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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Jul 28. 2023

평안하시지요?

오랜만입니다.

“평안하지요?”     


아직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건너편 아파트 불빛이 어둠에 안겨 있습니다.

어제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모든 소리가 젖어 내려 앉은 듯 사위가 고요합니다.

이렇게 고요함 속에 있다보면 우주라는 품에 폭 안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느낌을 깨닫게 된 이유는 몇 해 전 『빨간 머리 앤』을 다시 읽게 된 이후부터였습니다.

     

 “정든 세상아,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네 속에 살아 있다는 게 너무 기뻐.”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 p524. 인디고)  


앤의 말은 마치 내가 새벽을 좋아하게 된 정답을 알려 준 것 같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습니다.     


‘품’이라는 말은 ‘두 팔을 벌려서 안을 때의 가슴’으로 쓰는 명사인데 사전을 찾아보면 유의어로 ‘가슴’, ‘보살핌’, ‘보호’ 등이 있다고 나옵니다.

여기에 저의 유의어를 덧대어 따뜻함에 평안함도 보태고 싶습니다.

‘품’은 아무 탈없이, 걱정없이 다독이는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평안하시지요?"

시험을 하루 앞 두고 민법 과목을 지도하는 K교수가 밴드에 올린 글 첫마디인데 저는 이 글을 읽고 정말 평안해졌습니다.     


마치 그 평안의 품에 안긴 듯 정말 편안하게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시험 결과도 좋았습니다. 아마 그 글을 읽은 수험생 모두가 저와 같았을 테지요.   

   

말이 주는 힘이란, 때론 우리 삶 속을 직접적으로 개입하면서 정돈해 나가는 힘이 있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오늘은 비가 와도 눅눅해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이 널따란 우주 안이 제법 따뜻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평안을 전합니다.      


- 2023.07.28. 정온유(체칠리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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