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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Nov 15. 2024

직업, 그리고 직장인 이후의 삶에 대한 고찰

우리는 언젠가는 은퇴한다.

요즈음 나의 근황은 좋게 말하면 FA (Free Agent), 즉 프리랜서 정도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공식적으로는 적이 없는 상태니 무(無)직인 상황이다. 사십 대에 이런 호사스러운 ‘시간 부자’ 생활을 하다니, 이 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정도로 소중할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최근 몇 년간은 눈 뜨자마자 미국과의 화상회의로 시작하여 하루에 많을 때에는 11개까지 미팅을 하고 밤에는 메일을 확인하고, 점심은 제 때 못 챙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생활을 했었기에 이런 극과 극의 체험이 생경하기도 하다. 그런 꽉 차다 못해 넘쳐서 하나씩 터져 나올법한 삶을 기본값으로 달려오던 기준에서는 지금 삶의 생산성이 너무 낮은 것은 아닌지, 잉여스럽기까지 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과연 그때라고 생산적이었던 것이 맞았는가?


1. 생산성이란 무엇인가


생산직이 아닌 이상 우리는 시간 인풋의 양에 비례해서 생산량의 아웃풋이 결정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여유 없이 꽉 차게 바쁘게 지내고 나면 왠지 생산적인 것 같고, 그렇지 않은 날은 왠지 비생산적인 것 같은 느낌을 쉽게 받는다. 과연 하루에도 열개씩 열리던 미팅들은 어떤 생산성을 가졌던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생산적이었어서 실제로 기업의 생산에 도움이 상당히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궁극의 결과가 정말 사회적으로 보았을 때에도 '긍정적인 생산성'일까? 예를 들어 더 많이 팔리게 하고, 더 많이 생산하게 한 결과 사람들은 불필요한 물건들을 계속 구매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환경을 파괴하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최종적인 결과 아닐까?


국내 대기업 두 곳, 그리고 최근까지 모두가 선망하던 글로벌 대기업에서 리더까지 해본 뒤 솔직히 나는 더 이상 열망하는 기업이 없어졌다. 더 이상 궁금할 것도 없고, 어딜 가도 이제는 다 비슷할 것 같아 큰 기대가 없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는 마지막으로 온 진심을 다해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내가 회원이기도 한) '그린피스'였는데, 막상 그곳에서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곳의 미션을 달성하기에는 풀뿌리 민심을 흔드는 마케팅력보다는 정부를 상대로 정책을 흔들어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역량과 관련 경험이 더 중요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마케팅을 백번 잘해 백만 명이 텀블러 한 번 더 쓰는 것보다, 환경 보전하는 방향의 정책을 하나 더 입안시켜 근원적인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큰 생산성인 것이다. 나의 그 '화려하다는 커리어'는 그 방면에서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2. 직업이란 무엇인가


다음의 거취를 정하지 않고 나와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은 프리랜서로서 스스로의 테스트였다. 언제 어디서든 마이크를 잡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발력에도 자신 있는 편인 나는, 강연자로서의 삶이 늘 궁금했지만 그간 회사 정책상 시도를 못했었다. 다행히 퇴사 후 좋은 기회로 한 달에 한 번씩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그새 강연자로서의 몸값도 상당히 뛰었으며 매번 다음의 기회들이 열렸는데, 수락만큼 거절하게 된 횟수도 많다. 여러 가지 정황상 내가 스스로 뿌듯할 정도의 가치를 공개하지 못할 자리나, 아직 나의 방향성을 결정하기도 전에 온라인에서 이러저러한 규정된 타이틀로 돌아다닐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정중히 고사를 하였다. 주 수입원인 직업으로서 이 길을 가려면 찬밥더운밥 가릴 것 없이 최대한 많은 케이스를 만드는 게 필요할 것 같고, 어떤 유관 주제로라도 강연을 해내라면 어떻게든 하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연이라는 장르는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고갈이 될 수밖에 없고, 같은 것을 어디선가 반복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자괴감이 들 것 같았다.


그동안 공식적인 직함이 없었다고 돈을 벌지 못한 것은 아니다. 아주 소소하게는 강연뿐 아니라 기고를 해서 일부의 금액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미국 주식과 환차익에서 몇 달 월급만큼 벌기는 했다. 내가 딱히 열심히 회전을 하거나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 그만큼이었으니, 결과적인 측면에서는 사실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높은 생산성이다. 그리고 만일 수입 그 자체로만 목적이라고 놓고 본다면, 투자의 ‘회전율’을 훨씬 더 높인다면 연봉만큼 못할 것도 뭐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직업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투자 수익이 혹시 연봉보다 더 많이 벌리더라도 나는 '일'이라는 것을 통해서 스스로 사회적인 가치를 찾으며 기여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3. 궁극의 일이란 무엇인가


아침마다 소리 지르고 재촉해서 잠도 안 깬 아이를 셔틀버스에 밀어 넣는 게 아니라, 아이가 실컷 자고 싶은 만큼 잔 뒤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고, 아침밥을 원하는 종목으로 매일 챙겨 먹이고, 여유롭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매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삶. 분명히 너무도 이상적이고 귀중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특히 네 살 아이에게는 그런 여유와 관심, 그리고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그래서 함께하는 그 순간순간 만큼은 온전히 즐기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메인으로 살기 위해서 여태껏 기를 쓰고 대학원을 두 개나 나오고, 그간 커리어에 목숨을 걸며 살아온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나의 그간 삶의 태도에 대한 기만이자, 사회적인 부채에 대한 무책임이라는 생각마저도 동시에 든다. 아이에게 주어진 이러한 시간도 그의 몫이지만, 그가 전업주부가 아닌 엄마 밑에서 크는 것도 그의 팔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아들도 역시 평생 열심히 어떤 형태로든 공부하고, 궁극적으로 전업주부가 되지는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아마도 나는 사회에서 나의 경험과 가치에 대한 적절한 쓰임이 있을 때까지는 취업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인 가치 뿐 아니라 온오프가 비교적 보장된 라이프, 이 시기의 아이와 가정을 지키는 삶의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에 사회와 타협을 해야 하는 때가 온다면 아마 ‘나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일은 제조업이 된다면, 최대한 환경을 덜 파괴하는 쪽이 될 것이다. 서비스업이 된다면, 나 혼자 앵무새처럼 떠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고객의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내고 눈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간에 분명히 '선한 목적'으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아주 작게라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고, 또 다른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도 있는 씨앗이 되도록 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형태로 가야 할지를 지금부터, 사실 예전부터도,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그 결론 없는 고민들이 요즘 머릿속에서 뭉게구름 뭉치처럼 떠다니기에 이렇게 한번 글로 풀어보았다.



이런 개인적인 일기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다가도, 결국 브런치든 블로그든 모두 결만 조금 다른 개인의 일기장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오늘 아침 링크드인에서 대 선배님의 비슷한 여정과 고민을 나누어 주신 것이 나에게도 고맙게 느껴진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일말의 참고가 되는 여정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거나 이렇게 나는 자발적인 듯 비자발적인 듯 인생의 Gap Months를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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