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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Oct 09. 2019

후배가 이뻐 보일 때

우리는 언젠가 모두 선배가 된다

'90년생이 온다'는 책의 유행을 비롯해서 사회에서는 기존 세대의 입장에서 쉽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요즘 세대' 아이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어떻게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트렌드 같다. 기성세대가 전적으로 이렇게 그들을 이해하려고 들이는 노력만큼 그들도 과연 기성세대의 룰을 이해하고 따라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을까? 어차피 그들도 금방 기성세대가 될 텐데.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어른으로서 좋은 태도이지만, 비판의식 없이  경향이 마치 정답인 양 무조건 우리가 이해하고 맞춰야 한다는 듯한 시각은 경계를 해야 할 것이다.(신기하다, 왜 이런 시각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을까? 꼰대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서?) 신세대의 다수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아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일 그 요즘 세대라면, 대부분의 그들과 조금만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도 장담컨대 당신은 조직에서 엄청나게 이쁨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포인트와 에피소드 몇 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김에 후배로서의 나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1. 싹싹하면 일단 그냥 이쁘다.


이 회사의 분위기가 원래 기본적으로 그런 것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은 정말 인사를 안 한다. 같은 팀에서 나와 업무로 전혀 엮이지 않는 관계지만 요즘 좀 힘든 것 같아 어제도 별도로 점심을 사주고 들어주고 같이 웃고 떠들고 했어도, 오늘 다시 마주치면 인사를 안 한다. 최대치는 그냥 정면으로 맞닥뜨렸을 때 피할 수 없으니 꾸벅 목례 정도랄까? 선배와 밥을 먹게 되면 얻어먹는 것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관계의 선배라면 마주쳤을 때 먼저 인사 정도는 해 주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리고 사회생활 관계는 기본적으로 Give & Take인데, 딱히 크게 얻을 것도 없고 더욱이 당장 업무로 엮이는 일도 없는 사람이 단지 선배랍시고 밥을 사준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조금만 싹싹하게 굴어도 아마 앞으로도 베풀고 이끌어줄 것이 얼마든지 많은 귀인이 될 터인데. (너나 나나 어차피 똑같은 인간인데 굳이 누가 누구에게 인사를 왜 하냐는 생각이라면, 밥을 먹게 되어도 선배든 후배든 당연히 밥은 더치 하고 일나 프로세스도 누가 누구에게 알려줄 필요 없이 각자 알아서 다 해결는 사상이 기본이 되어야 일관적이고 공평하지 않을까?)


워낙 그렇지 않음에 이제는 무덤덤해져 갈 때 즈음 나를 감동시킨 신입사원이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우리 팀과도 거리가 멀었고, 공식적으로 인사를 돈 적도 없어서 100명도 넘는 이 층의 사람들 중 하나에 불과한 내가 누군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원들은 그가 누군지 모를 리가 없다. 특히나 눈에 띄는 정도의 스펙을 가진 자라면 약간은 도끼눈을 뜨고 얼마나 잘났나 보자는 은근한 시기의 눈빛도 받을 수밖에 없그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그 어떤 이번, 기존 신입 사원을 통틀어 가장 겸손하고 씩씩하게 먼저 인사를 했었다. 한 번은 우리가 문서 파쇄기 앞에서 만나게 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먼저 크게 인사를 한 뒤 "선배님 제가 이거 하면서 같이 처리해 드릴까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정도의 싹싹한 후배의 느낌은 년도 더 된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날 안 그래도 나는 일분일초가 바빠서 동동거리는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고, 하루 종일 훈훈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그를 계속 기억해 두었다가 한참 지난 시점에라도 업무상 알게 모르게 특히 신경 써서 도와주려 했다. 그리고 그냥 이뻐서 딱히 별 다른 핑계 없이 밥도 사주었는데, 다른 대부분의 후배들이 당연한 듯이 얻어먹고 마는 것과 달리 그는 매우 고마워하며 커피를 샀다. 나 역시 꼬꼬마 시절부터 선배가 밥을 사면 바로 후식이나, 당장 기회가 여의치 않으면 다음에 꼭 내가 다시 일정을 잡아서 대접하던 사람으로이런 후배를 보면 너무 반갑고 다음에 또 별 이유 없이 밥을 사주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2. 열심히 배우 후배, 하나라도 가르쳐주고 싶다.


직장 생활별로 행복하지 않거나, 회사 생활은 자기 계발과 전혀 별개의 문제로 밥벌이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사내에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나 대기업에 입사해서 어차피 이 회사에서 주어진 것만 잘하면 앞으로 밥벌이에 걱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업무시간 내내 고갈된 에너지를 다른 시간에는 깡그리 잊고 기분 전환하는 데에만 몰두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외부 강연이나 스터디 모임 등 찾아다녀보면 희한하게 주요 기업 재직자들은 가뭄에 콩 나듯 별로 만나지 못했다. 특히나 대기업에서는 거대한 시스템의 일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주 세분화된 부분적인 일만 담당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특히 내가 속한 마케팅/기획 업은 정말 시시각각 변화하는 트렌드의 속도를 그 거대한 조직 안에서만 혀서는 결코 충분히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추가적인 인풋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점점 기대치가 올라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요즘 핫한 무언가를 내어 놓기엔 점점 역량 부족의 상태가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언젠가 직의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다른 업무를 해보고 싶게 되어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기 때문에 몇 년이고 계속 그 업무만 하면서 한 조직의 고인물로 스스로 정체되는 것의 악순환을 많이 본다.

 

나는 회사가 매우 마뜩지 않아하는 유료의 컨퍼런스도 찾아내어 인사팀과 싸워가면서 필요한 기회들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개인적인 인맥을 동원해서 초대로만 이뤄지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업무가 끝난 저녁 혹은 주말에 비를 들여서라도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 끊임없이 인풋 거리를 만들어 내는 편이다. 특히 회사의 지원을 받아서 다녀오는 경우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를 하는 편인데, 이 조직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딱히 고마워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신기하게도 정말 많지 않아 보였다. 따라서 나도 특별히 요청하지 않은 공유는 점점 하지 않게 되는 와중에, 한 번은 요청을 받아 공식적인 공유의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끝나고 한 명이 눈을  반짝이면서 굳이 다가와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고, 너무 유용하게 설명을 잘해 주어 고마웠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 만난 그녀를 기억했다가 다른 유사한 자리가 있을 때에는 미리 일정을 알려주기도 하고, 훗날 업무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때에 도움과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길을 조금 먼저 오게 된 선배로서경험담을 공유하며 격려를 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매번 그런 한마디 한마디를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것이 느껴져서 참으로 이쁘고, 내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이 가치 있게 느껴졌다. 이번에도 나의 프레젠테이션 자리에 사정상 못 오게 되었다며 너무 아쉬워하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서, 아무에게도 공유하지 않았던 공들여 만든 자료를 먼저 선뜻 공유했더니 어찌나 고마워하던지.. 진심은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분명히 느껴진다. 하나라도 배우려고 눈을 초롱초롱 거리는 후배에게는 정말 아낌없이 다 알려주고 싶다.


3. 더 이상 주고받을 게 없는 선후배도 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Work와 Life를 분리하는 것이 때론 중요하긴 하지만, Work 역시 Life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회사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그 에서 역시 같이 키워가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결국 사람들 간에 함께 하는 것이 회사 일이라는 것이고,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친해져서 Work를 떠났을 때에도 Life 속에 묻어 함께 갈 수 있을 사람들도 건지게 된다면 그 얼마나 쏠쏠 것인가.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운 좋게 좋은 (내게 맞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특히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소득 수준이나 학업 등의 백그라운드에서 유사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어릴 때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며 별 사고 치지 않고, 무탈하게 사회의 성실한 모범생으로 살아갈 비슷한 부류가 많았다.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많지만 개인적인 관계로 더욱 견고하게 바뀌는 데에는 사실 제약이 꽤 있다. 일단은 같은 성별이어야 오해를 살 일도, 어떠한 향후의 여지도 없고, 나이 대도 얼추 비슷해야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지가 더 용이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나와 매우 비슷해 보이는 성향의 타 조직 여자 상무님과 개인적으로 친해진 일이 있었는데, 그분은 잘 나가실 때는 거침없으시다가 사내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조금씩 개인적인 교류를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대리-상무 정도의 갭 차이가 아니라 대리-팀장 레벨 정도의 격차이기만 했어도 본인의 입지와 나의 개인적인 관계를 그렇게까지 연관 지을 필요는 없지 않았나 싶다.


내가 현재 긴밀한 우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나이 차가 많은 사람은 아마도 나의 첫 부사수인 J일 것이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이미 20대 후반에 입사한 나와 달리 그녀는 가장 빨리 졸업하고 갓 입사한, 나보다 7살 어린 파릇파릇한 신입 사원이었다. 이미 그녀가 회사를 떠난지도 벌써 7년, 나는 그 사이에 한국을 떠나기도 했었고, 다시 돌아와 다른 회사에 잘 다니고 있기도 하다. 그 정에서 중간에 나이 들어 미유학을 간다며 인사를 하는 내게 그녀가 준 카드 속 선물은 자그마치 캐시 100불 이어서 나를 빵 터지게 한 적도 있었고, (돌아보면 이미 유학 경험이 있던 그녀의 가장 현실적인 선물이었다), 이후 돌아와서도 어느 겨울인가에는 내 생일 선물이라고 태어나서 본인이 뜬 세 번째 목도리라며 내밀어 나를 감동시킨 적도 있다. (평소에는 새벽에 일어나 복싱이나 하는 스타일이기에 이런 여성스러운 새로운 취미의 반전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착한 후배를 만나게 된 것은 내가 참 운이 좋았던 것이 맞고, 그런 후배를 만나는 법에 대해서는 나도 뭐라고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도 나도 인간을 대하는 스타일이 비슷한 면이 있다는 데에서 오래 유지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틈틈이 후배가 업무로 힘들어할 때면 냉정한 바깥세상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면서 위로를 하거나, 그녀의 이직의 타이밍마다 좋은 자리가 있어 보이면 공유를 하기도 했고, 개인적인 삶/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면 오지랖 넓은 친언니 같은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회사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시작했다면 아마도 이런 얘기까지 하는 관계는 어려울 것이다. '회사 사람' 혹은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적은 사람' 등의 껍질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월과 함께 우정적인 관계를 건져갈 일도 더 많아질 것이다.




누군가는 물을 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 자신은 선배 입장이 아니라 후배로서 저렇게 싹싹하고, 초롱초롱하고, 살가운 후배였었냐고? 가장 객관적인 답변은 나의 선배들에게 물어봐야 하겠지만, 돌이켜보 나는 눈에 띄게 싹싹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뭐 하나라도 받게 되면 당연하게 생각한 적 없이 항상 고마웠고, 늘 갚으려 했다.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초롱초롱한 편이긴 했지만, 딱히 선배가 아니어도 배울 곳은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한, 살갑지는 않았지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늘 진실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려고는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나 같은 후배와 위에 언급했던 이쁜 후배들을 동시에 맞이 했다면 당연히 저 후배들이 훨씬 예뻤을 것 같다. 리고 지금 나를 후배로 바라보는 수많은 선배들도 역시 더 싹싹하고, 더 초롱초롱하고, 더 인간적인 후배들에 비해 내가 많이 모자라 보이겠지. 조직 생활이 그저 롭고 피하고만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조직생활을 하면서 사회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매일 배우고 있다. 우리들은 모두 언젠가는 누군가의 후배였고,  누군가의 선배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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