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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여행, 진짜 준비는 OOO에서 시작이다

여행 예약이 전부가 아니다

by 투명물고기

지난번 부모님과 황산 여행을 다녀오면서 보고 느낀 경험을 조금씩 공유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였던 "다 커서 부모님과 여행하면 좋은 점"( 단 링크)이라는 글은 외부에도 지속적으로 상당히 많이 노출되어 구독자가 몇 없는 상황에서도 조회수가 2만 5천 정도 되어 생각보다 사람들이 관심 많은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준비 편에 대해서 작성해 볼까 한다.




진짜 준비는 여행 아이템을 갖춰드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원래가 집안의 가장 큰 효녀이자 센스쟁이 여동생이 담당했던 것은, 여행을 가기 전부터 아빠 엄마와 여행의 설렘을 극대화하면서 알콩달콩하게 같이 준비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었다. 몇 주 전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아울렛 투어를 하면서 맛난 음식도 사드리고 콧바람을 같이 쐬면서 이것저것 입어봐라 써봐라 신어봐라 이쁘네 멋있네 추켜세워주며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딸 노릇을 톡톡히 했다. 엄마 아빠의 조화로운 세트 컬러감을 감안해서 아우터 하나씩, 모자 하나씩, 그리고 가벼운 배낭에 신발까지. 풀세트로 미리 다 하나씩 사드리고 엄마가 그 사이 마음이 바뀐 틈을 타서 교환까지 마무리할 정도의 넉넉한 일정의 쇼핑으로 준비를 제대로 했다. 우리 가족은 원체 어려서부터 비싼 소비에 익숙지 않아 아울렛 세일 더미에서 가성비 갑인 진귀템을 건져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꼭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야 의미 있는 선물이 아니다. 동생의 준비는 실제 여행하는 내내 매 순간 빛을 발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커플룩을 입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알록달록 커플룩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좀 티격태격하던 부모님이 더 알콩달콩한 느낌이었다. 단연코 여행 자체만큼 매우 중요한 준비였다!!


여행 준비의 기본은 철저함이 생명이다.

집에서 동생이 센스를 담당한다면, 나는 철저함을 담당하는 편이다. 동생이 3주 뒤에 다시 해외로 돌아가야 했기에 "그 사이 당장 떠날 수 있는" 지역의 여행지와 상품을 꼼꼼히 알아보고, 구성을 비교해보고 예약을 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일단 일본은 방사능 등의 우려로 제외했고, 동남아를 가기엔 최소한 5~6시간의 비행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공통적으로 판타지, 로맨스 영화보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훨씬 더 몰입해서 보는 우리 가족은 목적 없는 휴양보다 탐구와 경험을 좋아기에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중국의 자연경관이 좋다는 어느 한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중국임을 감안하여 언어와 치안의 문제로,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 형태의 여행이지만) 여행사 패키지를 선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 당장 급박히 떠날 수 있는 옵션은 이미 많지 않았다. 겨우 자리가 딱 남은 황산을 가기로 결정했었는데, 혹시 몰라 가족들의 여권 만료일을 챙겨보다 보니 아빠 여권 만료일이 2개월이 채 남지 않은 것이 아닌가! (더 이상 해외를 자주 나갈 일 없는 어른들과 떠나기 전에는 반드시 점검이 필요하다.) 게다가 중국은 입국 비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또 1주일은 잡아야 하는데 아예 여권부터 새로 발급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니! 심지어 아빠는 현재 서울에도 아닌 귀농한 지방에 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행사에서는 지금 당장 비자를 신청해야 하는 판에 여권도 없으면 안 된다고 나의 예약을 취소해버렸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포기만 않는다면 방법이 아예 없는 경우는 잘 없다. 일단 서울로 올라오셔서 지방보다는 빨리 나온다는 구청을 찾아 긴급으로 여권을 신청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중국 비자를 개별로 받는 방법이 없는지 백방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단체 비자를 태우지 않고 돈을 더 주고 개인 비자 트랙을 태우면 운 좋으면 3일 만에도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웃돈을 조금 더 주면 대사관까지 직접 가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있었다.(물론 운 나쁘면 더 걸리고 아예 출발하지 못하는 리스크도 있고, 귀찮기도 한 일이라 보통 여행사에서는 이 옵션을 잘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여행 준비의 마무리는 넉넉함에 있었다.


늘 아끼고 검소한 우리 집안의 분위기와 달리,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통 크게 기분을 낼 줄 아는 남편은 같이 가지 못하는 대신 위안화로 직접 여행 용돈을 부모님께 드렸는데, 자그마치 한국돈 60만 원 치였다. 중국의 물가가 올랐다지만 황산은 비교적 시골이고, 모든 식사와 경비가 포함된 4일 패키지의 특성상 현지 돈을 그렇게 쓸 데가 어디 있냐며 나와 부모님은 펄쩍 뛰었다. 그래도 늘 넉넉하게 대비해야 한다며 기어코 쥐어드렸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덕에 우리는 더 잔잔한 추억을 원 없이 많이 만들고 왔고, 결국 그 위안화 한 푼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왔다...(역시 돈은 없어서 못쓰는 것이지 있으면 쓰는 것은 너무 쉽다.) 현지의 잔잔한 군것질부터, 붓, 다기 등을 흥정하고 쇼핑하며 소소한 재미와 추억을 만끽했고, 반 정도 남은 현지화 덕에 마지막에 상당히 급이 괜찮은 보이차를 공수해 콜레스테롤과 고지혈증이 있는 남편이 쏠쏠히 마시게 되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중국산에 대한 불신이 워낙 많아서 살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도자기도 붓도, 차도 모두 오리지널은 중국이다. 현지에서는 역시 현지의 것을 먹어보고 흥정해보고 사보는 것이 그 지역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었 남편의 배려덕에 원없이 하고 왔다.



내가 철저히 준비해 간답시고 온갖 아답터, 지사제, 해열제, 얼굴 팩 등등을 다 준비해 갔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더 필수템이 있었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 어른들은 외국 나가면 가장 그리운 것이 식후 봉지 믹스커피였다! 우리 부모님은 현지식도 너무 잘 드시고, 굳이 김치나 고추장을 찾지도 않아 다행이었는데, 그래도 봉지 커피만은 간절하신 모양이었다. 패키지에 같이 간 사람들 중 계속 여행을 다니시던 부부가 있었는데 그들은 봉지커피를 잔뜩 싸와 다들 부러워하기도 했고, 한 입씩 얻어마시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언젠가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면 꼭 챙겨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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