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보스가 산문집을 냈다
“선아, 너한테 이 책 있니? 읽고 싶어서.”
엄마의 카톡. 단문과 함께 도착한 사진에는 8줄 남짓 짧은 책 소개가 담겨있었다. 조간신문 한 귀퉁이에서 찍은 게 분명한 신간 소개였다.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전 직장 보스가 출간한 산문집이다. 대한상의 회장에서 물러나며, 경영인으로서의 한 장을 정리하는 책을 쓰셨나 보다 생각했다. 평소처럼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해 부산에 보냈다.
며칠 후, 다시 카톡이 왔다.
“선아, 네가 두산에 근무한 시기에 박 회장과 메일인가 안부 묻는 정도라고 한 것 같아서, 이 내용이 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보내본다.”
책 두어 페이지를 찍은 사진이 함께 왔다. 작은 화면으로 확대해 훑어보았다. 평소 격의 없이 온라인 소통을 하던 평사원이 어느 날 퇴사 메일을 보내왔고, 딱한 사연이 있을 텐데 더 살피지 못하고 내보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는 사연이었다.
다음날 서점에 가 책을 샀다.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재벌 회장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그저 화려한 삶을 상상할 테지만, 어디 인생이 맑은 날과 탄탄대로만 있던가. 한 인간이자 기업가로서 겪은 환희와 고뇌의 순간, 빛과 그림자를 따뜻하고 담담한 필체로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재직 시절 겪어보았고 엿보았기에 낯익은 이야기도 있지만, 말단 사원이라 당시에는 세세히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하는 놀라움도 있었다. 무수한 M&A를 성사시킨 기업가의 살떨리는 협상 뒷이야기는 무협 활극보다 흥미진진했다. 책에 담은 내용은 그 인생의 한 단락일 뿐, 여전히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사연들 또한 남아 있으리라.
스물아홉 살, 나는 세 번째 이직을 했다. 대우그룹 해체 후 법인 분할되어 2년간의 워크아웃을 마치고 막 두산에 매각이 결정된 회사였다. 입사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명이 대우종합기계에서 두산인프라코어로 바뀌었다. 몇 주 후에는 여의도 사옥(현 해운회관)에서 동대문 그룹 본사(두산타워, 두타 빌딩)로 사무실도 이사하게 되었다.
변화의 시기라 홍보팀에도 일거리가 많았다. 회사명이 바뀌니 CI도 교체되었다. 홍보영상과 홍보물도 새로 만들었다. 전국 곳곳, 심지어 시골 대리점 간판 교체까지 잘 마무리되는지 감독했다. 브랜드명이 바뀌었으니 적극적 마케팅을 위해 대형 전시회에도 많이 참여했는데, 마케팅팀을 지원하고 소식을 홍보하는 일도 우리 팀 몫이었다.
내가 했던 일 중 상당 부분은 기업 문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전환기에 새로운 경영 방침을 전파하고 우리의 저력을 재발굴해 자긍심을 높이면서, 직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혁신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일이다. 특히 중공업과 소비재라는 전혀 다른 전통을 가진 모기업의 이질적 기업 문화, 그 간극을 매우고 연착륙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매달 사보 취재를 위해 인천, 창원 공장은 물론 전국 각지의 딜러를 만나러 출장을 다녔다. 중국 인프라 투자가 활황이던 시절, 확장 중인 중국법인에도 출장을 다니며 중국 견문도 넓힐 수 있었다. 생산혁신을 추진 중이던 회사는 생산직을 대상으로 당시 주목받던 일본 도요타 생산방식(TPS) 현장 견학을 진행했는데, 현지 르포를 위해 사무직으로서는 유일하게 동행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밥캣 인수 후 PMI(post-merger integration: 인수합병 후 통합)를 위해 전 세계에서 수 천 명의 법인 임원들을 초대했던 일이다. 업계에서는 ‘동양의 어느 회사가 인수했다’고 얘기될 만큼 존재감이 없었으니, 피인수 회사 경영진과 직원들의 사기 저하와 불안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들을 안심시키고 격려하며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 몇 차례에 걸쳐 한국 초청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메인 행사가 시작될 무렵 대형 컨벤션홀 안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당시 부회장은 기가 막힌 비전 스피치로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외국인 수백 명을 단번에 사로잡아버렸다.
당시 이 모든 일을 진두지휘했던 부회장이 바로 박용만 회장이다. 우리는 그를 YM이라 불렀다. YM은 에너지 넘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특히 소탈하고 유머러스한 인간적 매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젊은 직원들이 많았다. 직접 함께 일하는 전략기획본부 직원이 아니더라도, 계열사 직원 누구와도 열린 소통을 하려는 리더였다. 나 역시 MSN 메신저 친구를 맺고 메일로도 종종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평사원이 부회장에게 무슨 중요한 업무 보고를 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저 시답잖은 잡담들이었을 텐데, 그런 걸 받아주는 보스가 있다니. 신이 나서 회사 생활도 즐거웠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5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후, 사표를 내며 아쉬웠던 것은 두둑한 월급이 아니라 좋은 상사였다. 한 달여간의 업무 인수인계와 정리를 마칠 무렵, 이제 최종 보스에게 퇴사 소식을 전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
“부회장님~”
MSN 메신저로 말을 걸었는데 답이 없다. ‘바쁘시구나...’. 인사 메일을 보내기로 했다. 지금은 메일 계정이 없어져 정확한 내용을 확인할 길이 없지만, 퇴사한다, 근무하는 동안 보람 있고 즐거웠다, 보스로 모시며 많이 배웠다 감사하다, 나가서도 응원하겠다, 정도의 내용이지 않았을까 싶다. 회신을 바라고 보낸 메일은 아니었다. 그저 작별 인사 정도는 해야겠단 마음이었달까.
일주일쯤 됐을까? 주말 아침 일찍 문자(어떻게 폰 번호까지 검색해 문자를 보내셨을까 생각했던 걸로 봐서 핸드폰 문자였던 것 같은데 이마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가 왔다. 말을 시켰던데 무슨 일이냐는 요지였던 듯하다. 깜짝 놀라서 답을 했다. 퇴사하게 되어 인사드리려고 했다, 답이 없으셔서 메일을 드렸다고 답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 메일로 답장이 왔다. 결심을 했다니 나가서도 잘 되길 바란다, 근무하는 동안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을 텐데, 나쁜 일은 잊고 건강히 잘 지내라, 그런 요지였던 것 같다.
회사 메일 계정은 퇴사와 함께 사라졌고 이젠 MSN 메신저도 없으니 그렇게 YM과의 온라인 소통은 끊어졌다. 청와대 근무 시절 ‘기업인 초청 호프 미팅’에 온 YM을 보았지만, 소심해서 일부러 다가가 인사를 하진 않았다. 지난해 국회 본청 카페 로비에서도 닮은 사람을 보았는데, ‘대한상의 회장이 설마 이 시간에 여기 있겠어?’ 싶어 지나쳤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 의장 예방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퇴사 시기도 대화 내용도 다른 걸로 보아, 책 속의 ‘선아’라는 직원은 내가 아닌 게 확실했다. 그런데 나조차도 내 얘긴가 싶을 만큼 비슷한 걸로 봐서는, 박용만 회장과 격의 없이 소통하던 직원은 한 둘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래, 그는 그런 보스였지'. 오랜만에 옛 추억이 떠올라 빙그레 웃었다.
책을 덮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사연 속 그 친구는 책을 읽고 박 회장의 진심을 알게 되었을까? 박용만 회장님, 사연 속 그 친구와는 연락이 닿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