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에서 나온 말과 내가 들은 말에 짠지처럼 절여진 몸을 외투에 구겨 넣고 책상 밑에 벗어놓은 구두를 다시 갈아 신는다. 신데렐라 구두는 발이 퉁퉁 부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너를 지금 억지로라도 신지 못한다면 마지막 버스는 호박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퇴근이라는 글자를 뒤통수에 날려 적고 죄를 짓지 않았지만 괜히 죄를 지은 기분이 되어 엘리베이터문 뒤에 숨어 닫힘 버튼을 전투적으로 누른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달릴 때 얼굴에 끼얹어지던 차가운 밤공기. 딱딱한 보도블록을 돋움 발판 삼아 짜내듯 버스에 올라타 앉으면 그제야 차가운 창에 대고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창에 그려진 뿌연 동그라미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본다.
상비약이 떨어져 약국에 다녀오는데 집안의 갇힌 온도에 내내 머물며 둔해졌던 몸이 조금 깨어나는 기분이다. 눈에 차가운 바람이 닿는 것이 좋아 쓰고 있던 안경을 손으로 옮겼다. 그렇게 걷다가 퇴근하던 십오 년 전 어느 날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오직 내가 내 마음에 대고 하는 말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었던 때 아프고 슬프고 좋고 기쁜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때는 내 몸 하나 일으켜 세우는 것도 왜 그리 고단했는지 내 안의 세세한 단어들을 읽느라 내내 외로운 것만 같았다.
진짜 외로운 것은. 외로울 사이 없이 아이들 잔물음에 답하고 해결책도 없는 여러 걱정을 하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문득 놓쳐버린 내 감정 하나를 맥락 없이 발견하게 되는 때였는데. 그때도 몰랐지만 역시 지금도 모르겠네.
22년 2월 7일 임시저장 되어있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