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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영 Mar 08. 2023

최지영의 연극놀이 이야기, 열한번째

내 정체성의 마음밭: 온전한 탐색

  내 정체성의 마음 밭, ‘온전한 탐색     


  나의 예술교육가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시기가 언제였을까?      


  예술 체험의 주체로서 특히, 예술 체험을 끌어내는 작용의 주체로서, 신뢰의 원천이 만들어진 마음 밭의 시기를 추적해보고자 한다. 그 시기는 아마도 나의 20대에서 찾을 수 있을 듯싶다.     


  나의 20대는 ‘온통’ 교회 주일학교 교사(sunday school’s teacher)로 보낸 시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학을 앞둔 그 몇 달의 시기, 우연히 교회 선배의 제안으로 예수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한편을 만들어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한두 달 동안 완전히 몰두했었고, 그 열정이 자연스럽게 주일학교 교사로까지 이어졌다. 나는 85학번인데, 그 당시에는 대학생이 되면,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것이 교회의 문화 속에서는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경험이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준비할 것도 많고 여유가 없어, 주일학교에 청년 선생님들의 존재가 거의 사라진 것은 참 아쉬운 풍경이다)     


  난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해 결혼 전까지 8년여의 세월을 주일학교 활동에 몰두해 보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단지 책임감과 신앙심뿐이었을까? 아니다.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환경과 관계들, 그리고 나의 순수한 열정이 합을 이루어 낸 시간이었다. 

  우선, 교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지원은 하되 당회와 담임목사님의 간섭이 없는 환경이었다. 모태 신앙자로서 내가 나고 자란 교회는 장충동에 있는 ‘경동교회’이다. 경동교회는 교인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교회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신우회’라는 모임이 있었다. 매주 예배와 교사들이 이끄는 성경 공부 시간 외에, 토요일에 모였다. 여름, 겨울 성경학교와 일 년에 한 번 진행하는 ‘예술제’(그 당시 보통 문학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를 학생들이 자치회를 꾸려 기획하고 진행했다. 이러한 방식은 교회학교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목사님에게 성경 공부 내용을 하달받아 그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기본적인 주제 말씀에 대해 교육전도사님이 안내하고 핵심을 잡은 후에, 교사들 간의 토론과 논의가 이어졌다. 성경 공부의 방식은 철저히 교사의 방법을 지지하고 인정해 주었다. 방학 때 진행되는 여름성경학교와 겨울성경학교도 교사들이 함께 만들어 나갔다. 성경학교 주제가 정해지면, 담당 전도사님 혹은 그 주제를 위한 강사를 모셔서 주제에 관한 성경 공부를 했고, 그 성경 공부를 바탕으로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구성한 프로그램은 사전답사를 통해 다시 공간에 맞게 수정되었고, 성경학교 프로그램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과 교사들의 역할을 정해서, 성경학교를 운영했다. 이러한 준비를 위해, 매번 성경학교 때마다 1박 2일 이상의 합숙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다른 교재가 아닌, 우리 교사회에서 ‘여름 책’, ‘겨울 책’이라는 새로운 교재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현장 속에서, 난 나의 도전 의식과 호기심을 그대로 쏟아부은 성경 공부 수업을 진행해나갔다.  

    

  성경 속 인물에 대해 상상하는 시간을 갖고, 그 인물을 표현해 보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오늘의 성경 말씀이 무엇이라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고, 모든 활동이 끝난 후에 성경 속 인물과 말씀을 추리해서 맞추도록 했다. 움직임과 노래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교회학교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과는 다른 해방감을 느끼는 공간이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에게 많은 통제를 받다가 교회에 오면 그러한 통제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교회학교에서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통제와 몰입을 끌어내는 것은 절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엄청난 에너지로 어린이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노래하느라, 성경 공부가 끝나면 온몸이 땀에 젖기도 했다. 나의 무기는 열정과 에너지였다.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면 나도 같이 올라가서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우선은 어린이들과 같은 에너지 레벨을 맞추면서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간이 적응되면서, 어린이들과 밀고 당기는 긴장감과 리듬감을 즐기게 되었다. 

  20대의 대학생이었던 난, 솔직히 성경 과목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논다’, 성경 공부 시간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몰입과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가를 탐닉했다. 어떤 시간에는 성경책 한번을 펼쳐보지 않고 끝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방식과 행동에 대해, 교회학교의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나의 탐색과 활동은 더 확장되어 갔다. 교회학교 교사와 함께, 어린이 찬양대의 지휘도 맡았다. 찬양대 발표회를 모든 어린이의 ‘독창 이어가기’로 진행하기도 하고, 낭독과 움직임을 융합해 마치 한편의 뮤지컬처럼 진행하기도 했다. 그 당시, 그 발표회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을까? 자기 순서를 잊어버리는 아이, 음을 못 잡아서 계속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정작 화음을 맞추어야 할 때는 화음이 맞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아이들은 나름 진지했다. 함께 약속한 내용들을 모두 각자 온 힘을 다해 완수하기 위해 분투했다. 찬양제 당시, 흥분되면서도 집중했던 어린이들의 눈망울이 또롯이 기억난다. 찬양을 연습해서 발표한다기보다는, 어린이들과 지휘자, 한명 한명이 다 함께 찬양제를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부모님들도 자신 아이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마음 졸이기도 하고, 응원하면서, 온전히 관객과 참여자가 함께 끌고 가는 시끌벅적한 잔치 같은 찬양제로 마무리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러한 탐색은 이어서 ‘연극만들기’로도 이어졌다. 그중에서, 초등 어린이들과 함께한 ‘이상한 옹달샘’과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한 ‘너도 교회 다닌다며?’라는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해서 올린 것이 기억난다. 특히 ‘이상한 옹달샘’의 시작 장면에서, 해설자를 맡은 어린이가 뒷주머니에서 천을 꺼내 “이곳이 옹달샘입니다‘라고 펼쳐놓으며 시작했던 순간은, 지금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짜릿하다.     

 

  이 8년여의 세월 동안 내가 경험한 것은 무엇일까?      

  온전한 탐색이다     


  물론 내가 하는 활동과 수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난 결과에 주저하지 않고, 일단 활동과 수업에 온전히 몰입해볼 수 있는 시간을 축적했다. 그 온전한 탐색을 통해, 나는 ‘머릿속의 상상이 구현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몰입할 때 분출되는 희열을 체험했다. 이러한 기쁨과 신뢰는 나보다도 나를 더 믿어주었던 교회학교 선생님들과 순수하게 몰입하며 즐거움을 나누었던 그 당시 어린이들 때문에 가능했다. 

  난 이끔이로서, 내 자신이 흥미가 없고 몰입이 되지 않으면, 연극놀이 프로그램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이러한 동력이 나의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 동력이 사라지면 프로그램 자체가 소멸되는 치명적인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난, 이것을 안다!  그래서 이러한 에너지를 최대한 참여자들과의 에너지로 순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나의 온전한 탐색을 현장의 모든 참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나의 모든 열정과 이성을 총동원한다. 


  연극놀이의 현장에서 참여자들과 함께 온전히 몰입하며 즐거움을 나누는 내 이끔이로서의 에너지는, 바로 20대의 주일학교에서의 시간들로 형성되어진 것이리라. 그 마음밭은 지금도 내 가장 깊은 곳의 토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 흔들리고 혼란스러워질 때, 특히 무기력질 때 마다, 다시금 그 마음밭으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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