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청소년 여행학교 둘째날(2016년 9월 5일)

by 김인철

아침 6시에 일어났다. 한국시간으로는 7시다. 시차는 1시간밖에 나지 않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아침식사는 호텔식이다. 룸메이트 D는 어색한 듯 말수가 적다. 간간히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해외여행은 교사인 나보다 경험이 많다. 식당은 호텔 2층이었고 뷔페식이다. 메뉴는 한식이지만 창세기에 나올 것 같은 맛이다. 이번에도 밥과 양파볶음으로 허기만 면했다. 흰꽃 빵은 먹을만했다. 식당을 나오면서 두 개를 챙겼다.

백두산_천지.gif 백두산 천지


오늘 주요 일정은 우리 민족의 시원인 백두산[장백산]과 천지를 탐방할 예정이다. 숙소에서 백두산까지는 버스로 약 삼십 분 거리다. 백두산은 세 경로로 올라갈 수 있다. 북파, 서파, 남파는 운영하지 않는다. 백두산을 언덕이라는 의미의 '파'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 우리가 오를 곳은 장백폭포가 있고 송화강의 발원지인 북파다.


가이드는 중국 쪽의 백두산보다는 북한 쪽의 백두산이 훨씬 높고 풍광이 아름답다고 한다. 다른 산처럼 백두산은 걸어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정상 근처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백두산 입구에 도착하니 삼각형으로 된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가이드에게 티켓을 받고 백두산 중간까지 가는 버스에 탑승했다.

백두산 입구.jpg <백두산 입구>


학생들은 차례대로 9인승 미니버스에 나누어 탔다. 인솔교사들은 학생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바짝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전화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길을 잃으면 국제 미아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나와 미니버스를 함께 탄 학생들은 올라가는 동안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IMG_20160905_094350.jpg <9인승 미니버스 : 백두산 정상까지 태워다 준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귀가 먹먹했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경이로웠다. 차창밖으로 안개가 보인다. 안개인가 싶던 흰 연기가 알고 보니 구름이다. 내 발아래로 구름들이 낮게 깔린다. 어제 이도백하로 오던 중 버스에서 올려다본 구름이 유독 낮다 싶었는데 착각이 아니었다. 오늘은 바로 그 흰구름 속에 있었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은 장관이다. 눈부시게 파란 하늘, 흰구름, 그리고 갈색의 지상이 맞닿은 세상에 내가 있다. 바람은 세지 않았고 날씨도 쾌청했다.


IMG_20160905_101804.jpg <미니버스 차창 밖에서 바라본 풍경>


관광객은 대부분 중국인이지만 한국말도 종종 들린다. 배가 고프다. 휴게소에서 옥수수와 소시지를 판다. 한국 관객들이 많이 와서 그런지 한화도 받는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손가락으로 가격을 주고받았다. 붉은 소시지는 향신료가 풍겼지만 맛있었고 옥수수는 맛이 밋밋했다. 가이드는 백두산 관람비가 6만 원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비쌌다. 전에는 백두산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릴 때 일부 한국인들의 과도한 애국심(?) 사건 이후로 당국의 통제가 심해졌다. 지금은 백두산은 물론 한국과 관련된 어느 유적지에서도 현수막을 펼칠 수가 없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챙겨 온 현수막을 고이 접어 두어야 했다.


IMG_20160905_100622.jpg <천지를 향해서 오르는 관광객들>


백두산. 백번쯤 와야 두 번 볼 수 있고 백명중 두 명 밖에 볼 수 없다는 천지. 우리는 운이 좋다. 미니 버스에서 내리자 천지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갈지자로 긴 대열을 이루며 천지를 향해 오르고 있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졌다.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 간 긴팔과 점퍼로 갈아입었다. 모둠별로 모여서 오늘 수행할 미션을 확인하고 관광객들과 섞인 채 천지를 향해 오른다. 백두산 천지. 짙은 청록색이다. 압록강, 두만강, 그리고 송화강의 발원지. 교과서와 역사책 속에서만 보았던 '민족의 성지이자 시원'이란 표현을 생생한 현장에 와서 보니, 비로소 그 거대한 수사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IMG_20160905_105744.jpg <북파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

한 시간 남짓 천지를 둘러보고 다음 코스인 '장백폭포'를 보기 위해 다시 미니버스를 탔다. 오늘 백두산의 전체 여정은 5킬로미터 정도라는 말에 학생들이 탄식한다. 장백폭포까지는 십 분 정도 내리막길이다. 압록강, 두만강의 지류로 흘러든다는 장백폭포. 학생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폭포를 보자마자 감탄사와 함께 입이 쩍 벌어진다. 절경이다. 백두산의 숨겨진 풍광들을 하나 둘 접할수록 이제껏 내가 보아왔던 자연의 풍경들을 장난감 혹은 미니어처로 만들어 버린다.


IMG_20160905_130548.jpg <장백 폭 보>


장백폭포를 보고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숲 속 탐방이다. 정글과 원시림이 산뜻하게 펼쳐진다. 숲길을 걷는데 뭔가 빠진듯한 허전함이 든다. 이 허전함은 뭘까? 한참 숲길을 걷다 보니 비로소 그 허전함을 깨닫는다. 고요하다. 소리가 없다. 하늘로 곧게 뻗은 나무와 알록달록한 풀로 가득한 정글과 원시림 속에. 쌕쌕거리는 새들의 소리. 찌르르르 곤충들의 소리. 자연의 생생한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귀머거리가 되어 버린 듯했다. 가이드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은 새나 곤충들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는 확신 없는 설명이 돌아온다.


백두산 탐방을 마치고 삼십 분을 달려 숙소 이도백하로 향했다. 몸은 피곤하고 다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후들거렸지만 정신은 어느 때보다도 맑았다. 천지를 비롯한 풍광들의 여운이 짙게 남아있다. 시간이 지나면 백두산을 탐방하면서 느꼈던 장엄함과 경이로움은 희미해지겠지만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이미지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엄청난 비밀을 목격해 버린 것 같은 신선함. 충격, 놀라움, 그리고 경이로움. 말로는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느끼며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은 어제의 그 식당이다. 하지만 기대가 되지 않는 저녁 식사. 달달한 믹스커피가 이젠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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