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당당함엔 이유가 있다
그녀는 행복해보였다. 몇 년을 봐왔지만 과거를 후회하거나 투덜거리는 것을 거의 본 적도 없다.
남편 지인의 아내이기도 한 그녀를 나는 부부 동반으로 처음 만났다. 첫 만남부터 그녀의 에너지는 남달랐다. 에너지 뿐만 아니라 그녀가 자라온 환경도, 일상을 대하는 태도도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녀는 태어나서 줄곧 강남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이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그 시절 변변한 학원조차 다니지 못했던 나와는 달리 그 당시에도 초.중.고등학생까지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창 시절을 지내왔다고 한다. 고작 나보다 한 살 적은 그녀는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결혼 후 20년 넘게 전업주부로 살아 오고 있다. 그녀는 딸 부잣집 막내 아들과 결혼해 외며느리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시어머니와 함께 한 집에 살고 있다. 상황만 들으면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싶은 것들 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을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방면으로 아는 것도 많았고 눈치도 빨랐다. 그렇다보니 그녀의 정보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녀는 심지어 살림조차도 완벽했다. 그녀의 집에 다녀오는 날이면 살림 열등생인 나는 자책이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런 능력자가 집에서 살림만 하다니.. 이런 인재가 집에만 있다는 사실에 내가 다 아까울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스펙이 진심 아까울 때도 있었고 때론 살림에 에너지를 쏟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내 마음속 궁금증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고 말았다.
“ 학력, 스펙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고 잘 하는 것도 너무 많은데 왜 집에만 있어요?
이 능력을 썩히기 너무 아깝지 않아요?, 무슨 일을 해도 정말 잘할 것 같은데..”
그런데 그녀에게선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 전 지금 제가 잘 하는 걸 하고 있는걸요? 살림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에요.”
순간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심지어 그녀는 지금의 이런 일상이 정말 행복하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매일 아침, 집 청소를 하는 것도 ,시장을 봐서 음식을 하는 것도, 아이 뒷바라지하는 것도 좋다는 것이다. 나에겐 그저 반복적이고 또 지루하고 과제같은 일상이 그녀에게 행복이라니.. 그녀의 평온한 대답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건 내 생각에서 비롯된 편견이었다. 능력있는 사람은 밖에서 일을 해야만 빛난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나만의 고루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가치까치 내 생각대로 재단하며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시점에서 결국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걸까? 능력도 재능도 열정도 거기서 거기지만 내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일을 잘 하는 것 보다 좋아서였던 것 같다.
결국 잘 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있고 더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항상 능력에 목마르고 재능을 의심하며 자신감이 결여돼있던 나였다. 그래서 능력많은 그녀가 집에서만 그 재능을 발휘하는 일상이 내심 아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뭘 잘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평생 내가 찾고 싶었던 답을 그녀는 진즉에 찾은 듯 했다.
행복은 삶의 조건과 상황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녀를 보며 생각하게 되었다.
여느 보통의 전업주부들과는 다른 당당함과 자신감, 만날 때마다 왜 그런 감정이 느껴졌는지 그제야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당신 삶의 전문가가 되세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난 이 말이 생각났다.
이 말은 작년에 열렸던 친구의 출판 기념회에서 들은 말이다. 심리 상담가인 친구는 책소개를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삶의 전문가’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때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창조 할 수 있다고, 나 자신만이 자기 인생의 처음과 끝을 경험하는 유일한 사람이며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자이며 자기 마음을 누구보다는 잘 아는 전문가라고...이 말이 내겐 내내 여운으로 남았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생각났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끌어가는 그녀가 자신의 삶의 전문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기엔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의 핸들을 잡고 자신이 갈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이 보였다.
여기서 ‘내 삶의 전문가’는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해 자기 자신이 갈 길을 찾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형성된 관계와 상황들까지 다각도로 들여다보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라는 말일 것이다. 만점 인생도 완벽한 인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도 이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만 들여다 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구하면서 상대방과 싸우지 않는 기술을 연구했고, 부정적인 언어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끌어내 편안한 일상의 호흡을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 놀랐던 건 결과적으로 그녀의 인생이 완벽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확신, 자신이 뭘 해야 하느지를 알고 행동하는 그 모습에 대한 인정이었을 것이다.
‘당신 삶의 주인공이 되세요’라는 말보다 ‘당신의 삶의 전문가가 되세요'는 말이 내게는 더 와 닿았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꼭 삶의 주인공이 되어 희노애락을 겪고 온갖 풍파와 시련 속에서도 빌런을 물리치고 결국에 해피엔딩, 혹은 예상치 못한 세드엔딩의 결말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내 인생에 내가 책임질 수 있다면 오히려 열린 결말이 더 괜찮을 수 있다. 또 꼭 내가 모든 인생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서지 않아도 자기 삶의 전문가가 되다보면 때론 주연으로, 때론 조연으로 삶의 드라마는 얼마든지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주인공보다는 내 삶을 아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비로소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삶의 전문가’, 이 어렵고도 명쾌한 답을 들고서 난 또 그렇게 인생을 공부 중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라는 사람을 연구 중이다. 평생을 찾아도 잘 모르겠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중이다. 그 과정으로 들어가 나에 대해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올라가봐야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내 인생의 핸들을 잡을 수 있을지 알아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인데 내 인생이 여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