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by 포랑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미운 오리 새끼



우리는 매번 다른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우리가 야간 근무 때마다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 역시 그들을 만나고 온 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라에서 술을 일인당 하루 한 병으로 제한하는 법을 만들면 우리 일도 할 만하지 않을까요?”


“음… 아니야. 그건 절대 안 돼.”


“엥? 왜요? 선배님 술을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아니. 난 술 안 마셔도 상관없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도 당연히 구조조정이 되지 않겠어?”


매번 다른 현장을 마주하는 우리가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주취자들이다.







장마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야간 근무 때까지 쉬지 않고 퍼부어댔다. 장대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김없이 야간 근무를 알리는 신고가 들어왔다.


[아는 여성과 술을 마셨는데 감당이 안 된다 / 경찰 도움 요청 / 신고자는 남성]


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 입구에 신고자인 남성이 서 있었고, 그 옆에 술을 마셨는데 ‘감당이 안 되는’ 여성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예상과 달리 조용히 앉아 있는 여성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의외로 ‘감당이 될 만한 상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별 다른 경계심 없이 술에 취해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인 채 말을 건넸다.


“선생님? 경찰입니다. 괜찮으세요? 정신 좀 차려보…….”


[짝!]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맞아본 뺨따귀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의 기습 공격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 해졌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악어가 사냥을 하는 순간, 먹잇감은 자신이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당시 나는 악어가 있는 물가에 다가간 겁 없는 한 마리 오리 새끼였다.


여성은 비에 흠뻑 젖은 긴 생머리를 아래로 축 내리고 있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내 뺨을 가격했다. 현장 경찰관은 근무 중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하여 늘 일정한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덕분에 불의의 기습에 대한 반사 신경 또한 남다르다. 하지만 모든 먹잇감들이 기습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자연 생태계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내가 여성에게 뺨따귀를 맞은 것은 자연의 섭리였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여성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물론 전보다 한 발자국 물러난 상태로.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고개 좀 들어보세요.”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비에 젖은 긴 머리카락과 옷가지들에 덕지덕지 엉겨 붙은 토사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가방과 소지품들이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신고자인 남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얘가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해서 위로할 겸 한 잔 했어요. 둘 다 올해 스무 살이라 같이 술을 마신 건 처음인데… 이렇게 술이 약한지 몰랐죠. 그리고 제가 말을 걸기만 하면 자꾸 이유 없이 때려서 저도 어쩔 수 없이 신고했어요.”


남성은 여성이 원래 집은 먼 지역이고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데 정확한 주소는 모른다고 하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갑자기 남성이 방법을 찾은 듯 소리치며 말했다.


“맞다! 얘랑 친한 친구가 있는데 저도 아는 애거든요? 제가 전화 좀 해볼게요.”


그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 사이 우리는 여성을 상대로 몇 차례 말을 걸며 적절한 타이밍에 기습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잠깐만요! 신고자분! 어디 가시는 거예요!”


우리가 여성을 지켜보던 사이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던 남성은 택시를 타고 도망가 버렸다. 그가 범죄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은 엄연한 '도주'였다. 그는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여성에게 뺨을 맞았을 때도 별다른 감정에 동요가 없었지만, 남성의 행동에는 울화가 치밀어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 신고자분! 친구한테 전화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어디 가시는 겁니까?”


“죄송해요. 갑자기 엄마가 전화가 와서 저도 가봐야 해요. 제 친구 잘 좀 데려다주세요.”


바통은 넘겨졌다. 우리는 온전히 우리의 역량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여름이었지만 늦은 밤 오랜 시간 비를 맞은 여성은 추위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저체온 증상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을 수 있어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원은 위급상황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119구급대원의 현명한 판단에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119구급대원이 여성에게 말했다.


“선생님, 술을 너무 많이 드셨고 비도 맞았으니 병원에 들러서 잠깐 술 좀 깨고 가시죠.”


우리의 수차례의 대화 시도에도 반응이 없던 여성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 씨발! 시끄러워! 너네 다 뭔데? 좀 꺼져!”


119구급대원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 이송을 거절할 경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결국 또다시 여성과 우리만 남았다. 일단 여성을 지구대로 데리고 가 보호하기 위해 부축하려하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폭주가 시작됐다.


“놔! 놓으라고 이 개새끼들아! 너희 뭐야! 다 죽고 싶어? 이거 안 놔?”


어느새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비 오는 여름밤 광란의 버스킹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우리의 부축을 뿌리치고 다시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이 있다.


‘이럴 힘이 남아 있으면 길에 쓰러져 잠들지 말고 제발 집에 좀 갔으면…….’


우리는 부축은커녕 길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 여성이 행여나 머리를 땅에 찧을까 보호하기 바빴다. 그러던 중 여성은 갑자기 자신의 치마 아래로 양손을 집어넣더니 입고 있던 속옷을 훌러덩 벗어 길가에 던져버렸다. 그 후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던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살려주세요! 경찰이 저를 강간해요! 살려주세요!”


처음부터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광기어린 목소리로 웃으며 박수를 쳐댔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줄곧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이들 중 그 누구도 우리를, 아니, 우리가 아닌 비를 맞은 채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도와주려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부조리하고 잔인한 상황에도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서로가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에 있었다. 모두가 제삼자로서 이 무대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무대 위에 광대는 우리와 여성뿐이었지만, 비 오는 밤 우산이라는 페르소나로 서로의 존재를 감춘 이들은 모두 관객들이었다. 우리는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를 애써 외면한 채, 한시라도 빨리 무대의 막이 내리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선생님.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의거, 안전을 위해 경찰장구를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결국 내 뺨을 휘갈기던 ‘가냘픈’ 여성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궁지에 몰리자 용감해진 오리는 겁도 없이 악어의 턱에 재갈을 물렸다. 우리는 여성과 함께 지구대로 돌아왔다. 문득 시간을 보니 어느덧 순찰차 교대 시간이 다 되었다. 2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어이구, 무슨 비가 이렇게 오냐. 다들 비 많이 맞았나 보네?”


부팀장님은 흠뻑 젖은 우리 조를 보며 걱정스레 한 마디를 건네셨다. 상황관리 근무자에게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한 후, 여성의 보호조치를 부탁했다. 교대를 마치자마자 쉬지도 않고 다음 순찰차로 갈아타려는 우리를 보고 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신고 들어온 거 없는데 왜 그리 급해? 머리라도 말리고 가.”


“괜찮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우리는 지구대에 있던 모두에게 열정 가득한 모습을 각인시킨 채 ‘도주’했다. 다행히 이후 신고부터 액땜을 한 마냥 수월하게 처리했다. 다시 2시간의 순찰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여성은 없었다. 상황관리 근무자에게 별 일 없었는지 묻자 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얌전하던데요? 그냥 자다가 아버지한테 전화 와서 확인하고 택시 타고 귀가했어요. 방금 전에 아버지한테 잘 들어왔다고 전화 왔고요. 왜요? 현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퇴근 무렵이 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따사로운 여름의 아침 햇살이 머리 위로 내리쬐었다. 밤새 내린 장대비에 푹 젖어있던 새끼 오리들의 머리털도 어느새 바짝 말라있었다. 털이 다 마르고 나서 혹시나 하여 확인해 봤지만 우리는 분명 백조는 아니었다. 여전히 오리였다. 다행히도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도 없었다. 그렇게 미운 오리 새끼 두 마리는 뒤뚱거리며 지친 몸을 이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백조처럼 저 푸른 하늘을 한 번이라도 우아하게 날 수 있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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