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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자들의 소울

생명의 중심(서울)에서 비껴가기

by 김틈

정태춘 선생의 <떠나는 자들의 서울> 이 곡은

1983년 여름 신림동 달동네 '복사'트럭에 세간살이 싣고 몇 시간을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대구 월배로 오던 날의 기억에서 감상이 회귀하는

귀동냥 역사같은 노래다.


시골을 좋아하던 내겐

반 도시 반 촌인 대구 월배는 친구들과

개천을 뛰어다니고 소꿉놀이를 하던 천국이었고

산동네 인구밀도 높은 학교 오전반 혹은 오후반에서 빽빽하게 공부하던 형은

축구부를 하며 오락실로 도망 다니며 뛰던 넓은 들판이었다.


서울은, 살기 위해

마치 생존의 심장이나 된 듯한 그 장소로, 살기 위해

모두가 '기어이' 향하던 곳이었고


그 생존의 퍼덕거리는 날갯짓을 더는 힘들어 못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떠나던 곳이었다.


"어딜 가든 저들 반겨 맞아줄 땅 있겠는가... 허나 가자, 떠나는구나...

가면 다신 못 돌아오지... 저들을 버리는 독점의 도시..."(by 정태춘)


다시 입시의 계절이 되었고 In / Out의 금을 밟으면 죽을 것 같은 '서울'의 찬가가

여전한 대한민국을 낯설게 본다.


이 트럭에 실려 서울을 떠나던 유년의 기억.

서울은 '머리'라는 뜻으로도 읽혔지만. 지금은 '가운데, 중심'의 의미로 더 다가온다.

그 중심에서 벗어나는 순간 차가운 외면과 소멸의 바람을 직면해야 한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뒤덮을수록

일곱 살의 여름날 내겐 너무도 커다랗고 신기하던

복사트럭 운전사 아저씨 옆자리에 앉아

핸들과 크러치와 악셀페달을 유심히 보던

햇볕 가득하던 경부고속도로가 떠오른다.

친절한 기사님이 휴게소에서 사주셨던 아이스크림도.


떠나는 것은 살려고 발버둥 치며 중심을 비집고 향하는 마음보다

자유롭고 넓다.

물론 누군가는 실패로 이름 붙일지 모르지만.

내 기억 속 그리고 현재의 부모님은 실패나 성공과는 무관한 새로운 도전과 여행으로 생존하려 했던 사람들.

'그때 서울 그 산동네 집이라도 한 두채 있었으면 지금 얼마냐...'같은 이야기도 관심 없는 분들


떠나는 것은 정착과 번성의 반대편이 아니라

확장과 새로움으로 향한다.


다시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을 본다.

막막하고 더럽고 서럽다 욕하지 않는다.

안락한 집에서도 그 집의 안방을, 그 안방에서도 아랫목을 차지하려 애쓰지 않는다.

어차피 가질 수 없는 땅, 잠시 딛고 서서 한 생을 살아가는 기회일 뿐.


떠나는 자들의 서울을 뒷 배경으로

떠나는 자들의 소울이 빛난다.


거기에 가야만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던 맹신이 깨지는 날

무덤처럼 산동네 어둠 위로 둥둥 떠 있던 무서운 붉은 네온 십자가에서 깨어난 날

사람들의 소울은 그제야 해방될지도 모르겠다.

욕망의 엔진은

해방된 '소울'의 핸들과 브레이크와 액셀페달의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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