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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Aug 11. 2022

코로나19를 마주한 아프리카의 진짜 얼굴

  아프리카는 보건의료 인프라가 취약하다. 의료시설과 장비가 낙후되어 있다 보니,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국립병원은 항상 아픈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상대적으로 병원비가 비싼 민간병원을 이용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국립병원은 의사 수가 부족해서 일반인이 의사를 만나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의사를 만나도 제대로 된 진찰을 받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다. 짧은 시간이라도 의사를 만나 처방을 받고 약을 타는 날은 운이 좋은 경우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프리카에서는 사망으로 이어지는 이유이다. 그런 연유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아예 해외로 나가 치료를 받고 온다.


  이런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감염병인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말라리아나 뎅기열 같은 풍토병만 각별히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코로나가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현지 미디어도 매일 코로나 소식을 중요한 뉴스 꼭지로 보도했다. 지역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확인되었다고 보도하며 코로나 사태의 발원지로 중국을 직접적으로 거명했다. 지역 방송을 보고 나서 조만간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도가 나간 후에 동양인인 나를 대하는 현지 사람들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관광산업은 중요한 재정 수입원이다. 외국인들이 아프리카에 관광을 와서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돈을 소비하면 지역경제에 활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다니는 관광지에서 일하는 아프리카인들은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편이다.


  전통시장에 가면 전통 향신료나 과일을 사려고 현지 상인들과 흥정하는 외국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지인들을 자극하는 무례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을 구경하고 재밌게 대화도 나누면서 현지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인종 문제를 떠나, 나 또한 아프리카에서 일상생활을 보내며 이방인으로서 환대를 누리는 부분이 더 많았다.

코로나 사태라는 위기 속에서도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적개심으로 변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죽음의 고비까지 넘겨본 나였지만, 코로나 사태가 촉발한 현지인들의 적대감과 살기가 묻어 있는 모습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동양인에 대한 혐오 행위에 겁먹은 것이었다.


  우리가 케냐인, 탄자니아인, 우간다인을 구별할 수 없듯이 아프리카 사람들 또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을 구별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동양인을 중국인으로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나는 그들에게 ‘한국인’ 친구였다. 어느 날부터 내가 한순간에 코로나바이러스를 몰고 온 중국인이 되어 있었다.


  평상시처럼 반찬거리와 과일을 사러 시장에 갔다. 입구에서부터 현지 상인들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짜고짜 욕하는 상인부터 물건을 팔지 않겠다는 상인까지 처음 겪는 인종 차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케냐의 오지마을에서 투명 인간 취급받던 때와는 전혀 상반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대낮에 홀로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뒤에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차이나! 차이나! 코로나 전파하러 탄자니아에 왔냐?“

  ”빨리 차이나로 돌아가라.“

  사과는커녕 적반하장 격으로 반응을 보이며 나를 향해 계속 소리쳤다.


  어제까지 친했던 현지 상인들조차 내가 옆에 다가오는 것을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군중 심리에 휩쓸려 과격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나를 향해 던진 돌을 주워다가 그들을 향해 더 세게 내던져야 했다. ‘차이나’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소말리아’라는 말로 되받으며 티격태격 한바탕 싸움을 벌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행동으로 현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 서양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결국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웬만하면 현지 직원들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쓰고 용무를 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면 현지인들은 나를 더욱 기피하고 불편해했다. 실내에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면 평상시 거리를 걷거나 실외에서 일을 처리할 때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나만의 생존 전략을 터득해갔다.

생존과 공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갔다.

  사실 탄자니아 정부도 코로나 사태 초기에는 확진자 수를 발표하면서 국제사회의 방역 조치에 발맞추고자 노력했다. 보건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상황에서 코로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정반대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열심히 기도하고 아프리카 전통 약초를 먹으면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웃 나라인 케냐와 우간다처럼 국가를 전면적으로 봉쇄하지도 않았다.


  ‘주체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통령조차 코로나 백신은 ‘서구의 음모’라며 접종을 거부했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유일한 해법으로 전통 약초 치료법을 적극적으로 권장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현지인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상식을 갖춘 현지인들은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구매해서 쓰고 다녔다. 직원들에게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몇몇 직원들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을 즉각적으로 보였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코로나가 심각한 질병이 아니라는데 왜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죠?“

  하산이 내게 따져 물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어. 코로나는 전파력이 강해서 가족들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 소중한 가족들을 지켜야 하지 않겠니?“

   코로나바이러스를 미신이라고 믿고 있는 하산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 각료, 지역 유지들이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하나둘씩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직원들도 장례식에 참석하는 횟수가 빈번해졌다.


  ”친척분이 무슨 증상으로 사망하신거니?“

  나는 그럴 때마다 항상 돌아가신 분의 증상을 물었다.


  ”급성 호흡곤란으로 돌아가셨어요.“라고 대답하면 코로나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신했다. 현지 사람들도 대놓고 말은 안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지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마스크 쓴 나를 가리켜 항상 핀잔을 주던 구멍가게 아저씨가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현지 사람들도 코로나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에게 한국산 마스크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가 환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다정하게 웃었다. 그동안 나한테 보여준 행동이 미안해서인지 차마 직접적으로 고맙다는 말은 안 했다. 


  ”어르신! 아프리카에는 코로나가 없다면서요?“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아니...그냥 주니까 받은 거지....내가 사용할 건 아니고...우리 손자 주려고 하는 거야...“

  아저씨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천진난만한 어르신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행동에는 악의가 없었다는 것을. 코로나 사태라는 미증유의 상황은 우리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정확한 정보의 부재 속에 무지와 혐오가 맞물려 코로사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었다. 위기 앞에 이성을 잃고 쉽게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탓해야지 누굴 탓해 무엇하랴.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한 국가의 지도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현명한 지도자는 특히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우왕좌왕하는 국민들이 지도자를 믿고 따를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 시민사회와 같은 민간부문의 역할이 미약한 아프리카에서는 지도자의 역할과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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