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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n 18. 2024

AI가 등판하면 전문 지식이 필요 없어질까?

전문가, 그 어렵고 험난한 길

AI의 등장으로 우리는 많은 것들이 해결되고, 또 반대로 많은 일들이 필요 없어질 것으로 쉽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많은 전문 분야들에 대해서 굳이 공부할 필요가 아예 사라지는 것일까? 실제로 이제는 코딩 한 줄 몰라도 앱을 만들고, 굳이 공부해서 머리에 넣지 않아도 언제든 질문하면 되니 전통적인 전문 지식 공부가 점점 필요 없다는 얘기도 나오는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전문 지식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1. AI의 결과값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


AI는 다양한 분야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단 몇 초만에 원하는 만큼 쏟아낸다. 하지만 그 많은 정보 중 최종 결론을 위해 무엇을 취사 선택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물론 선택조차 귀찮아서 하나의 답만 요구하고 그것만을 정답인 양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인간의 선택이긴 하다. 하지만 그 답변이 맞는 내용인지, 어느 정도로 적절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즉, AI가 내놓은 답변을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조직으로 비유해 보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내가 팀장이고 굳이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밑의 팀원들에게 시켰는데, 어차피 그 직원들이 하는 일이라고 해서 내가 내용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가져오는 산출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가 없다. (실제로 그런 일이 조직에서 왕왕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연히 그것이 팀 성과를 위해서 충분히 괜찮은 수준이었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다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스스로가 뭘 제대로 알아야 일도 제대로 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2. 과정에서의 오류를 수정하고 고칠 수가 있다.


전반적인 맥락에서 괜찮은 방향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중간중간 분명히 오류가 나는 지점이 발생할 것이다. 그것이 애초 가공되지 않은 원본 데이터의 오류로 인한 것이든, 일시적인 과부하로 인한 현상이든, 잘못된 데이터의 축적으로 인한 결과값이든 분명히 AI도 완벽하지 않은 중간 산출물들이 발생하고 있음을 여기저기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 나의 경험담도 있다.) 아직까지는 분명히 인간의 최종 검수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어디부터 수정이 필요하고, 어떻게 바꾸어야 제대로 된 결과값을 도출할 수 있을지 역시 관련 지식이 없다면 결론을 내리고 액션을 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회 초창기 시절, 현란한 엑셀 시트들을 보면서 단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때보다는 덜하지만, 그런 것은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나의 사수님은 시사점을 성급히 도출하기 전에, 매와 같은 눈으로 데이터 자체의 오류를 먼저 짚어내고 데이터를 다시 매만지는 데에 시간을 먼저 쓰셨다. 처음과는 다른, 제대로 된 결과값이 나오고 나서야 시사점을 뽑는 방법으로 작업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었다. 당시 팀장님의 내공은, 심지어 중간 작업 단계를 보지 않고도 전체 최종 산출물만 보고도 어디에서 오류가 있는지를 바로 지적하셔서, 역시 내공만큼 피드백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3.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지식 이상 나아갈 수가 있다.


챗GPT를 포함한 AI tool들의 퀄리티는 지금까지 학습된 데이터량에 비례하는 만큼, 현재의 결과값은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데이터들의 평균적인 수준에 수렴할 확률이 클 것이다. 물론, 창의성이라는 것도 완전히 무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인풋의 결과로 발현되는 일이 많기에 AI가 창조적인 영역에서조차 인간을 능가한다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AI가 제시하는 창의적인 결과물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그럴싸한' 기계의 상상력일 뿐이다. 그것을 '결국은 존재하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비유를 한다면, AI는 창의적인 방법론들을 제시하면서 그렇게 하면 내년도 성장률을 5%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창의적인 방법론들이라는 것이 '실제로도 구현 가능함'을 입증하는 주체도, 아니면 그 방법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이론적인 가정과 다른 상황에도 불구하고) 더 신박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장률을 예상 가능했던 5%가 아닌 10%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기존의 트렌드나 예상을 깨는 결과들을 보여준 것이 인류 발전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뉴턴의 말처럼, 전문가야말로 기존의 누적된 지식들을 발판 삼아서 더욱 전문성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전문성은 더욱 소중해질지도 모르겠고, 아마 앞으로 경쟁력이 있으려면 더 많은 공부를 한 전문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전문성'이라는 것도, '공부'라는 개념도 우리가 예전에 알던 것과는 꽤나 다른 형태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마치 컴퓨터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 '앱 개발자'라는 직업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나, '미디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공부란 '책'으로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학습을 한다는 것', 그리고 '전문 지식이 있다는 것'은 계속, 아마도 더 중요할 것 같다.

거대 머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미드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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