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섹시한 식재료
버섯은 기가 세다. 고기도 아닌 것이, 채소도 아닌 것이, 건강기능식품으로 대단한 명성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기세등등한 배경은 도대체 무엇일까.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성철 스님 열반 시기의 이야기 한 토막. 겨울이었다.
원효스님 이래 최고의 선승으로 불리던 성철 스님이 세상을 떠났다. 아니, 열반하셨다.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눈을 감기 직전, 수제자 여럿이 모여 스님을 일으켜 앉힌 뒤 한 제자가 물었다. 아니 여쭈었다.
“스님, 지금의 경계가 어떠십니까?”
이제 막 돌아가셔야 할 성철스님은 말할 기력도 없었을 텐데… 그래도 말씀하셨다.
“섀애끼.”
그 와중에 어디에서 기력이 왔는지, 손을 들어 제자의 뺨을 후려쳤다. 미소를 지으면서.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날의 사정을 어떻게 그리 잘 아느냐고 궁금할 수도 있지만, 이유가 있다.
그때 뺨 맞은 스님과 절친한 예술인이 있었고, 그 시절 나는 그분을 졸졸 따라다녔다. 졸랑졸랑 따라다니다 해인사 아랫마을에서 저녁을 먹게 된 날이다. 고바우 아저씨 같은 식당주인에게 노 작가가 저녁을 주문했다.
“송이 있죠? 넉넉히 로스로 주세요.”
나는 그 주문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송이 로스구이?
잠시 뒤 뽀얀 송이들이 수북이 얹혀진 쟁반이 나왔고, 하얀 버섯들은 불판 위에 올라가 익어 갔다. 그리고 한 점씩 한 점씩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 갔다. 맛이 요상했다. 쫄깃쫄깃한 질감에 상큼한 향이 감도는 맛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입안에 계속 침이 고이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부드러운 고기 맛 같기도 하고, 입안을 녹이는 껌 같기도 하고... 맛에 취해 몽롱해 있던 나는 고바우식당을 나서는 순간 아차 하고 말았다. 노 작가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장난이 아니었다. '아, 송이값은 생각도 안 하고 염치 없이 먹어 버렸구나.' 후회는 언제나 때를 놓친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 나는 해인사 아래의 작은 암자에서 1년 여를 묵었다. 그때 수많은 버섯요리를 접했다. 송이버섯, 표고버섯, 능이버섯... 온갖 버섯요리를 먹어가며 맛을 음미했다. 송이는 쇠고기 맛 같고 표고는 돼지고기 질감이 나며 능이는 해산물 같았다. 고기를 먹지 않는 스님들이 버섯을 대용식으로 삼는 이유도 나름대로 해석했다. 고기와 비슷한 맛과 단백질을 보충하는 용도로 버섯처럼 좋은 게 없을 테니.
사하촌에서 한참 내려가 가야산 초입에 이르면 구원반점이란 중국집이 있다. 작고 허름한 집, 무심히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는 간판, 아는 사람만 아는 중국집이다. 해인사 스님들은 구원반점 자장면이 지구 최강의 맛이라고 주장한다. 젊은 학승들을 위해 가끔 구원반점에서 출장 서비스도 해주는데 그때 내놓는 게 버섯자장면이다. 해인사 스님들이 애용하는 버섯자장면은 고기를 듬뿍 넣어 만든 자장면 요리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이 깊다.
송이는 소나무 밑둥에서 자라고 그것이 소나무에 붙은 귀처럼 보인다고 해서 ‘송이(松栮)’로 불린다. 절묘한 비유, 놀라운 해학이 담긴 이름이다. 버섯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문명이 꽃핀 나라 어디에서나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수많은 식재료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내세우며 폼을 잡지만 지구에서 버섯처럼 섹시한 식재료는 없다. 버섯은 맛과 맛의 경계선에 있어 음미하는 사람에 따라 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버섯은 요리하는 사람의 방식과 수준, 취향에 따라 맛의 간극이 유난히 크다. 수많은 맛의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조화를 부릴 수 있는 재료가 버섯인 것이다.
성철스님은 생식(生食)과 소식(小食)으로 살아간 수도승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이 지구를 떠나던 마지막 순간 제자의 뺨을 후려친 저력을 회상하며, 감히 추측하기를 버섯의 역할도 적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