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키우며 부모라면 늘 많은 고민들을 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지 경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된다. 반면교사를 위해 인생에서 직간접적으로 듣고 겪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실패 원인을 분석, 정리해 보았다.
가깝고 먼곳들에서 집 안에 혈압 오르게 하는 존재들이 하나씩 있다. 그 정도는 약간씩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옆에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너무 기가 차고 스트레스받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으니 형제의 연을 끊는 게 맞다고까지 결론 내리게 되는 경우들을 본다. 걱정 없는 집안 없다고 했던가. 집에 식구가 많을수록 그럴 확률은 올라가고, 특히 끝까지 '아들'을 보려다 여럿이 되어버린 집안은 더욱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귀하고 소중한 아들들이 어쩌다 크고 보니 집안의 골치 덩어리, 문제아가 되었을까?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왜 그럴까냐고? 천만에. 결코 그들은 같은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 다둥이를 키우는 또래 부모들에게도 솔직한 심정을 물으면 분명히 더 이쁘고 덜 이쁜 애가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솔직히 인간이라면 그 어떤 사소한 것에도 선호도와 케미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진실이다. 하지만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도 할 터. 어쩌다 제일 이쁜 자식이었던 그들이 오히려 문제아가 되었을까?
공공연한 면죄부
어린 내가 보면서도 부당한 것들이 살면서 너무도 많았다. 일찍이 자의식에 눈을 뜬 나는 일관되지 않은 원칙에 늘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거리낌 없는 한 마디였다. "쟨 아들이고, 막내잖아." 아니 그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논리가 될 수 있는 말인가?? 아들이어서 막내여서 해도 되고 안될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계속 자신들에게 적용되어온 특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커왔고, 어른이 되어서도 사회에서도 그것이 당연할 것이라 기대하며, 그것이 안되었을 때에는 자신이 아닌 남이나 사회 탓을 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익숙했던 특별한 면죄부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로 나왔을 때, 그들은 왜 항상 자신의 일만 제대로 풀리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며, 본인의 눈높이와 실제 사회에서 처한 자신의 객관적 위치와의 괴리를 인정하지 못한다. 부모가 자식으로서 한 개인을 소중하게 사랑해주는 것은 맞지만, 그건 본인이 세상에서 혼자 특출나게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항상 특별 대우를 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주지시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 안에서 특출난 사랑을 받을 수는 있어도 사회에 나가면일개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라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지 못한다면, 과잉보호로 인해 제대로 된 사회화 교육을 못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거침없이 받는 나무
그리도 소중한 막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인데 뭔들 안 해주고 싶을까. 부모들의 과도한 사랑은 스스로의 희생도 기꺼운 마음으로 하도록 만들며, 그 희생이나 힘듦을 굳이 드러내지도 않는다. 부모의 뒤꿈치가 헤진 양말 따위는 스스로 눈에 들어올 리가 없고, 부모 스스로를 위한 씀씀이나 가정 경제 따위는 단 한 번 생각해볼 겨를 없이 자신에게 고가의 브랜드를 사주지 않는다고 생떼를 쓰며, 때로 거침없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 남도 아닌 부모도 안중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충족되지 않은 욕구만 남아있는 괴물이 되어가는 동안, 부모는 스스로 이 사태에 충격을 받아, 혹은 경제적인 이슈에 함몰되느라 비뚤어져가는 인성을 바로잡을 타이밍을 놓친다. 이런 자식들의 공통점은 어버이날이나 생일 때도 뭐 한 번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서 늘 자신에게 해주지 않은 것만 평생 기억하고 원망만 한다. 부모는 네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사람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상황임을 끊임없이 주지시켜 공감능력을 키우게 했어야 한다. 부족한 것 없이 잘난 부모 인척 뒤에서 아등바등 무리한 요구들을 어떻게든 충족시켜줘 봤자 고마워하기는 커녕 점점 더 바라는 것만 커질 뿐이다.
노력 없는 보상, 자식에게 휘둘리기
늘 그런 식이었다. 엄마가 "이번 시험 잘 보면 뭘 해줄게" 하면, "그걸 먼저 사줘야 시험공부도 하고 잘 볼 거야."라고 생 떼를 쓰는 식. 이때 어떤 땡깡을 부리든 진상을 피우든 굴하지 않고, 세상에는 그런 식의 거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애초부터 확실하게 일깨워 줘야 했다. 아니면, 한 번은 믿어 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즉각 선지급한 보상을 회수하고,다음번의 유사 거래는 결코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어야 한다. '선 보상, 후의 결과는 나 몰라라'가 몇 번 반복되면, 나중에는 본인이 당연히 해야 하는 공부임에도 마치 대가가 있으니 겨우 마지못해 해'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라고 할 땐 그리 안 하던 공부를 나중에야 후회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뒤늦은 대학원을 시작하면서도, 노쇠한 부모의 경제 사정은 안중에도 없고 30대의 나이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학비를 뜯어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심지어는 그것이 부모를 위해 기쁘게 효도한 일이라는 착각과 자기만족에 빠져 산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세상 어떤 협상도 조건 충족과 보상의 선후 관계가 명확하다는 것을, 부모 자식 간이라고 봐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칙을 더욱 엄격히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집이 빚더미에 나 앉고 있는 상황에도 본인은 부모 카드로 외제차에 오피스텔 얻어 당당하게 나가 살다가 외국 유학 보내라는 인간도 들어봤고, 평생 취직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도, 기회를 줘도 얼마 못 가고 본인의 눈높이와 처한 위치 간의 괴리를 인정하지 않고 히끼꼬모리처럼 30대 중반에도 부모에게 기생하는 인간도, 그간 돈 한 푼 안 모으고 부모 용돈 몇 번 제대로 준 적도 없으면서 지 좋아서 하는 결혼을 마치 그들을 위해 대단한 효도라도 해주는 냥, 형편에 맞지 않는 각종 요구들이 너무도 당당한 인간도 본다. 부당함을 평생 느끼면서 악착같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서 겨우 자립적으로 궤도에 오른 누나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가까운 곳에 기생하는 암 유발자에 다름 아니다. 아예 모르는 남이었다고 하더라도 혈압 오르는 이야기인데, 남이 아니라 특히 내 부모를 좀먹는다는 생각에 매 에피소드가 추가될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다.
각설하고, 자식 농사를 망치는 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니었던 행동들이 쌓여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가 없으므로, 주요 원인으로 짚어봤던 위의 행동들은 각별히 주의하면서 자식을 양육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결과까지 본 실화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특히 우리 세대 귀한 아들일 경우가 많아졌는데, 요즘은 귀한 손들이 많아서 꼭 막내아들이 아니더라도 비슷하거나 더한 환경도 많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보고 들은 경우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아예 스스로가 자각이 없는 부모일 경우에는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할 때조차 오히려 감싸고 더 악화시키는 경우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많이 보지 않는가? 한 인간을 키워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답게 키워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리적 부모가 되기 전에, 정신적으로 견고한 부모의 교육 철학 수립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