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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02.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6

빈티지 원단으로 제작한 마우스 패드


오랜 시간 동안 질리지 않고 내 곁을 지키는 것들이 몇이나 될까.

인연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 소원해지고 구매할 때는 평생 아껴줄 거라고 맹세하던 반짝이는 물건들도 어느샌가 내 곁을 지키지 않고 떠나버린다. 물건이 넘쳐흐르는 요즘이라 소중함을 잊어버린 것일까. 같은 용도의 여러 물건들을 사고 싫증이 나면 버리는 일들이 나의 일상에도 넘쳐난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저장하듯 미친 듯이 물건을 모으다가 물건이 너무 많아지면 버리고 처분하는 일이 반복된다. (참고로 다람쥐는 생존을 위해 도토리를 모으는 것이라 나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풍요하리도 물건을 만들어내는 공방이라 이런 고민들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세상에는 매일매일 물건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데 여기에 보태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맞는가 하는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언니와 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이 고민들은 우리가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데 고려해야 할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하며 알게 된 '우리가 물건을 만들어낼 때 중점적으로 두는 가치'는 다음과 같다.


용도가 명확할 것.(Availability)

튼튼하고 오래 사용해도 멋스러울 것.(Sturdy)

거기에 풍요하리만의 디자인을 고스란히 담을 것. (Poongyohari's Design)


3년의 업력 기간 동안 이 세 가지를 담는 것이 핵심 가치가 되어 아이템을 생산해 왔다. 이는 '우리가 지금부터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마음을 먹은 뒤 시작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체득한 무언가였다. 지금부터 바느질도감에 소개할 이 마우스패드가 이러한 가치를 잘 담고 있는 초창기 아이템이다.


이 마우스패드는 2019년, 언니 하리가 1기 작업실을 혼자 운영하던 때 만들어졌다. 동물을 아주 좋아하는 언니 하리는 격자 모양의 이 빈티지 원단을 보고 마우스패드를 떠올렸다. 마우스패드로 사용하기에 적당한 크기로 섹션이 나눠져 있고 양, 말, 오리와 같은 다양한 동물들이 프린트되어 있다. 한 원단으로 다양한 동물들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때는 풍요하리 캐릭터가 제작되기 이전이라 캐릭터 소품들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완성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먼저, 이 마우스패드는 사용성에 중점을 두어 제작하였다. 마우스패드는 바닥면이 고르지 않으면 커서가 어디론가 튀어버리고 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우스가 닿는 면을 평평하게 유지시키도록 일반 솜이 아닌 특수솜을 사용하였다. 여러 번의 뜯고 만들기를 반복한 결과 단단한 윗면이 완성됐다. 솜과 원단을 고정하기 위해 격자 퀼팅으로 바느질했다. 여기에서 하리의 디자인 포인트가 돋보인다. 전체를 격자 퀼팅한 것이 아닌, 동물 그림의 테두리와 원단 모양에 맞춰 퀼팅 바느질이 들어간 것이다. 이로 인해 볼륨감 있는 마우스패드의 형태가 완성된다. 


패드 위아래로 짧은 길이의 태슬이 달려있다. 양탄자가 생각나기도 하는 이 태슬은 멋스러움을 유지시키기 위함도 있지만 심미적인 효과도 크다. 태슬로 인해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된다. 뒷면은 패드 자체가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처리가 된 원단을 사용했다. 손 퀼팅과 단단한 솜, 뒷면 원단까지 삼박자가 두루 갖춰져 튼튼하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마우스패드가 완성된 것이다.



백말 띠인 나를 위해 언니가 만들어준 흰말 마우스패드. 직장인이던 시절에도 잘 썼었고 공방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계속해서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이제는 손에 익어서 그런지 다른 마우스패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물건의 특성상 찢어질 염려도 없고 해지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이 들어서 가족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언니의 이 작품을 보면서 풍요하리 공방의 신념들이 공고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이 더 탄생할 것을 기대하게 된다. 우리의 작품을 만드는 이들에게도 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며 오늘의 바느질 도감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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