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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치료

수술은 시작에 불과했다

by 모모


보지 말 걸.


무서워서 못 보겠다고 할걸.

용기 있는 척 안와를 봐 버린 탓에, 당장 오늘부터 수술부위를 내 손으로 관리해야 하게 됐다.


안와내용물제거술 후의 눈구멍은

멸균 거즈에 비누 거품을 내서 부드럽게 문지르고, 샤워기를 가장 세게 해서 헹궈야 한다—


고 하지만, 말이 쉽지,

안구 없이 비어 버린 눈구멍에 스스로 손을 넣어서 씻으라고?

이식한 피부가 낫지 않아 염증과 피가 뒤섞인 살에 강한 물줄기를 쏴 대라고?


나는 또다시, 당신들이면 할 수 있겠냐며 진찰실의 서류와 집기들을 밀어버리는 상상을 한다.


거지 같은 암. 망할 눈꺼풀암.






"방사선 치료도 고려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두경부외과의 정기 진찰을 받는 날, 예상치 못한 단어가 흘러나왔다.

분명 수술 전에는 큰 수술인 만큼, 수술 하나로 끝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는데.


"수술로 제거한 부분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전이가 있었던 이하선은 수술 전에 예상했던 크기와 동일한 암이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크기가 작고, 이미 제거된 부분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


그래, 멀쩡한 부분을 잘라냈다는 것보다는 억울하지나 않은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만약을 위해 같이 제거했던 임파선에서도 전이가 발견됐습니다. "


취소다.

임파선 전이라니, 멀쩡한 부분을 괜히 잘라냈다고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생각보다 전이가 진행되었고, 암이 림프절 안쪽뿐 아니라 바깥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만약을 위해 방사선 치료도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아요. "


그놈의 만약, 만약…

암을 만나고부터, '만약'으로 시작한 말들은 대부분 '현실'이었다.

두렵다.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올 때마다 혈압이 올라서 또 다른 암에 걸릴 것 같다.


"치료를 할 경우에는 현재 상태에서 시뮬레이션해야 하기 때문에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치료를 할지, 거부할지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주세요."

"방사선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이 있나요?"

"겨우겨우 결심해서 큰 수술을 받았는데, 방사선 치료까지 가는 것은 비용이나 부작용 면에서 부담스럽다며 거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하고 싶지?


"선생님, 저는요, 반대로 눈까지 포기했는데 암이 남아 있다고 하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아요.

이 기회에 제 몸에서 암을 완전히 없애고 싶어요. 제발 없애 주세요."




방사선 치료는 병원의 방침, 방사선과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치료다.

내가 다니는 암 병원의 방사선 치료는 어떤 암이든 기본 주 5회, 총 33회로 이루어진다. 약하고 잦게 조사(照射)해서 조직의 손상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7주 동안 매일매일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어야 하는, 짧지 않은 여정의 시작.

치료가 시작되고 2주 동안은 별다른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정도면 꽤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비교적 회복력이 좋은 나이에 암에 걸린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3주 차 첫날부터 지옥이 시작되었다.

방사선이 닿는 오른쪽 얼굴 전체가 불타오르듯 빨갛게 변했다. 피부 표면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피부 안쪽은 이미 깊은 화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피부 속에서 아주 잘 갈린 회칼로 살결을 긁어내는 듯한 기분 나쁜 통증이 이어졌다.

동시에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입 안은 구내염으로 뒤덮였다. 입술 바깥쪽부터 목 안쪽까지 물집이 터졌다가 다시 생겼다가를 반복하며, 입을 움직일 때마다 얼얼함과 따끔거림이 밀려왔다.


4주 차부터는 혀가 조금 둔해졌나 싶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미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미각을 잃으면 그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상과 다르게, 입 안에서 자꾸만 텁텁하고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침을 삼킬 때마다 역겨운 기운이 올라와 구역질이 났다.

같은 주에 귀 뒷부분에서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서 희멀건 두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회복 중이던 안면마비는, 방사선에 손상된 피부 조직이 돌처럼 단단해지면서 다시 악화되었다.


눈 하나를 잃었다는 슬픔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은 참으로 다양하고 고통스러웠다.




각종 부작용에 몸을 씻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가장 괴로운 건—이런 몸으로 매일같이 한 시간 넘게 전철을 타고 병원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36도를 오르내리는 열기, 살을 찢는 듯한 햇빛. 도쿄의 7월이 지옥의 불구덩이처럼 느껴졌다.


부작용이 무척 심각했던 30회 차 치료날,

그날은 환승역인 신주쿠역에서 평소보다도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많은 사람들 모두 두 눈 멀쩡한데.

다들 피부도 몸도 마음도 건강해 보이는데. 심지어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한데.

왜 나만. 도대체 왜.


'이럴 거면 지구에 역병이 돌아서 다 같이 아팠으면 좋겠어.'



빌어먹을 암.


때문에 나는 더 빌어먹을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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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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