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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쓰고 보기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이하루, 상상출판, 2019)

by 서툰앙마
아팠던 기억을 담담하게 쓰는 것. 기뻤던 일을 슬프게 쓰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의미 있게 쓰는 것. 글쓰기는 우리 삶을 새롭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p.208 / 상상은 낭비가 아니다)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하필 천재가 쓴 글이 내 글 옆에 있어도, 씩씩하게 쓰고 공유하자. 재능을 예단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모른다. 꾸준히 쓰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p.195 / 고민할 시간에 공유해)

# 글을 쓴다는 것


말보다는 글이 더 편할 때가 있다. 아니, 대부분의 경우 말보다는 글이 더 편했다. 하지만 생각 좀 해보고 정리해서 대답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은 적었다. 그렇게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는데 즉각 답변을 말로 내놓으려면 대화를 하면서도 내 말을 궁리해야 했다. 상대방이 그걸 아느냐고? 생각보다 잘~ 안다. 아... 이 녀석은 내 말을 들으면서 딴생각을 하는구나. 그 순간 대화는 깊이가 사라진다. 그 결과는? 어색한 침묵, 궁색한 변명, 어정쩡한 마무리...


SNS가 발달한 요즘. 그게 오히려 더 편하다. 시간을 두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말보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 그것은 느긋하기 짝이 없는 나 같은 곰탱이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생각했다. 빠르게 대응해야 하고 신속하게 대답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벗어나면 글은 더 풍성해지고 지혜로운 조언자, 상담자로서 우뚝 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쉬운 글쓰기와 편한 글쓰기는 달랐다. 쉽게 쓴다고 써도 편하기는 어려웠고 편한 글쓰기가 꼭 쉽게 되는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내 글은 움츠러들었고 그림자 속에 숨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듯 생각하고 그 사람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것이 직업처럼 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과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정말 제대로 글을 쓰는 게 맞을까. 이런 회의가 고개를 드는 요즘, 이 책을 만났다. 나처럼 브런치에서 글을 써온 작가, 두려움과 막연함에 손을 놓았다가 용기를 얻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 그 작가의 이야기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네.


# 일단, 쓰자


1년 365일 다 쓰기는 어렵지만 1997년부터 써 온 일기가 30여 권에 이른다. 어쩌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연습은 해온 셈이다. 그런데 무슨 '일단, 쓰자'냐고? 중간에 생략되어 있는 목적어가 있다. 바로 '내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일기 몇 개를 되돌아봤다. 하루를 정리하는 것인지, 잊고 싶지 않은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글쓰기를 한 것인지, 감정은 어디로 날아다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냥 쓴 것'이다. '에세이'가 될 수 있는 수많은 글쓰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글'을 찾아 다른 곳만 두리번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이제야 깨달았다.


책 표지 하단에 적힌 문장 하나에 공감 200%다.


'글밥' 먹은 지 10년째,

내 글을 쓰자 인생이 달라졌다.


나도 '내 글'을 제대로 써봐야겠다. 그 안에 내가 찾던 막연한 길도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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