 때 어떻게 성질이 변하는지, 각 고기마다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고기마다 성질이 조금씩 달라서 구울 때 주의사항도 조금씩 다르다. 


소고기나 대패 삼겹살은 열 전도율이 높아 쉽게 익혀지는 편이다. 반면 돼지고기는 소고기보다 좀 더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껍질이 함께 나오는 닭고기나 오리고기는 껍질에 유의해서 조리해야 한다. 특히 오리고기를 구이 형태로 먹을 때 끊임없이 고기를 뒤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릴에 고기가 금세 눌어붙어 버린다. 양념된 고기는 양념이 되지 않은 고기를 먹은 후 먹어야 그릴을 덜 자주 바꾸게 된다. 그리고 모든 고기를 구울 때는 불판을 충분히 데워서 익히는 게 아니라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굽도록' 해야 한다.


기왕 먹을 고기라면 맛있게 먹는 게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굽는 나도 먹는 상대도 즐거운 게 진정한 고기 먹부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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