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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카텔로 Jul 16. 2022

별일 있어도 산다

서울 촌놈들의 선입견

제대를 1년 앞둔 2009년 군 복무를 하면서 세상 희한한 음악을 듣는 후임을 보게 됐다.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의 데뷔 앨범이라고 했다. 특별할 게 없는 표지에는 범상치 않은 노래 제목이 빼곡히 있었다. '싸구려 커피', '멱살 한 번 잡히십시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그리고 이 앨범과 동명인 '별일 없이 산다'까지. '노래 제목을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그들의 음악을 듣는 후임병을 지나쳤다. 그리고 그 음반은 얼마 뒤, 대한민국 명반 100에 들어갔다.    

  

최근에 이 음반을 듣던 후임 녀석의 SNS DM을 받았다, 간단한 내용이었다.     


"형, 잘 지내요? 서울은 아닌 거 같던데?" / "응. 강릉에서 일하고 있어."
"있을 만해요?" / "응. 지낼 만 해.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   


별일은 없다. 그리고 특별한 일도 없다. 원래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나. 장기하가 목청껏 외쳤던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의 조건에는 '별다른 걱정이 없다'가 포함되는 것일 테니. 노래를 들으며 회사에서 작업하는 연재 시리즈를 작성했다. 강릉의 생활이 현재 이 글의 주된 테마라면, 회사 일로 쓰는 글은 일과 휴가, 워케이션, 로컬 생활을 주제로 회사의 입장과 내 생각을 적절히 버무려 쓰고 있다. 오늘 올라갔던 회사 연재 글의 주제는 ‘직장과 휴양지 두 가지로 보는 강릉’에 관한 이야기였다.   

   

글을 쓰고 재교를 하면서 문장 하나가 들어왔다. 분명 내가 쓴 건데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고, '저 문장을 곰곰이 곱씹어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하 출처 : 언스플래쉬



'살만한가'에 담긴 숨은 뜻? 

    

이에 대해 생각해보기 전에 '살만하다'라는 말이 언제 나올지 상황을 그려봤다.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데, 뭔가 걱정이 되면서도 안부는 묻고 싶을 때

어딘가로 떠나고 싶거나 새로운 일을 찾으려고 하거나 도전을 하고 싶은데 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들 때

누군가와 얘기를 하는데 상대의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고, 살짝 불쌍하거나 안쓰러워 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의 상황을 내리깔면서 상대의 의중을 물어볼 때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거의 대부분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닌 그냥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어영부영 내뱉은 말이거나, 걱정은 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보다 ‘왜 저럴까’하는 약간의 비아냥과 '고생할 거 같은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서 나온 1%의 안타까움이 뒤섞인 말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걱정돼서 "살만하냐?" 혹은 "강릉은 지낼 만하니?"라고 다소 순화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다. '먹고살만한 건가?'라는 벌이에 관한 부분을 돌려서 말할 때도 있었다.     




등가교환의 법칙     


앞선 글에서 삶, 특히 지역에서 새롭게 정착하고 시작하는 생활에 대해 나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결국, 종합해보면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어디든지 다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거나. 엄청나게 많은 지역에서 살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고, 좋아 보이는 것이 있으면 거슬리는 것도 존재한다. 삶의 등가교환은 언제나 적용되는 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보면 대도시와 지방 소도시, 지방 거점 도시만 해도 그 차이는 명확하다. 사회 전반적인 인프라(교통, 취업군, 교육, 사회 기반 시설, 그 외 기타 등등)의 차이도 크고, 사람도 적다. 대신 조용하고 압박감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예를 들어 강릉에도 대중교통이 있지만, 버스 타고 출근하려면 시간을 정말 아주 잘 맞춰야 한다. 그래서 날이 괜찮으면 걷고, 그렇지 않으면 홀로 자차로 이동한다. 이 생활도 적응이 된 모양인지, 오랜만에 본가에 가서 서울, 경기에 있는 친구들을 보려고 대중교통을 타면 알 수 없는 압력에 시달린다. 버스에 승객이 적어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귀신인지, 우주의 암흑물질인지는 몰라도 바삐 사는 수도권 사람들의 분주함이 물리적인 힘으로 느껴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어떻게 출퇴근을 했는지 상상이 안 간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시달리고 바로 일을 하니 능률이 낮았던 걸까 싶기도 하다.    


       


'살만한가' ≒ '먹고살만한가?', '밥 벌이는 되니?'

   

연애, 구직, 생활의 비슷한 점이 하나 있다. 좋은 걸 더 좋게 보는 것이다. 나쁜 것, 눈에 거슬리는 것, 안 좋아 보이는 걸 신경 쓰면 한도 끝도 없이 부정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건 해결이 쉽지 않다. 애초에 해결이 될 부분이었다면 홀로 생각하지 않고 상대나 부정적인 평가의 대상에게 변화를 촉구했을 것이다. 결국, 혼자 고민하고 답답해하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극단적인 굴레에 빠지기도 한다. 아. 물론 내 얘기다.    

 

생활과 일, 모두에서 사람들이 많은, 트렌드를 주도하는 곳에서 벗어나면 불안해진다. 디지털 노마드니, 유비쿼터스니 해도 당장 옆에 붙어서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들에 비할 바가 못된다. 멀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더 멀어지지 않으려고 한동안 서울로 이직하는 것을 줄기차게 알아봤다. 지금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고 싶긴 하다. 다만 '무조건 옮겨야겠다'라는 대책 없는 답보다 '지금 생활보다 모든 것이 나은 조건이 되면 옮겨야지'라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물론 지금 생활에 점점 만족하고 있기에 내게 들어오는 스카웃 제의를 고르고 또 골라서 가끔 면접을 보는 정도로 마무리한다.   

   

면접을 볼 때 열정이 없다기보다 면접을 하는 회사와 보는 나 사이에 적당히 얻을 것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내 경우엔 서울 사람들의 생각과 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나 죽지 않았구나'라는 적당한 자기만족을 동시에 얻고 있다. 그쪽에서는 능력을 갖춘 인재인데 서울을 떠나서 일하는 이유를 물을 수도 있고, 면접 제의하니 제 발로 온다는데 거절할 리 없다. 나름의 윈윈인 셈이다. '살만한가'에 대한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먹고살만한 수준'이 되거나 '익숙한 곳을 떠나 버는 돈이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면 "응. 살만해."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살만하니?"에 대한 답, "(일 잘하면서별일 없이 산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억지로 만족감을 느끼며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 30%는 맞고 70%는 틀린 말이다. 나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이 주는 즐거움과 행복, 만족감을 더 세세하게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우선 서울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여기서 향유하기에 만족도는 조금씩 커지고 있다. 분명 이 만족감은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하기에 여기 생활보다 좋지 않은 곳을 오아시스라 여기고 도피할 수도 있다.

     

요즘 강릉 생활이 조금 더 좋아진 이유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내 생활을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너 아직도 강릉에 있어?" / "응. 여기서 열심히 일하면서 살고 있지. 별일 없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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