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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텔로 Jun 29. 2020

마음이 헛헛할 땐 밥을 볶습니다

그 많던 탄수화물은 내가 먹었구나

최근에 우연히 정치뉴스를 보다가 탄수화물과 관련된 내용을 봤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지방자치 단체장에 대한 기사였는데 닭갈비를 먹고 갔느냐 포장했느냐의 문제로 재판에서 다툰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기사의 베스트 댓글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닭갈비를 먹으면 볶음밥을 한 숟갈이라도 먹는 게 국룰인데 밥 안 먹고 간 거면 주인 말대로 포장한 게 맞는 거지."


개인적으로 그 정치인에 대해 호감은 갖고 있었지만 사안이 워낙 중요하고 말이 많아서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볶음밥이 나왔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 걸까. 다들 댓글에 공감을 표시했다. 볶음밥을 먹지 않은 닭갈비는 한국인에게 의미가 없다. 그게 국룰(국민룰)이니까. 밥을 먹고 후식으로 밥을 먹는, 후식으로 밥을 먹은 후 밥으로 된 음료까지 먹는 게 우리 민족이니까. 



그럴 때가 있다. 삼시세끼 밥을 먹고도 밥이 생각나는 때, 밥을 말아먹고 나서 밥 볶아 먹을 생각을 하는 때 말이다. 대부분 볶음밥은 국물 요리, 양념이 있는 요리를 먹고 나서 진행된다. 앞서 말한 닭갈비 외에도 감자탕, 각종 고기 볶음, 수제비, 샤부샤부, 대게 요리 등 우리는 양념이 조금만 남아 있다면 밥을 볶을 생각을 한다. 볶음밥 추가 주문할 수 있는 식당에서는 밥과 양념, 참기름과 김가루가 포함된 볶음밥 레시피를 따로 마련해놓는다. 남아있는 양념이나 국물에 최적화된 볶음밥을 만들 수 있게 공유된 한국인만의 레시피랄까. 


아일랜드에 있던 시절 외국인 룸메이트는 찌개를 먹고 남은 국물에 재료를 넣는 나와 한국인 룸메이트를 보며 기겁했다. 


"국물 안 버려?" / "왜?"

"국물로 다른 요리를 하려는 거야?" / "응"

"밥 볶아 먹을 건데?" / "너희 아까 밥 먹었잖아?"


외국인 룸메이트는 두 한국인을 보면서 '밥에 미친놈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긴 그 친구가 놀란 건 이번만은 아니다. 고기를 볶을 때 다진 마을을 넣고 편으로 썬 마늘을 또 넣는 걸 보면서 기겁을 했는데 그때 만든 불고기를 마늘과 함께 쌈 싸 먹었다. 다른 한국인 룸메이트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었다. 외국인 친구는 "Oh.... No"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참 지나서 일이긴 하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밥을 볶아주면 혼자 다 먹었던 녀석. 밥이란 게 그렇다. 주식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소중하지만 주식이 고기나 밀인 민족에게는 그저 디저트인 곡물이다. 하지만 유독 우리에겐 특별한 의미, 없으면 허전한 무언가가 있는 식재료다. 사실 식재료로 표현하기엔 거대한 느낌이 든다. 밥만 있어도 물에 말아서 한 끼를 먹을 수 있지만 밥이 없다면 식사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식사를 하면서도 밥을 먹지 못하면 헛헛할 때가 있다. 고기를 맛있게 먹었어도 샤부샤부를 깔끔하게 먹은 날에도 이대로 가기엔 아쉬운 기분이 든다. 우리는 그때 밥을 볶는다. 밥을 볶을 때도 '볶음밥'과 '밥을 볶는다'는 뉘앙스의 차이가 나는듯하다. 볶음밥을 주문하면 중식당에서 먹는 메뉴가 생각난다. 짜장이 올려져 있고 짬뽕 국물을 곁들일 수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반면 '밥을 볶아달라'라고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밥을 볶을 때면 식사가 절정에 달한 기분이 든다. 애피타이저와 메인 메뉴의 경계가 없는 우리나라 식단의 경우 음식을 주문하고 물을 마시면서 식사가 시작된다. 반찬이 나오고 그것을 먹으며 입맛을 돋운다. 분명 사이드 메뉴인데도 우리는 애피타이저처럼 반찬을 먹는다. 이후 그날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가능하다면 이때 밥을 함께 먹는 이들도 있다. 고기를 먹으며 공깃밥을 먹거나 국물요리를 먹을 때 밥을 주문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식사가 기-승-전-결의 '전'까지 왔다면 이제는 마무리를 준비할 차례다. 


밥을 볶는 행위는 식사가 끝나간다는 의미인 동시에 이 음식을 완전하게 소비하겠다는 한국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남아 있는 양념과 새로운 양념, 그리고 밥이 더해지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음식이 눈앞에 등장한다. 외국인의 눈에는 밥을 먹고 또 밥을 먹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지만 우리에게 볶음밥은 음식을 먹고 새로운 음식을 기다리는 변화의 순간이다. 


음식물을 남기지 않겠다는 뜻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에 배부른데도 억지로 먹는 것만큼 미련해 보이는 게 없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걸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한때는 남은 음식을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줬지만 반려견도 사람과 똑같은 식단을 먹는 시대에 이를 행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반면 우리의 음식물은 시간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밥을 볶아주는 모든 식당에서 이것은 고민거리다. 아마 처음으로 밥을 볶아 팔기로 한 식당 주인은 버려지는 양념을 줄이고 좀 더 맛있는 밥을 제공하기 위해 메뉴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얼마 안 되는 가격으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음식물도 줄일 수 있다면 식당에선 일석이조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밥까지 볶아먹게 되면 우리의 식사는 끝이 난다. 


사람마다 습관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도 그 습관은 그대로 묻어난다. 누군가는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고 어떤 이는 담배를 피운다. 하지만 우리 모두 밥을 먹어야만 이 식사가 끝난다는 걸 알고 있다. 식사의 마지막엔 항상 밥이 있는 게 우리에겐 룰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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