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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준수 Sep 18. 2022

두부 한 잔 할래요?

이미지로 기억되는 로컬

"횡성은 원주보다 상대적으로 더 지방 같은 모습이 강했어.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아파트 단지도 많고 젊은 사람도 많더라고. 적지 않게 놀랐지."


너무 오랜만에 이곳에 왔다. 운전을 하며 이야기를 듣다보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기억도 나지 않는 돌잔치 전에 어린 준수는 횡성에서 1년 남짓 살았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초등학생 때 왔던 기억을 제외하면 내 발로 처음 횡성에 오게 됐다. 그리고 위 대화를 나눴다. 왜 저런 이야기를 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횡성 하면 떠오르는 게 뭔지 생각해봤다. '한우'다. '아... 도시 이미지에 소 키우는 게 크게 자리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무렵, 강릉이 떠올랐다. 강릉 외부 지역 사람들, 대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이 도시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하 출처 : 언스플래쉬


누구나 하나의 이미지로 기억하려 애쓴다


앞서 몇 번 얘기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 지역을 기억할 때 그곳의 중심 이미지를 도시 이름처럼 기억한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람마다 그곳을 기억하는 대상이 다를 뿐, '어디 ≒ 무엇'의 공식은 흔히 볼 수 있다. 부산엔 해운대, 인천엔 월미도, 강릉의 경포대처럼 해변으로 기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전주는 비빔밥, 천안엔 호두과자, 강릉의 초당두부 등으로 음식과 도시를 연결시키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에 따라, 정보가 먼저 들어온 순서, 가장 크게 인상에 남은 순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어떤 가상의 모양이나 이미지를 어느 것의 대표로 기억한다. 예를 들면 학창 시절에 나를 만났던 친구들은 나를 오랜만에 만나도 곧잘 기억하는 편이다. "아. 변... 누구 맞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에게 변 씨라는 내 성씨는 특별하게 기억할만한 요소인 듯했다.


대부분 지방 도시들도 대도시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자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필요한 정보,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반면 서울은 모두에게 중심지로 여겨진다. 저마다 기억하는 것은 다르지만, 서울은 그 단어 자체로 무언가 다른,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항상) 있는 곳으로 남아 있다.



모래시계와 초당 두부


그런 의미에서 강릉은 다른 도시 사람들에게 정동진과 두부의 도시로 기억됐었다. 정동진은 1995년 주인공 윤혜린을 연기한 고현정 배우가 머물렀던 간이역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사실상 폐역이나 다름없던 정동진역은 그 이후, 고현정 의자로 알려진 벤치와 함께 모래시계 공원이 세워질 정도로 많은 드라마 팬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중학생 때 부모님과 강릉, 정동진 여행을 갔을 적에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드라마에 심취해 정동진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1996년 북한의 무장공비 26명이 타고 침투했던 잠수함을 구경하고 강릉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정동진 역이 보일 무렵 아버지는 모래시계 OST가 담긴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들었다. 음울한 멜로디는 흐린 여름 하늘, 아무도 없는 텅 빈 역을 지키고 있던 고현정 벤치와 닮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이 도시를 동쪽 끝에 있는 외로운 어촌 마을 정도로 새기고 있었다.



초당 두부가 인기를 끈 것도 90년대 말부터로 기억하고 있다. 정동진을 방문했던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점심으로 초당 두부마을로 가 순두부 정식을 먹었다. 여행에 있어 볼거리와 즐길 거리, 먹거리가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강릉 여행의 먹거리 동반자로 두부가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난여름 경포와 초당 쪽을 지나갈 일이 있어도 초당 두부마을 골목은 지나가지 않았다. 여름의 초당동은 강릉 시민의 것이 아닌 관광객의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초창기 이곳의 이미지는 경포대 근처의 낡은 여관과 여인숙, 초당의 두부, 정동진의 역과 덩그러니 놓인 벤치가 전부였다. 다른 이들의 기억에서도 강릉이 이랬을까. 아니면 강릉의 처지가 이러했던 걸까. 강원도 저 끝의 도시는 알 수 없는 단편적인 이미지만 흩뿌려 놓은 채 머릿속에 남았다.




커피와 테라로사


2000년대 초반 서울을 거닐면서 처음으로 초록색 간판이 달린 이상한 가게를 발견했다. 저마다 하얀 컵에 갈색 컵홀더를 끼고 "역시 커피는 스타벅스지."를 말하며 지나갔다. 대학을 지방으로 다녀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고도 커피를 챙겨 먹게 된 건 한참이 지나고 일이었다. 2010년 모교에 복학하고 서울을 오가면서 여러 커피숍이 있는 걸 알게 되었다. 믹스커피에서 드립 커피까지 한국인들은 커피를 참 좋아한다. 그리고 강릉, 정확히 말하면 주문진에서부터 시작된 박이추 바리스타의 보헤미안과 강릉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 테라로사의 성장으로 이곳은 명실공히 '커피의 도시'가 되었다.



커피가 주는 이미지는 도시의 경관을 바꿔 놓았다. 여러 도시 재생산업과 해안 관광지 개발 사업 등과 맞물리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동쪽 끝 바닷가 도시에서 커피를 마시려면 한 번은 가봐야 하는 메카가 된 것이니 그야말로 이미지의 환골탈태가 이뤄진 셈이다. 경포와 강문, 안목으로 이어지는 해변에 즐비하게 있던 여관과 여인숙은 도심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를 대형 호텔과 숙박시설이 메웠다.


그리고 두부 먹고 나면 할 게 없던 도시 강릉은 동해의 파도를 보며 커피를 즐기는 낭만적인 도시로 변했다. 두부를 먹기 바빴던 생업의 도시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느끼는 공간으로 바뀐 셈이다. 관광도시 강릉은 그렇게 외적인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됐다.



커피 그다음은?


광역시 규모의 지역 거점 도시들은 저마다 특징을 갖는 동시에 '기회만 되면 살 수도 있겠다'라는 느낌을 준다. 교통, 인프라, 사회 시설, 분위기, 문화시설 등등. 메트로폴리스가 갖춰야 할 것들을 두루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인구나 도시 규모가 되지 않는 도시는 아까 말한 것과 같이 단편적인 대상이나 대표적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KTX가 개통되면서 강릉의 접근성이 더 좋아지고 많은 관광객이 모이고 있지만, 애매하다. 워케이션, 관광, 바다 등은 내륙에 있다는 관광도시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제주에 밀린다. 제주만 해도 여행 가기 전에 많은 사람이 '제주도의 푸른 밤'을 듣는다. 원곡 가수인 최성원 버전이든, 성시경이든, 태연이든, 규현이든 저마다 취향에 맞는 목소리로 제주를 그리며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강릉은... 송창식 씨의 고래사냥 정도? 노래는 좋지만 여행의 설렘을 만드는 곡은 아니다.



도시, 특히 로컬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 후각, 미각 등 여러 가지 공감각이 하나의 느낌을 만들고, 개인에게 지방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시킨다. 누군가는 그저 시골 깡촌 정도로 여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미지의 땅, 섹시한 이방인이 기다리는 어딘가로 그린다.


그런 면에서 강릉은 커피 다음의 무언가가 아직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강릉보다 양양과 속초로 더 많이 향한다. Hip 한 느낌은 양양과 속초에 있으니까. 힙한 느낌을 채워줄 워케이션, 맥주 등등 여러 가지 강점이 있지만 모두의 기억 속에 각인되기엔 아직 부족하다. 어느 날, 모래시계에 고현정이 정동진을 간 것처럼, 좀 더 색다른 커피를 찾아 나선 이들이 강릉에 온 것처럼 로컬의 이미지는 강렬한 임팩트와 오랜 기간 유지되는 지속성이 더해질 때 굳건히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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