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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와 돌멩이 May 03. 2024

도시의 회전목마

작업 노트 8


24.05.03



해가 뜰 때 눈이 떠진다. 일어나 계란 2개와 오트밀을 먹고 커피를 내린다. 새로울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은 이미 굳어져 있다. 굳어 있어서 예측이 된다. 프라이팬을 꺼내 인덕션에 올려 놓고 3단계로 설정한다. 전날의 설거지가 있으면 예열되는 시간에 제격이다. 냉장고에서 계란 2개와 두유를 꺼낸다. 공기에 오트밀 2개와 두유를 재운다. 두유 99.9%에는 꿀 한 숟갈도 좋다. 브리타 정수기를 리필하거나 치우지 않은 쓰레기를 정리하는 짬이 있다. 프라이팬에 손을 가까이 대면 예열 정도를 느낄 수 있다. 현미유를 바른다. 채소를 먹을 땐 채소부터 익힌다. 계란 2개를 익히는 동안 앞에 서서 두유에 풀어진 오트밀을 떠먹는다. 계란이 다 익으면 접시에 덜어 먹는다. 혼자 밥을 먹을 땐 주로 서서 먹는 버릇이 있다. 먹으면서 모카포트를 준비한다. 물은 시원할수록 좋지만 정수도 상관없다. 120ml. 분쇄된 커피 가루는 약 20g. 물을 먼저 보일러라 부르는 하단 통에 부은 뒤, 커피를 담는 중간 깔때기에 커피를 담고 보일러 뚜껑에 놓은 뒤, 압력 추출이 가능한 상단 부분을 조립하면 끝. 프라이팬을 뎁힌 인덕션에 올려 놓고 4단계로 설정한 다음 남은 아침을 마저 먹는다. 모카포트에서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담배 1대 피는 시간의 약 7~80%다. 달리면 집 앞 편의점에도 갖다 올 수 있다. 중요한 건 커피가 추출될 때는 반드시 가열로부터 떼어놔야 한다. 안 그러면 온도가 과해져 에스프레소가 너무 뜨거워지고, 타기 시작한다. 에스프레소 잔에 커피를 따른 뒤 바로 찬 물로 헹궈준다. 커피가 늘러붙지 않게 해야 오래 쓸 수 있다. 모카포트는 15년도부터 쓰기 시작해 지금 3대 째다. 약간 수집 욕구도 있어서 새로 디자인된 모델이 나오면 쟁여두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1대 당 약 2~4년을 쓴다. 관리를 신경쓰는 편이라 기능으로만 쓰면 10년까지도 쓸 수 있겠단 생각도 든다.


 굳어진 하루의 시작 동안 움직이는 몸짓에 생각이란 필요 없다. 그래서 이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전날 고민했던 내용이라든지, 오늘 하루 작업에 대한 불안이라든지, 기분에 대한 점검이라든지. 사로잡혀진 상태인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일련의 의식 버릇은 별다른 목적이 있어서 스며든 최적화 강박이 아니다. 그저 구조화된 뒤로 건드리지 않아 고착화된 패턴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를 떠돌아다니는 명령과 별 특별할 게 없다. 목적 의식이 분명하지도 않고, 불안이 덜 하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다.


 아침 일찍 카페에 갈 때는 자전거를 탄다. 기록용 노트, 작업용 노트, 노트북은 반드시 챙긴다. 책을 읽을 땐 책을 챙기고, 아닐 땐 위의 세 개만 챙긴다. 이왕이면 외대 앞 카페에 간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은 에스프레소가 맛없어서 이왕이면 에스프레소를 내릴 줄 아는 카페에 간다. 자전거로 가는 길은 크게 2가지 루트가 있는데, 시립대를 통과해서 가는 길은 언덕 경사가 크게 2개 정도 있어서 운동이 되고 중랑천을 끼고 돌아가는 루트는 3~40분이 걸리지면 평길이라 설렁설렁 가기에 좋다. 이 둘의 루트가 아니면 외대 앞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시립대와 배봉산, 1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지상에 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외대역에는 기찻길을 건너는 재미가 있었는데, 근래에 가니 사라지고 역을 통과해 건너가는 걸로 바꼈다. 이제 서울에서는 기찻길을 횡단하는 루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외대 앞 카페 매너저는 1번 바꼈다. 이전 매너저와 친분이 조금 생겼다고 느꼈는데 새로 바뀌고 나서 에스프레소 크레마가 시원찮게 나와 마음이 살짝 떠났었다. 한동안 동탄에서 어머니 간병하느라 못 갔었는데, 근래에 가니 바뀐 매니저가 아는 척을 했다. 어느새부터 샷도 잘 내려준다. 먼저 인사도 해주고 메뉴도 아는 척해준다. 날 보면 자동적으로 에스프레소 샷 추가를 찍는다. 예전에 카페 알바할 때 나도 자주 그랬었다. 매일 같은 걸 먹는 사람은 변함없이 늘 똑같다. 16년도 여의도에서 일할 때 아침 6시 30분에 늘 오던 금융맨 한 명이 생각난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성실하게 아침 일찍 와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쿠폰을 하나도 쓰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뒀다. 쿠폰이 적당히 쌓일 즈음, 점심에 직장 동료를 데리고 와 선심을 쓰듯 동료들에게 음료를 사줬다. 자기 마실 거에는 단 한 번도 쿠폰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를 마음에 들어 했었다.


 아직 루틴이 되지는 않았지만, 아침에는 쓰기를 조금이라도 한다. 오늘은 이걸로 대신한다.






한 친구는 자신의 이모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 사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얼마나 침착한 비명을 내지르는지를 말해줬다. 말이 몸을 빠져나가 다른 몸의 귀로 흘러들어갈 때, 감춰야 하는 손과 이 모든 동작을 지켜보다 마지막 순간에 돌려야 하는 눈과, 나를 기억해, 내 세계는 가짜가 아니야, 가짜가 아니야, 벌어진 입술이 동굴같아 선뜻 들어갈 수 없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말은 수만 번의 셔터를 누르는 지문처럼 한 장의 사진으로 상대방의 눈에 찍힌다. 그 침묵을 어떻게 구해야 할까, 구해낼 수 있을까, 구하려는 마음이 맞을까 너무 거대하고 하찮아서, 붙잡으려는 마음이 견딜 수 없어서, 찾아오는 우울 햇빛 바람 비둘기. 마음을 따라 쓴다는 건 앞만 보고 달려드는 바퀴 같아, 지겹다고 말해보지만.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어지는 순간이 불현듯 우리의 옷이 되고.


 집에 와도 갈아입을 수 없는 것이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해도, 샤워를 하고 잠옷을 입어도 유난히 이불 끝자락이 목에 닿는 것이다. 살짝 닿았을 뿐인데 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갑갑해서 아픈 사람처럼 몸을 뒤척이기도 하고 불편한 사람처럼 자세를 고치기도 하고 결국 견딜 수 없는 몸으로부터 도망치지도 못해서 짓누르는 어둠이 되고. 도와줄 수 없다. 아침은 너무 멀다. 미련한 인간아. 미련인 마음아. 덜컥 찾아오는 것이다. 발톱이나 좀 자르지 그래? 눈이나 감아. 살았니? 살았어?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돌이 되는 것처럼 굳어서, 깨뜨리지 말아야지, 침대가 잘 차려진 식탁같아, 누구를 만나도 그렇게 만나고 마니까. '이게 연기란 말이오?' 평생 모를 거야. 흥미가 떨어지겠지. 가만히 붙들려 어둠 속에서 나를 훔쳐보고 있으면, 온갖 소란이 서서히 잠잠해지고.


 눈이 아픈 태양이 뜨는 것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하루가 시작되고, 알람에 맞추지 못한 기분이 끌려다니고, 아무튼 옷이 되고 흔들리는 차량으로 손잡이로 도시로 거리로 천천히, 허둥대면서 입장입니다 들어가세요 Merry Go Round. 구경 거리가 되고, 서로의 눈치를 보는 간격이 되고, 배율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현미경이라도 있었으면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꿰뚫는지 병원에서는 당연해 비싸 다음에 또 오래 왠지 거부하면 안 될 거 같아, 말을 잘 들어야 할 거 같아, 의사는 내가 오는 게 당연한가, 어쩜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 반복, 반복해서. 정지하면 문이 열린다. 뭐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앞장선다.


 하하호호. 서로는 서로에게 괜찮다. 무해하다. 해치지 않아, 불쾌하게 만들지 않아, 수상한 가루를 탄 물처럼 미소를 짓는 우리가 귀엽고 짠하고 대단하고 수상하고 의심쩍어도 밥이나 먹읍시다, 이거 웃기지 않아요? 문지르는 화면 아래 서로의 눈길이 반사되고 사로잡는 캐릭터의 이름이 되고 순간은 이걸로 됐다, 됐어. 이만하면 사실이지, 이만하면 충분히 즐겁지, 뒷모습은 아무도 들키지 않는데. 


 흘러 넘치는 것. 시간들이, 순간들이, 포획된 30초짜리가 뜯는 순간 환불되지 않는 과자처럼 책임져야 할 쓰레기처럼, 흘러 넘치는 것. 과거로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과거에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휩쓸려야 멀쩡한 사람들이 있고, 멀쩡해야 휩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소용없지만 항상 오늘이 있기를, 돌이키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비비는 손바닥 사이로 피어오르는 한줄기 기분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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