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월 May 07. 2022

우리 완다 그런 애 아니거든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2022)

* 본글은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뉴욕 방범대였다. 뉴욕에서 시작해서 지구, 우주를 거쳐 이제는 다중우주(멀티버스)까지, MCU의 히어로들이 지켜야 하는 것들은 그들의 세계관과 함께 확장되어왔다. 타노스라는 거대하고 강력한 빌런이 우주를 반토막내려는 걸 장장 6시간여의 여정에 걸쳐 막아낸 뒤, 페이즈4에 접어선 MCU는 드라마 <로키>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열심히 도입했다. 이토록 비대해진 세계관 속에서 군데군데 빈틈이 생겨나는 건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존의 팬들에게는 설정구멍이나 개연성 부족, 캐릭터성 붕괴 같은 아쉬운 점들이 보이고, 새로 유입되는 관객들에게는 기존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공유되는 소위 '닥스2 보기 전에 봐야 할 것들 목록'이 부담스러운 진입장벽이 되곤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이러한 '멀티버스' 세계관의 '대혼돈'이 여실히 드러난 영화였다. 샘 레이미 감독은 '대혼돈의 멀티버스' 각본을 절반 이상 완성한 이후에야 드라마 <완다비전>의 존재를 알았고,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도 <완다비전>을 전부 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완다비전>과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각각의 작품으로서는 이해에 무리가 없지만, 그 속의 완다 막시모프가 같은 인물로 연결이 되기에는 합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처럼 납득되지 않는 지점들이 많다. <완다비전>에서 완다는 비전과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려서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한 마을 전체 사람들의 인격과 일상을 빼앗았다. 이러한 이기적인 행동은 정도는 훨씬 약할지언정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의 행동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결국 완다는 비전과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모든 것을 되돌려놓는다.


이렇듯 <완다비전>에서 완다가 상실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 갑자기 완전한 빌런이 되어 나타난 완다가 똑같은 잘못을, 그보다 훨씬 잔인하고 악한 방식으로 되풀이하는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완다비전> 이전 작품들에서도 완다는 꾸준히 누군가 죽고 다치는 것을 꺼려하는 면모를 보여왔다. 쿠키 영상에서 다크홀드를 손에 넣은 모습이나, '다크홀드가 사용자를 타락시킨다'는 빈약한 설명 한 줄로는 그 간극을 메울 수 없다. 엘리자베스 올슨의 열연이 그 공백을 상당 부분 메꾸며 '스칼렛 위치'를 관객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지만, 그럼에도 완다의 급격한 탈선에 대한 찝찝함은 남는다. 그러니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완다비전>을 먼저 보지 않아야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즐겁게 관람하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


<완다비전>에서는 죽은 연인 비전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 즉 비전과 만든 '가족'이 완다의 집착의 대상이었다면,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대사 한두줄 외에는 비전이 아예 자취를 감추고 완다의 집착이 오로지 '아이들'을 향한다는 점도 의아하다. 비전이 사라지고 아이들만 남음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손으로 죽였는데 무의미한 일이었다는 내용은 대사 한 줄로 처리되고, 타노스에 견줄 만큼 강력한 빌런이 된 완다의 동기는 '모성애'라는 뻔한 클리셰가 되어버린다. 또 한편으로는 마블이 히어로들에게 지나치다고 생각될 만큼 지독한 불행 서사를 부여하는 것 역시 마블 초반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아쉬워진다. 물론 히어로들은 늘 상실을 겪어왔지만, 캐릭터의 서사와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상실이 아니라, 단순히 영화를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로 히어로의 불행과 상실을 남발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반가운 캐릭터를 여러 작품을 넘나들며 만날 수 있다는 세계관 공유의 강점이, 이번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오히려 혼란을 야기했다. 기존에 관객이 알고 있던, 혹은 이전 작품에서 표현된 인물과, 새로운 작품에서 감독이 표현해낸 인물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세계관을 점점 큰 범위로 확장해나가고 있는 MCU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다. 공유하는 세계와 인물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이 정성껏 구축해낸 세계에 금이 간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를 지켜봐온 팬으로서, 부디 원만한 합의를 통해 그 세계가 오래오래 무사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위대한 이름과 위대한 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