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과 중독, 이해의 경계

by kaya


누군가는 사랑을 갈망하고, 누군가는 돈을 좇으며, 누군가는 일에 자신을 던진다.


중독자

나는 이 단어를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가깝다 느낀다.

중독은 결핍의 그림자다.

그리고 결핍은 인간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남는 흔적이다.


조현병과 알콜중독,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질병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가지 사이에 흐르는 공통된 감정의 곡선을 본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조현병을 겪는 것을 지켜보며, 절망과 연민과 동시에 이상한 유사성을 느꼈다. 술을 마시며 허무와 싸우던 그 시간,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와 충돌하고 있었고, 그 충돌의 파편은 너무도 비슷한 언어를 갖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중독과 조현병은 닮아 있다.

모두 도파민 시스템의 과잉이나 왜곡된 흐름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 도파민은 쾌락이나 환각의 언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뇌의 신호 그 자체이기도 하다. 조현병은 단지 환청과 망상이 아니라, '자기'와 '세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질병이다. 나라는 감각과 세상과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중독 역시 그렇다. 외부 자극이 곧 내 감정이 되어버릴 때, 우리는 더 이상 주체로 살 수 없다.



나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기질이 있다. 감정 자극뿐 아니라 빛, 소리, 상대의 표정, 분위기 같은 환경적 요인에도 과도하게 반응한다. 이런 기질은 나를 쉽게 감응하게 만들었다. 상대방의 슬픔, 분노, 스트레스 등의 감정과 기류에 동화되는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종종 그것이 나 자신인 줄 착각했다. 조현병 환자들이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고 그로 인해 자기를 잃어가는 순간들과 겹쳐진다. 이것은 조현병에서 말하는 ‘자기-타자 경계 붕괴’와는 다르지만, 감정의 경계가 얇은 상태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유사한 고통의 구조를 공유한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는 타자의 욕망을 거울처럼 반사하며 구성된다. 타인의 감정에 감응하는 ‘나’는, 곧 나 아닌 것으로부터 구성된 ‘분열된 자기’다. 이 구조에서 고통은 필연이다.


Ronald D. Laing이 말했듯 조현병은 “세계에 너무 민감한 자들이 겪는 존재론적 반응”이다. 감응자의 고통도 이와 유사하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자기화하며 그로 인해 때로는 자기 파괴적인 선택으로 도망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술에 의존했다. 진짜 중독된 건 술이 아니라 “도망치고 싶은 감정” 자체였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며 책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감응자의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랑은 자아의 붕괴를 동반한 체험이며, 상대를 향한 몰입은 곧 자기와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나는 상대에게 깊이 감응된 순간, 내 자아는 경계를 잃었고 그 사람의 슬픔은 내 안에서 진동처럼 울렸다. 그것은 조현병 환자들이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었다.


조현병은 단순히 환청이나 망상으로 정의되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붕괴되는 병이며, 스스로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분열'과의 싸움이다. 랭은 『분열된 자기』에서 조현병 환자들이 단순한 질환의 피해자가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에서 깊은 균열을 겪고 있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는 조현병을 '존재의 위기'로 이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식은 정신과적 치료 이전에 그들의 존재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감히 내가 병의 상태를, 나아가 어떤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시선을 깊이 지지한다. 조현병인 사람들은 우리가 익숙한 언어 체계 밖에서 말하고, 감각하며, 행동한다. 그들은 종종 우리에게 비논리적이고 파괴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파괴성조차도 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다. 랭이 말했듯, 조현병 환자는 사랑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사랑을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기의 내부로 타인이 들어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경계란 생존의 수단이고, 그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무방비하게 존재를 내어주는 일이다. 어떤 면에서 이건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내용이지 않을까.



이 책을 읽게 되면 깨닫게 된다. 조현병은 이상한 병이기보다는 하나의 감정 구조이며, 존재의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지만 실은 우리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경계 위에 서 있다. '정상성'이라는 허구적 개념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자기 감각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글은 조현병 환자들을 위한 글이 아니다. 이건 우리가 모두 조금씩 조현병적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고백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경계를 방어하고, 때론 무너지고, 다시 회복한다. 정신의학의 언어로 보자면 그것은 병일 수 있지만, 철학의 언어로 보자면 그것은 '존재' 그 자체일 수 있다.


조현병인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나와 세계의 경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그것은 어떤 공감의 선언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다.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였던 랭이 말했듯 우리는 도와야 한다는 윤리 이전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진단을 ‘붙이기’ 전에 먼저 ‘듣는 것’이다. 그들이 건네는 그 감정의 구조에.


정신의학은 점점 더 뇌과학적으로 정교해지고 있다. 우리는 세로토닌, 도파민, 시냅스, 수용체로 인간의 감정을 분석한다. 하지만 어떤 분석도 인간의 고통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저자의 문장을 기억한다. "정신증은 그 자체로 이해받아야 한다." 이는 미친 사람이 아니라,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 겪는 극단의 상태일 수 있다고.


로널드 랭은 말한다.

"사랑의 첫번째 임무는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 귀 기울임이, 누군가에겐 생의 유일한 구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그 '누군가'가 나일 수도 있다.



※ 본문에 포함된 이론적 해석 및 감정적 서사는 필자의 개인적 경험과 해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05
로널드 D. 랭, 『분열된 자기』, 이재훈 옮김, 새 물결, 2016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Harper Perennial, 1956
Ronald D. Laing, The Divided Self: An Existential Study in Sanity and Madness, Penguin Books,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