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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라이브 김사수 Sep 13. 2021

경찰 10년 차, 연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의심하는 직업, 내 인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등바등 대한민국 맞벌이 부부의 현실이 그렇듯 우리 부부도 6살 딸아이를 조력자 없이 키워내고 있었다. 아내는 출산휴가와 더불어 육아휴직 1년 후 회사로 돌아가야 했고 아이는 15개월부터 자연스레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부모가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어린이집에 맡길 수 없어 나는 교대근무부서인 지역경찰(지구대, 파출소) 근무를 선택해야 했다. 근무가 아닌 시간에는 최대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일찍 데려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아이가 성장할수록 술에 취해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들,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경찰의 훈계를 비웃음으로 화답하는 학생들을 마주해야 하는 최일선 현장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경찰청 같은 최상위 기관에서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 거기에는 그래도 경찰의 인재들이 근무하는 곳인데,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내가 처한 근무환경을 바꿔보고 싶었다.



"페이퍼 다 됐으면 가져와봐."

 

 '이것만 끝내고 가자'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가며 일하고 있던 나를, 계장님이 호출하셨다. 계장님의 모니터에는 현안을 다룬 여러 개의 파일이 열려있었고 쉴 새 없이 수신되는 메신저 쪽지들이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전달해드린 보고서에 계장님의 시선이 옮겨 간 순간, 키보드 소리 너머로 들리는 한숨소리와 쫓기듯 한 말투로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 다른 동료들의 모습으로 내 눈은 옮겨갔다. 우리 모두는 책상 밑 A4용지 박스에서 넘쳐 흐르고 있는 죽은 보고서들을 치울 여유조차 없이 일하고 있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곳은 경찰청이었다. 현장에서 민원인, 주취자도 능숙하게 대하는 직원, 경찰을 위협하는 피의자에게도 물러섬 없이 달려드는 직원, 시간이 지나자 더욱 많은 일을 맡게 되면서 경찰청에서도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직원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경찰청은 전국 경찰의 컨트롤타워 역할인만큼 업무량도 승진을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부서마다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매일 아침, 정부 주재로 열리는 회의 준비를 위해 7시까지 출근하고, 다음날 회의 자료를 위해 밤 9시, 10시까지, 그것도 모자라 동료들과 격주로 돌아가며 주말에도 어김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내 아이의 성장을 놓치다

 바쁜 일상으로 자연스레 심신이 지치고, 실시간으로 울려대는 단체 카톡방의 현황을 체크하다 보면 가끔 주어지는 가족과 나들이를 가더라도 아이의 작은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일쑤였다. 다른 동료들도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 건물 옥상이나 1층 담벼락 주변을 걸어 다녀보면 젊은 나이에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털과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굵어버린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교대근무를 할 때는 야간 근무를 하게 되더라도 휴무일에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됐지만, 경찰청에서는 제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다 보니 저녁을 먹고 비상계단에서 아내와 영상통화로 그움을 달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 속에 비추는 아내의 얼굴 뒤로 딸아이가 뭔가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고 아내에게 아이가 뭘 들고 다니는 건지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잠옷 들고 다니는 거야, 아빠 냄새 맡는다고.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아이가 잠들면 밤늦게 집에 오다 보니 늘 잠자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아빠가 그립다며 내 잠옷을 들고 냄새를 맡는 아이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바쁜 아빠의 빈자리는 꽤 컸다. 아내는 경찰청으로 간 나를 내조하기 위해 기꺼이 휴가를 시간 단위로 쪼개 사용하며 아침에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을 도맡아 했다. 가끔 회사일로 퇴근이 늦어질 때나 어린이집 관계자가 코로나19 확진 가능성이 있다는 공지가 뜰 때마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 남짓 거리에 떨어져 살고 계신 장모님도 출동해야 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차장 밖에는 불을 환하게 밝힌 경찰청의 수많은 사무실 전경이 펼쳐졌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고생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줄도 빽도 없던 내가 경찰청을 통해 '승진과 인맥을 얻는다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가족의 힘든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다.

 그러다, 지난 식사자리에서 계장님이 하시던 말씀이 다시 한번 뇌리를 스쳤다. 계장님은 엘리트 출신으로 본청에서 근무한 지도 꽤 오래됐다. 나름의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곧 총경에 승진할 연차다 보니 주요 정책을 불도저같이 추진해 윗사람들에게도 늘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신도시에서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최근 집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다라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또 한 번은, 경무관 승진자가 발표된 날이었다. 내가 모시던 과장님께서도 승진대상자로 확정되어 축하인사를 드릴 겸 보고서를 들고 과장님 집무실에 찾아갔다. 노크와 함께 들어간 과장님께서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승진 후 받게 될 경찰 연봉표를 보고 계셨다. 계장님과 과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일을 아무리 잘해도, 계급이 아무리 높아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정적인 직업이 곧, 경제적 안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1만 시간의 법칙. 경찰 10년 차, 나는 이 분야에 전문가가 되었을까? '돈을 보지 말고,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면 돈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였지만, 과연 경찰이란 분야에도 그 이론이 적용되는 걸까? 10년이 짧다면, 20년, 30년 이상을 경찰로 재직하고 퇴직한 선배님들은 퇴직 이후 경찰의 전문성을 살려 여유로운 퇴직생활을 이어가고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선배님들이 많지 않다는 걸 안 순간, 나의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도 절대 지금보다 나아질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가족과 함께 하며 많은 생각을 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가족과의 힘든 시간을 외면한 채 한 조직에서 계급과 인맥만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월급이 안 나오는 직장도 아니고, 안정적인 공무원인데 그냥저냥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과 나의 행복을 위해 공무원 월급과 연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얼마나 부족한지 계산하고 목표를 세워보기로 했다. 목표 달성에 필요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들을 차근차근 실행해 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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