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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01.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5

펠트로 만든 크레파스 친구들 연필캡 10종

날은 굳었지만 어디선가 봄 내음이 나는 것 같은 오늘, 언니를 졸라 그녀의 스마트폰 클라우드에서 옛 사진들을 꺼내보았다. 이 사진을 찍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나 됐다. 언니의 바느질 세계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구나 새삼 느꼈다. 그리고 지금은 더 이상 만들지 않는 이 연필캡은 나도 하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앙증맞고 귀엽다.


이 펠트로 만든 연필캡은 지난 글에서 소개한 [크레파스 친구들 카드지갑]의 자매품이다. 목걸이 카드지갑이 되었던 크레파스가 이제 연필캡으로 소임을 다하기 시작한 것이다. 풍요하리 자매는 모든 컬러를 좋아한다. 바느질 소품을 만들고 그림을 그릴 때 여러 색을 전부 사용하며 행복감을 느끼는데 이 친구들은 다채로운 색을 지니고 있어서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작품이다.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알아차렸겠지만 이 친구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 다르다. 입 모양도 다양하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각 캐릭터들의 성격에 맞게 표정을 모두 다르게 구성한 것이다. 크기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라서 실제로 보면 앙증맞다. 보들보들한 펠트 원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집게손가락으로 한 친구를 집었을 때 마치 살아 있는 크레파스 인형처럼 느껴진다. 또, 팔다리가 달랑달랑 움직여서 재미를 더한다. 




검정 크레파스는 그림책 설정 상 외톨이 취급을 받기도 하고, 심성 착한 주인공 역할이기 때문에 언니가 조금 더 힘을 줘서 만든 것 같다. 마시고 있던 테이크아웃 커피 컵 위에 올려두었더니 이렇게나 사연이 있어 보인다. 무슨 일이 있기에 빨대를 붙잡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괜스레 여러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기본적으로 연필캡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발이 달린 밑부분이 뚫려 있다. 어떤 연필이든 포근히 감쌀 수 있게 적당한 너비의 입구가 있다. 각 얼굴은 얇은 한 줄의 실로 표정이 수놓아져 있고, 볼에는 핑크색 프렌치너트 스티치가 놓여 있어서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다. 몸통 스티치는 모두 포인트 컬러로 바느질했다. 깔맞춤의 귀재 언니 하리의 눈썰미가 돋보인다.




이 작품들을 보면 풍요하리가 아주 초창기일 때, 플리마켓에 나갔던 일화가 생각난다. 날이 궂어서 그런지 손님이 많지 않고 장사가 잘 되지 않아 파리만 날리던 시절 한 꼬마 손님이 우리 매대에 찾아왔다. 두리번거리며 작품을 천천히 구경하더니 핑크색 크레파스 연필캡을 집어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는 눈빛엔 호기심이 어려있었다. 꼬마 손님에게 작품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하였고, 손님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자리를 떠났다. 아이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려나 싶어 판매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을 무렵,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꼬마 손님이 우리 매대를 찾아왔다.


"이거 주세요."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아까 그 핑크색 크레파스 연필캡을 집어 든 뒤, 우리에게 돈을 건넸다. 오늘 장사의 첫 게시나 다름없는 순간, 우리 자매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아이에게 연필캡을 건넸다. 꼬마 손님은 이내 발걸음을 돌리며 매대를 떠났다. 그 뒷모습에서 작은 만족감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풍요하리에게 귀한 첫 어린이 손님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 뒤로도 몇 개의 친구들이 더 떠나고 남은 크레파스는 까망이와 하늘이다. 극과 극의 표정이 돋보이는 약간 칙칙한 색들의 아이들이 새삼 웃음을 자아낸다. 다시 만들지 않아 소중해진 아이들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고 전시용으로 보관하고 있다. 왜인지 이 친구들은 우리 자매처럼 오래도록 우리 곁을 지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MBTI가 완전 반대일 것 같은 두 친구를 보며, 다른 친구들을 더 만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이 둘만으로도 만족감이 들어 당장 실행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귀찮아서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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