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랑이 Mar 06. 2020

별 일 아닌 순간은 없다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별 일 아닌 순간은 없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이 있다.


  “별 일 아니야.”


  물론 화자가 의중을 숨기고 청자가 걱정을 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말로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일이야.’라는 말보다 심신의 안정을 주는 말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큰 일’들은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닌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경험들이 쌓여가며 삶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는 점차 의연해진다. 때로는 긴장감을, 때로는 느슨함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삶이란 유속의 완급은 조절된다. 그런데, 만약 매 순간 별 일 아닌 순간이 없는 삶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손에 쥔 노를 놓치지 않고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할 수 있을까.








  특별한 신고사건이 없는 조용한 일요일 오후였다. 겨울의 중심에 있었지만 따스한 햇살과 점심 식사 직후의 나른함은 신임경찰관의 긴장마저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 짧은 여유마저 허락할 수 없었던 걸까. 눈치 없는 신고지령에 무전기가 울렸다.



  [아파트 10층 복도에 수상한 사람이 서 있다는 신고입니다. 출동하여 확인 바랍니다.]


  나와 선배는 쏟아지는 오침의 유혹을 뿌리치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무얼 보고 수상한 사람이라고 신고했을까요?"


  "글쎄, 가보면 알겠지."  


  경험이 부족한 신임경찰관이 느끼는 긴장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현장에 대한 두려움. 부정적인 감정들을 애써 외면하며 신고 장소에 도착했다. 15층 높이의 복도식 아파트였다.


  [띵동. 10층입니다.]


  현장인 아파트 10층 복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복도에는 한 남성이 서 있었다. 더벅머리에 허름한 옷차림, 흙먼지가 묻은 작업화를 신고 있는 남성은 아무 말 없이 복도 밖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고 내용처럼 충분히 ‘수상한 사람’으로 보였다.


  "선생님?"


  우리가 말을 건네자 남성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두려움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 그 눈빛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다. 그는 갑자기 복도 난간에서 10층 높이의 밖을 향해 몸을 던졌다. 우리 역시 반사적으로 몸을 던져 가까스로 그의 추락을 막았다. 하지만 완전히 막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난간 위에 반쯤 걸쳐 있었고, 한쪽 팔과 다리는 허공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난간 안쪽에 있는 그의 반대쪽 팔과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글로 이를 묘사하다 보니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자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위험합니다! 어서 안쪽으로 들어오세요!"


  당장 그가 누구인지, 왜 뛰어내리려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그의 선택을 막아야만 했다. 개인적인 사정은 그를 끄집어 올린 후 의자에 앉아 들어 보아도 늦지 않았다. 죽음을 택한 자의 결의는 이를 막으려는 자의 의지와 팽팽히 맞섰다. 그가 허공에 떠있는 팔과 다리를 거세게 휘저을수록 그의 다리를 잡고 있는 나의 손아귀 힘은 점차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놓치는 순간 이 사람은 죽는다!'


  당시 나를 사로잡은 건, 그를 살려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아니었다. 부끄럽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부정적인 상황들만이 가득했고, 그에 따른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보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지금 내 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한 현실이었다. 그를 붙잡고 있던 팔이 점점 아려오며 버티고 있던 다리마저 후들거렸다. 그 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나의 시간만 멈춰버린 것 같았다. 공포감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와의 사투가 길어지자 갑자기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지금 내가 왜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거지?'


  겨울이지만 유난히 햇살이 따스했던 일요일 오후. 이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공원을 산책하고 있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책 한 권을 읽고 있거나, TV에서 보던 맛집에서 식사를 즐기며 각자의 방식대로 평화로운 주말을 만끽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왜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억울함마저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선택한 직업과 일에 회의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시나마 이 순간이 끔찍한 악몽이길 바랐을 뿐이었다.


  어느덧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겨울의 냉기는 지속되는 긴장감과 극도의 공포심이 발산해낸 열기에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왜소한 체격이었다. 하지만 이미 몸이 반쯤 허공에 떠 있는 성인 남성을 맨손의 완력만으로 끄집어 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살릴 수 있을까?'


  이를 악 물어보았으나 한 번 엄습한 두려움이 쉽사리 자신감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점차 팔에 힘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끼자, 자칫하면 그를 이대로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나약한 생각에 애써 잡고 있던 정신마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하면 안으로 끌어당겨!"


  선배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눈빛으로만 대답했다.


  "하나!"


  "둘!"


  "셋!"


  선배의 구호에 맞춰 그를 힘껏 안쪽으로 끌어당겼고, 우리 셋은 모두 바닥에 나뒹굴었다.


  '살았다!'


  그를 '살렸다'는 생각보다 죽을 위기에 놓이지도 않았던 내가 '살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남성이 다친 곳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제대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엉금엉금 기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헉헉, 선생님… 괜찮으세요?"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배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허리춤에 있던 수갑을 꺼내어 채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범죄자도 아닌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는 선배를 보며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수갑을 채운 선배는 그의 상의와 하의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후에야 중앙경찰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떠올랐다. 선배는 그가 이미 자살기도를 한 자이기에 재차 또 다른 방법으로 자해를 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해 방지 차원에서 그에게 수갑을 채운 후 흉기 소지 유무를 검사한 것이다.


  이후 우리는 그와 함께 지구대로 돌아왔다. 그는 가족관계를 묻는 우리의 질문에 한사코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지속적인 설득에 마침내 유일한 가족은 친형뿐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형은 자신의 자살기도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며 지금은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의 형에게 연락을 취했다. 형은 동생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이유를 묻지도 않고 동생이 경찰과 함께 있다는 말에 일을 하다말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우리는 조심스레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그의 형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짧은 인사말과 함께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놀라기보다는 오히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형을 보며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형에게 자살예방센터를 통한 상담을 권했지만 가족 문제이니만큼 조용히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형의 옆에 말없이 서있던 남성은 원망 섞인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게 죽겠다는 사람을 왜 굳이 살려가지고… …."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는 심정에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뱉은 그 한 마디는 자신을 살리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진 말이었다. 그때 마침 우리의 심정을 대변하듯 그의 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인마! 조용히 안 해? 너 정말 끝까지… …!"


  나는 오히려 그의 형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서 동생분과 함께 조심히 들어가세요."


  짐짓 괜찮은 척했지만 허탈감이 밀려오며 억울함마저 느껴졌다. 그때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제복을 입고있는 동안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은 매 순간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일 것이며, 그 결과 또한 예상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매 순간, 결코 별 일 아닌 순간은 없다는 것을.     








  당시 나는 처음으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순간을 보았다. 누군가 내게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을 살린 행동이 올바른 행동이었냐고 묻는다면, '당연하다.'라는 대답에는 일말의 의구심도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가 죽음보다 무거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선택한 그의 결정을 아무것도 모른 채 막아선 것이 과연 '정답'이었냐고 묻는다면 어떨까. 내게는 이에 대한 답을 할 권리가 없다.


  의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 앞에서 도덕적 판단이나 법적 결정을 하지 않는다. 행여 그가 범죄자일 지라도, 의사로서는 당장 치료를 통해 살려야 할 환자일 뿐이다. 경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건 현장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다. 또한 모든 상황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경찰관은 주관적인 견해로 개인을 판단하기에 앞서, 객관적인 자세로 현장을 직시해야 한다. 당시 나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이 있는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