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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나무 May 09. 2022

혼자입니다

2022년 5월 8일

당신에게


나는 이 글을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 아래에서 휴대폰으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밀린 일을 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입니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네요. 해는 삼분의 일쯤 지평선에 걸쳐져 있습니다. 머리 위로 말로 다 할 수 없이 아름다운 하늘이 펼쳐져 있어요. 이름을 모르는 여러가지 색깔들이 경계를 모르고 젖어있습니다. 내 언어는 왜 이토록 가난한 것일까요? 이 아름다움을 당신에게도 그대로 전하고 싶은데 말이죠.


집에 가다 말고 아파트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한참 하늘을 바라보다가, 혼자라는 사실이 행복해 문득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약속도 없다는 것이, 그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할나위 없이 자유롭고 홀가분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도 즐겁지만, 암묵적으로 내가 허락한 시간이 다 소진되면, 나는 미치도록 혼자가 되고 싶어집니다. 오롯이 혼자일 때, 나는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내가 됩니다. 가족도, 그 어떤 연인도 내게 준 적이 없는 평화입니다.


혼자라는 표현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와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우리의 사이가 너무나 견고하여,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인과 적정선 이상 가까워지지 않을 때(혹은 않으려고 할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적정선을 잘 지켜주는 상대에게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야 서로가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해한 타인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있고, 나 역시 타인에게 늘 좋은 사람일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감정을  자신에게 터놓는 편입니다. 정말 힘든 순간, 나는 주변 사람들을 제일 먼저 쫓아냅니다. 무엇보다 타인의 위로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냥 혼자가 되고 싶을 뿐이죠. 모두를 몰아낸  혼자가 되었을 , 나는 비로소 편안해집니다. 나는 온몸에 힘을 빼고 고요히 아래로, 아래로,  감정의 바닥을 향해 침잠합니다. 보이지 않을  같던 바닥에 발끝닿으면, 그땐 올라올  있는 반동도 생기더군요.


나의 연약함과 두려움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뿐입니다. 나는 그런 나를 다독여 일으켜 세운 뒤, 손을 꼭 잡고 다시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갑니다. 어쩌면 내가 운이 없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곧 무너질 듯한 나의 불안을 알아채고, 내 손목을 붙들고, 보폭을 맞춰 함께 걸어주는, 그런 타인을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거죠. 혹여나 그런 사람을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만나게 된다면, 나와 나의 관계도 조금은 소원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할 때, 가장 충만함을 느낍니다. 오늘의 나는 자유롭고 행복합니다. 그 무엇도 나를 기다리지 않으므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담벼락에 기대 일몰의 여운이 까만 밤하늘에 잠식되는 모습을 지켜볼 겁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원할 때까지 오래오래 앉아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고요 속에서 남은 주말을 즐길겁니다. 드라마 한 편을 보며 맥주를 마실까 합니다. 점심 때 부쳐둔 야채고추장떡을 데워서 안주로 삼아야겠어요.


이 글 속에 ‘나’가 몇 번이나 등장할까 생각하다 조금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우리 사이의 비결인가 봅니다. 당신의 오후 두 시는 어땠을까요? 누군가와 함께였든, 혼자였든, 타인 때문이 아닌, 당신 자신으로 인해 온전히 행복하고, 자유로웠다면 좋겠습니다.


2022년 5월 8일

사과나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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