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권력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호창한 봄날에 청와대 관람하고 왔습니다.

by 김인철


화사한 5월의 봄날에 청와대를 다녀왔다. 청와대는 단순히 대통령 관저 이상의 의미를 지닌 곳으로 역사성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까지는 대한민국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다. 주요 건물로 청와대 본관, 영빈관, 춘추관, 관저, 녹지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6월 3일, 대한민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면 다시 청와대를 관저와 집무실로 쓸 수 있으니 이번 기회가 아니면 청와대 전경과 내외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20250526_145349.jpg 청와대 전경


지금의 청와대는 일제 강점기 시절 경복궁을 훼손하고 총독부 청사를 지으며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총독 관저를 경무대라 칭하고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했다. 윤보선 대통령 시절엔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기 위해 청와대(푸른 기와집)로 명칭을 바꾼다. 이후에도 청와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 시절에도 절대 권력의 중심이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20250526_145150.jpg 청와대 전경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를 관람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관람객들 대부분이 중국 관광객들이었다. 청와대를 관람하는 동안 한국말 대신 중국말 밖에 들리지 않았다.


20250526_145522(0).jpg 청와대 내부 전경


윤석열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라고 약속했다. 대통령 당선 직후 청와대를 집무실로 사용하지 않고 개방했다.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했으며, 청와대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관람 가능한 공간이 되었다. 권력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이 되었다. 12.3 내란을 일으키며 절대 권력을 꿈꿨던 윤석열이 절대권력의 상징공간이던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준 건 역사적 아이러니다.


KakaoTalk_20250527_120649426.jpg 대통령 집무실


윤석열이 탄핵되고 1차 체포영장이 집행될 때 대통령 사저가 있는 한남동에 갔었다. 하지만 그곳은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머무는 곳이라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관저로 들어가는 입구와 주변은 잿빛 콘크리트 건물들과 검은 아스팔트 그리고 조화롭지 않은 구조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사는 곳이라기엔 너무 삭막하고 어떠한 아우라도 느낄 수 없는 곳이었다.


20250103_073917.jpg 용산 한남동 관저


이명박 대통령 시절 광우병 소고기 반대집회로 연일 광화문에서 시위를 할 때면, 경찰버스차벽 일명 명박산성으로 가로막혀 청와대로 향하려던 시위대들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인왕산 기슭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던 시위대를 지켜보았다던.


london-1211303_1280.jpg 영국 버킹엄 궁전_pixabay


영국의 버킹엄 궁, 프랑스의 엘리제 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궁 등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열강들의 왕과 대통령이 머물던 공간은 그 나름의 찬연한 영광과 비극, 로맨스의 서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윤석열이 관저로 사용하던 한남동 사저는 어느 모로 보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살 곳은 못된다. 청와대는 위에서 언급한 왕들의 궁전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역사성과 상징은 부족하더라도 대한민국 백 년 근현대사의 역사와 상징 공간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


20250526_154738.jpg 청와대 사랑채_아이스아메리카노


청와대 사랑채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오늘 본 것들을 곱씹었다. 권력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바뀐 청와대는 분명 의미 있는 전환이었지만, 오늘 관람을 마치고 나니 생각이 다시 정리되었다. 청와대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빛과 그림자가 축적된 장소였다. 그러한 상징성과 공간의 기운을 고려할 때, 시민 공간으로 남기기보다는 다시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머물 공간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청와대는 여전히, 청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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