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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에서 만난 뜻밖의 환대

한국인이라서 덕 본 사연

by 파퓰러

새해가 되었고, 예상과 달리 일이 많지 않았다.

조금 심심했다.

여행 사이트를 찾아보니 저렴한 항공권들이 많았다.

눈에 띈 건 시즈오카행 저가 항공.

항공료만 편도 5만원.

충동적으로 시즈오카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급하게 떠나게 된 시즈오카행 여행.

계획은 단순했다.

-시즈오카에서 유명한 말차를 마셔보자

-시즈오카에서 잘 보인다는 후지산을 보러 가자


유일하게 상세하게 정한 계획이 있었으니,

도착 첫날 저녁엔 시즈오카역 근처에 숙소에 있는 아오바 오뎅거리에서 오뎅먹기!

오뎅과 하이볼~

너무 근사한 조합이다!





비행기를 타고 시즈오카 공항에 도착.

시즈오카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변 쇼핑몰을 지나 아오바 오뎅거리에 도착했다.


지도상에서 내 위치는 아오바 오뎅거리인데...

화려할 것으로 기대했던 아오바 오뎅거리를 찾지 못하고 한참을 빙빙 돌기만 했다.


겨우 발견한 아오바 오뎅거리.

두둥... 불이 모두 꺼져있다.

'망한 거 아냐?'

자세히 살펴보니 수요일은 정기 휴무일이었고, 내가 시즈오카에 도착한 날은 수요일이었다.


계획 없는 여행의 폐해일까.

아니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얻게 된 뜻밖의 여백이었을까.




대안은 없었다.

그냥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다닐 뿐.

하지만 10시가 다 되어가는 평일 저녁 늦은 시각.

주변 식당들 중에는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주변 고깃집이나 술집은 시즈오카 직장인들로 시끌벅적한 곳도 있었지만, 차마 혼자 들어가서 한 끼 먹기는 부담이 컸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겠다고 한 술집에서는 주문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정처 없이 한참을 밥 먹을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결국 발견한 곳은 시즈오카역과 연결된 상가에 있는 이자카야.

주문은 10시까지 해야 한다고 하고, 11시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그 정도면 내겐 충분하다!




1인석에 안내받고 드디어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배가 고팠고, 주문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던 나는 이것저것 많이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가고...

알바생 셋이 다가오더니 '한국에서 왔냐고' 묻는다.

내가 그렇다고 하니 알바생들의 얼굴은 더욱 빛이 났다.

내가 일본어를 잘하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나는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일본어를 조금 하는 이유는 '전화일본어'로 꾸준히 연습했기 때문이라고 했더니, 그런 게 있다며 놀라움을 표현한다.

실제로 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전화일본어 수업을 통해 꾸준히 일본어 실력을 '유지' 정도만 하고 있다.


알바생들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한국에서의 여행경험에 대해 공유해 줬다.

경복궁이 좋았고 홍대도 좋았다고 한다. 음식도 모두 맛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알바 중이었던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본인들의 자리로 흩어졌다.

다시 한 알바생이 조심스럽게 오더니 한국어로 '자릿세'라고 표기된 안내문을 보여준다.

일본에는 '오모테나시'라는 문화가 있다며, 이걸 미리 설명 안 해줘서 정말 미안하다며 차갑게 식어있는 반찬 두개를 맛있게 살포시 내려놓고 갔다.


술도 2인분, 안주도 2인분.

주문한 메뉴는 살짝 느끼한 것도 있었지만 허겁지겁 맛있게 잘 먹었다.


계산을 마치고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영수증에 적힌 귀여운 한글.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어쩜.

글씨를 나보다 더 잘 쓴다.

글씨를 나보다 잘 쓴다고 했더니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수줍게 말한다.




내가 나갈 때, 알바생들이 모두 나와 배웅해 줬다.

처음 느껴보는 이 기분.

혼자 해외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인연.

낯선 사람과의 짧고 따뜻한 만남.

잊지 못할 오랜 기억.

혼자였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혼자여서 만나게 된 추억이었다.


다음에 또 시즈오카 여행을 간다면 이 알바생들은 모두 없겠지...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곳이 이번 여행, 가장 따뜻한 기억이 시작된 곳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이라고 이렇게 좋아해 주다니.

한국인의 지위를 올려준 BTS를 비롯한 K-pop 스타들에게도 심심한 감사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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