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 봐도
최근 몇 년 사이 AI 발전 속도와 그 퀄리티는 상상 이상이라 AI가 대체하지 못할 영역은 없는 것만 같다. 이제는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만이 고유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찰들이 필요한 단계인 것 같다. 그 관점에서 ’AI가 결코 하지 못할 것‘에 대한 고민을 해보니, 모든 것은 불확실한 가운데 적어도 단 하나만은 확신할 수 있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만약 이 확신마저 추후 수정 되어야 하는 날이 언젠가 온다면, 나를 포함한 인류는 아마 여러모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공상영화에서처럼 어느 순간에는 AI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여,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AI가 마구 마음대로 하게 되면 그때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마도 그건 이미 인류의 미래를 암울하게 그린 디스토피아와 같은 세상이 아닐까? 모든 인간을 합친 것보다 더 똑똑한 AI에 인간이 지배받는 노예가 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사실 잘 따지고 보면, 우리는 벌써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어, 계획하지도 않았던 것들에 나도 모르게 현혹되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다.
#AI의 영역 vs 인간의 영역
근래까지만 해도 Who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What의 영역은 인간이, How의 영역은 AI가 가장 잘할 것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AI의 성능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기획'과 같은 고차원적인 일이야말로 AI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믿음은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기획'이야말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마케팅 컨퍼런스에서 AI의 최전선에서 연구하고 계시는 한 교수님께서 발표하신 논문 내용의 결론은, "AI의 여파로 조직에서는 가장 말단의 일 뿐 아니라, 가장 상단의 일이 AI로 대체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여러 산업에서 신입 사원을 뽑지 않는 것은 이미 기정 사실화 되었지만, 앞으로는 심지어 관리자급 자리도 급격하게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육하원칙에서 남은 When과 Where 관점은 누가 더 잘할까?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오래전 컴퓨터 시절부터 AI가 그 누구보다 잘하는 분야이다. 온갖 변수들을 감안하여 최적화 모델을 돌려보면 '언제, 어디서'하는 것이 제일 좋은 지는 아마 현존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 가장 스마트한 답을 내어 놓을 것이다. 평범한 하나의 두뇌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불완전한 시나리오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비범한 두뇌의 총집합체인 AI가 돌려본 시나리오의 결과값은 경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남은 Why는 누가 더 유리할까? AI의 영혼이자 뼈대와 같은 ‘로직’을 인간이 더 잘 세울 수 있을까? 아마도 Who, What, When, Where, How의 모든 요소들에 속속들이 Why들을 충분히 제시할 수도 있고, 그 전체를 종합하여 근원적인 Why 하나를 만들어 주는 것 역시 몇 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궁극의 시발점
'무엇'을 할 지조차 AI가 더 잘 제안해 주는 세상이라면, 인간은 정말 '무엇'을 해야 할까?
위에서 아까 언급했던 것이 '시키는 일'이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에 대한 오더를 내리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것의 시작점은 바로 '열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AI는 세상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 어떤 특정한 것을 열망하거나 원하는 '마음'만은 가지고 있지 않다. AI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를 결국 구해주는 것은 어린이들과 같은 순수하고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자들일 지도 모른다. 시니컬해지기 쉬운 세상에서도 여전히 더 나은 세상, 더 멋진 것들을 간절히 '원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뭐라도 원하는 것이 있어야 뭐라도 시킨다.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은 시킬 수조차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 것들을 꾹꾹 누르고, 본인이 진정으로 뭘 좋아하고 원하는지 생각할 틈도 없이 종이 위의 문제들을 푸는 데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지금의 교육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그렇다면,
그 '시키는 일'을 '잘'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개인적으로 AI를 데리고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Ask를 잘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에서 Ask는 1) "질문하다"라는 뜻도 있지만 2)"요청하다"라는 뜻도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활용하는 수준에서는 AI와의 커뮤니케이션 형식 자체가 어떤 마음속에 있는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질문'이거나, 어떤 하고자 하는 바를 잘 수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하는 '요청' 형식을 띠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질문이든 요청이든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잘 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드저니에서 이미지를 뽑을 때마다 내가 두루뭉술하게 프롬프트를 던지면 딱 이거다 싶은 이미지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충 말해도 착 알아듣고, 알아서 잘‘ 뽑아주기를 희망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반면 먼저 매우 구체적인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 조건들을 디테일하게 요구하면 할수록 관련성과 완성도가 높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가 있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내 머릿 속에서 끄집어내어 ‘최대한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AI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있다. 그런데 똑같이 무료 플랜을 이용하든, 같은 금액의 유로 플랜을 구독하든, 그 성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최고 성능의 AI를 쓰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선 그 무엇보다도 당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마음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가장 상세한 버전으로 언어화해 보자. 그것을 바탕으로 Ask 하는 당신의 능력, 딱 거기까지가 당신이 누릴 수 있는 AI의 성능의 최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