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앞에 흔들리기에
일 년 365일 8,760시간을 글로 쓴다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날이 많아 거르고 나면 한 편 정도 쓸 수 있으려나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글로 쓰면 책 한 권도 모자라!"
그렇겠지 한 사람의 인생이 어찌 책 한 권에 담아질쏘냐
하루하루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 보니 인생의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사실 이것도 백세 시대가 되었다고 떠들기에 후반을 그냥 중반이라 우기는 것일 뿐 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중반이라 부른다.
50대! 이 나이쯤 되면 뭔가 안정적이고 단단한 마음이 자리 잡을 거란 착각을 하고 살았다.
여전히 나부끼고 휘청이는 마음에 나약한 신체에 대한 연민으로 건강을 외치는 순간이 많아졌다.
누구나 하나씩 아픔을 품고 살아간다.
어른도 아닌 청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낭떠러지에 밀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나이런가
한 사람의 삶들이 보편적일 수는 없기에 주관적 견해로 보자면 이렇다.
유아기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걱정 없이 나로 살기만 하면 된다.
고집을 부려도 울어도 웃어도 뭐든 다 예쁘기만 한 나이지만 그럼에도 사랑받고 싶어 더 귀여우려 어쩌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나이일지도 모르겠다.
이 시기의 아기들이 우주의 이치를 안다고 한다지
자라면서 잊어버리는 게 안타깝다.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눈부신 시기다.
10대
부모님이 닦아준 길에서 마음껏 놀고 걷고 뛰고 그러다가 폭풍이 몰아치듯 한바탕 널도 뛰고 그렇게 자기를 찾아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때론 고요하게 때론 꽃처럼 유혹적인 색깔로 혹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강렬하게 타고난 성향대로 자신의 색을 나타내는 시기다.
물론 홀로 빛을 내기에는 부족한 나이고 힘이 드는 시기다. 부모님의 후광이 있어야 더 빛을 낸다.
본인만 스스로 빛난다고 생각하는 젊음이란 오만의 옷을 입고 있다.
선택은 있고 책임과 의무는 모르는 시기다.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을 하고 무모한 용기로 의기충천(意氣衝天)할 수도 있는 나이다.
20대
성인이라는 옷을 입히고 어른이 되라고 등 떠밀리는 나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미래를 위한 투자도 하고 현재도 즐기는 혈기왕성하고 독립된 자아로 삶 앞에서 가장 용맹한 나이던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못할 수도 있는 나이
하지만 젊음이란 무기로 무모해도 도전하고 넘어져도 일어나서 묻은 흙 툭툭 털고 새 옷을 입기에 망설임이 없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두려움에 움츠러들기도 하기에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지는 않다.
찬란한 나이였기에 힘에 부치는 현실 앞에 나약하게 놓여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꿈이 햇살처럼 빛나고 달려가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다.
강요된 현실에 때로는 원했던 일상에 활짝 피어나지 못할까 봐 홀로 속으로 후덜덜 떠는 나이이기도 하다.
30대
부모님의 언덕에 비비며 살고프나 현실은 스스로 살아가라고 채찍질하고 가정을 이루고 다듬느라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나이다.
선택을 하고 책임과 의무로 짊어진 어깨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어깨가 무거워지고 안정에 중점을 둬야 하기에 용기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비난하지 못한다.
책임은 그렇게 나약하게도 하고 용기를 주기도 하는 것이니까 온전히 자신의 선택을 지켜나가기에 열중한다.
넘어지면 주저앉고 못 일어날까 봐 두려워하면서도 책임과 의무라는 무기가 있기에 왕성하게 활동한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을 수 있는 결단력으로 나아간다.
나로 살기가 힘든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넘어지면 또 의연히 일어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40대
안정과 불안함이 시소를 탄다
현실의 냉혹함에 견디는 뚝심이 생겼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며 자기 최면을 건다.
사실은 세상 무서움을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의 무게를 견디느라 바쁘다.
이전의 삶이 바탕이 되어 현재의 40을 온전히 세운다.
기초가 없었으면 무너지기 쉬운 나이겠지
아직은 어깨에 매달린 삶의 무게가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꿋꿋이 버티는 인내의 나이다.
나보다는 내가 만든 가족이란 성이 무너지지 않게 켜켜이 성실이라는 접착제를 바른다.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나이며 그것을 숨기는 나이고 무언가를 이루기도 하는 나이다.
평가는 내가 아니라 주변에서 들려오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나이 이기도 하다.
불혹(不惑)이라 미혹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나이다.
가족을 혹은 나를 보살피고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을 수도 있는 나이이기에 두려움 없이 세상 앞에 당당히 선다.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나이이고 결실을 보기를 바라는 나이이기도 하다.
50대
시작은 없고 결실만 있을 줄 알았다.
와보니 알겠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는 걸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살아온 만큼 글로 쓸 것도 생겼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받아 깨달아 알게 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르겠다.
그냥 세월이 가져다준 나이라는 숫자에 가두어서 여기저기서 주저앉히는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도 뭔가를 하기에 홀가분 한 나이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려면 앞선 시간에서 만들어진 튼튼한 기초가 있어야 가능하다. 여전히 아직도 쌓아가야 할 것이 많은 나이다.
어쩌면 조금은 알게 된 것이 있기도 하다.
그것을 글로 쓰면 된다. 흐른 세월만큼 쌓인 경험도 많고 생각의 폭도 넓어졌다.
40대 이전에 몰랐던 것을 지금은 왜지? 그냥 알게 되더란 말이지
그렇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쁜 것만은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이 된 거야
이 순간이 오면 못 살 줄 알았다.
몸이 아픈 곳이 많아지면서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다. 오히려 홀가분하단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가라면 못 돌아간다. 다시 힘들기 싫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온 만큼 미련이 없다.
아쉬움은 있지만 완벽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인간이지
50대가 되니 그저 세월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뿐이지 50대인 것도 잊고 살아진다.
가끔 누가 물어보면 상기시키고 스스로 깜짝 놀랄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생각이 무거워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좀 내려놓아야겠다.
잎이 먼저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이 있고
꽃이 먼저 피고 잎이 나오는 것도 있다
꽃도 이러할진대 사람은 말해 뭐 하겠는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차이가 있다고 조급할 필요가 없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지 않는가
내가 늦게 피는 꽃이 될지언정 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생을 나이 안에 가둬두고 묶어버리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시작이다. 또 시작할 수 있다. 그게 50대다.
쉽지 않았다. 힘든 순간이 많았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쉽지 않은 삶이었기에 글은 쉽게 쓰겠다.
나를 버린 마음은 더 이상 어리지 않다. 그래야만 비로소 내가 남는다.
어른이 되어야 한다. 흐르는 세월이 그저 의미 없이 흘러가게 두지 말고 글로 쓰면 된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든 강이 넘실대며 귓가에서 찰방찰방 흔들리고 있다.
언젠가는 알게 모르게 다가올 이순(耳順)
귀가 순해져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이해가 된다고 하는 나이다.
오늘을 다져서 나아가면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그렇지 않았고 여전히 나약하고 어린 마음이었지만, 나를 포장하고 살았기에 겉은 어른이었겠지만 그때도 어린 마음을 또 포장하겠지
그때가 오면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오늘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
쓸 수 있을까
인생은 항상 물음표를 안겨주고 고민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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