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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Sep 18. 2020

깨지지 않는 얼음은 어루만져주면 녹는다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깨지지 않는 얼음은 어루만져주면 녹는다



  일주일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 일요일 아침. 하지만 지구대의 일요일 아침은 조금 다르다. 지구대의 일요일 아침 풍경을 이야기하려면 금요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제는 일반 명사가 되어버린 ‘불금’은 주중 업무에 지친 수많은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요일이다. 금요일이 불타는 요일이라면, 토요일은 활활 타오른 불꽃이 용광로 속에서 끓어 넘쳐 흥이 절정에 달하는 요일이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은 금요일과 토요일 밤이 뜨겁게 달궈놓은 용광로가 식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다.     








  토요일 밤의 식지 않은 열기가 일요일 아침이 되자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되어 머무르는 곳, 나의 일터인 지구대에 도착했다. 한 젊은 남성이 취기가 가시지 않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욕설을 퍼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간 근무자들은 밤샘 근무에 지쳐 허옇게 뜬 얼굴로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남성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한 명의 적(赤)과 다수의 백(白)의 팽팽한 대치 상황.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초월한 이질적 광경. 이에 대한 답은 주취 소란에 유독 관대한 대한민국 지구대라는 장소적 배경이었다.


  지구대에 남아있던 남성은 새벽에 술집에서 잠이 들어 있어 술이 깰 때까지 보호조치 차 데리고 온 것인데, 잠에서 깨자 왜 자신을 체포했냐며 항의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녹초가 된 토요일 야간근무 팀이 퇴근을 하고 바통은 일요일 주간 근무 팀인 우리에게 넘겨졌다.


  “너희가 날 데리고 왔다며! 그럼 수갑 채워서 깜빵에 집어넣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선생님, 저희가 보호조치 차 모시고 온 것이고 술이 깨셨으니 이제 귀가하셔도 됩니다.”


  남성의 언행은 우리가 늘 마주하는 여느 주취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유난히 앳되어 보이는 그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인적사항을 확인해보니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었다. 남성은 귀가를 권하는 우리에게 고성과 욕설로 응수하고 있었다. 관공서 주취소란으로 체포가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저 술의 호기를 빌린 사회 초년생의 실수라는 생각에 되도록 유연하게 처리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았다. 이를 대변하듯 팀장님께서 나서셨다.


  “자자, 젊은 친구. 술도 깬 것 같은데 집에 들어가셔야지. 부모님도 걱정하실 텐데.”


  “내가 집에 가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냐고! 당신이 우리 아빠야? 귀찮으니까 꺼지라고!”


  남성은 막무가내였다. 팀장님의 회유책이 먹히지 않자, 부팀장님이 강경책을 꺼내드셨다.


  “지금 이러시는 거 엄연한 관공서 주취소란이에요! 실수하지 마시고 어서 들어가세요.”


  “아, 그러면 수갑 채우시라고요! 짜증나게 하지 말고!”


  언쟁의 불씨는 유독 생명력이 강하다. 착화가 시작되면 오가는 대화 속에서 스스로 더 큰 연소물을 만들어 낸다. 순간의 감정 표현이 기름이 되고, 작은 불씨는 걷잡을 수 없는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른다. 화마(火魔)와 싸우는 건 소방관들이지만, 우리는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불길 속에서 싸우고 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자, 진정하시고, 일단 좀 앉아보세요. 귀가하셔도 된다고 하는데 이러는 이유가 뭔가요?”


  남성은 피의자 대기석에 드러누운 채 곁눈질로 나를 흘긋 보더니 다시 소리를 질렀다.


  “넌 또 뭔데? 집에 가든 말든 내 마음이지 왜 자꾸 지랄이냐고!”


  “뭔가 억울하거나 속상한 일이 있나요? 화만 내지 마시고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세요.”


  순간 남성은 고성과 욕설을 멈추고 풀린 눈에 힘을 주어가며 나와 눈을 마주치려 했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워 자리에 앉더니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순간 독기 빠진 남성의 모습을 보자 감정의 불길을 진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기세를 몰아 본격적인 카운셀링에 박차를 가하였다.


  “날씨도 좋은데 안에서 이러지 마시고 지구대 앞 쉼터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하시죠.”


  “후… 아저씨 담배 있어요?”


  남성은 못 이기는 척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상담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술이 깬 젊은 남성이 이렇게 까지 억지를 부리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접근이었다. 내 눈에는 남성의 주취소란이, 마치 불편한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해 칭얼거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커피를 타기 위해 탕비실 쪽으로 가며 흘끗 팀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팀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나는 믹스 커피 두 잔과 담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담배 한 개비를 받아 물고 몇 차례 뻐끔거리더니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남성은 비록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건넨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후 내뱉는 그의 모습은 파릇파릇한 스무 살 청년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 관찰은 습관이 된다. 물론 내가 어디 가서 ‘사람 좀 볼 줄 안다’고 말할 정도의 충분한 연륜과 직업적 경력을 갖추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오만방자한 생각을 할 만큼 나는 여물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찰이라는 직업을 업으로 삼다 보면 평범한 대화에서도 상대의 어조와 태도, 입버릇 따위를 예의 주시하게 되고, 작은 표정과 의미 없는 몸짓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이와 같은 태도가 반복되다보면 이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 속내를 경청하는 귀,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입을 갖추어 간다. 온전히 나의 것인 오감이 오롯이 상대를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숙련되면, 평범한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고 나의 수(手)를 펼쳐 원하는 페이스로 끌고 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겉으로 볼 때는 단순한 대화에 불과하지만, 결국 상대와 나의 협상 과정이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이 모든 것들은 결코 능력이 아니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적인 업무에서의 습관에 약간의 노력을 더한 결과일 뿐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직업병이다.    


  나는 남성의 의중을 간파해야 했다. 하지만 햇병아리 경찰관이었던 나는 상대의 심리를 꿰뚫어 볼 매서운 ‘눈’이나, 상대를 나의 포진 안으로 끌어들일 화려한 언변술을 갖춘 ‘입’ 따위는 없었다. 다만 부족한 나에게도 한 가지 무기는 있었다. 이는 바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귀’였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는 남성을 보면서도 조바심을 내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남성은 입에 물었던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나서야 천천히 운을 떼었다.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은 아니에요.”


  남성의 첫마디는 스스로 굳게 닫아 둔 마음의 문을 열어보려는 시도였다. 먼저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용기가 고마웠다. 나는 묻고 싶은 말이 수두룩했으나 서두르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그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빙하와도 같던 그의 마음이, 천천히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편찮으신 어머니와 어린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 자동차 정비에 관심이 있어 기술을 배우며 돈을 벌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에서 3개월 동안 일을 해왔다. 하지만 고용주는 교습 기간에는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 그로인해 어머니의 병원비는 물론, 가족들의 생활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참 동안 격해진 감정을 눈물과 함께 쏟아낸 그는, 입을 열자 오히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타까운 사연이었지만 결코 동정을 구하는 어투는 아니었다. 스무 살 또래들에 비해 버거울 법한 자신이 짊어진 삶에 무게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차분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타인의 삶에 무게가 더 무겁다 하여 자신의 삶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무게를, 나는 나의 무게를,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간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자신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느끼며,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 속에 머문 채 상념에 잠겼다.


  “제가 동생이니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도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그리고… 혹시 형 휴대폰 번호 알려주실 수 있어요? 그냥 가끔 힘들 때 연락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해서요.”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얼음은 어느 새 모두 녹아내렸다. 이야기를 마친 그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지구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깜짝 놀라 바로 뒤를 따라갔다. 그는 지구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깊이 허리를 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까 술에 취해 소란을 피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몇몇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그의 심경의 변화에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고,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들

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지구대에 있던 경찰관들 한 명 한 명 앞에 가서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동료 경찰관들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청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마지막으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경찰관님… 아니, 형한테도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해요. 저 열심히 살아볼게요.”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과 미소는 스무 살 청년의 순수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인사를 마친 그는 지구대 앞에 짙게 깔린 그림자를 뒤로한 채 화창한 일요일 아침의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아갔다.  








  그로부터 약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무렵, 선배와 순찰차를 타고 근무를 하던 중 모르는 번호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형, 잘 지내시죠? 저 일 다시 시작했어요. 첫 월급 받으면 제가 밥 한 끼 쏩니다 ㅋㅋㅋ]


  모르는 번호로 온 메시지였지만, 내용을 보고 이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 꼬리가 올라갔다.


  “야, 여친이냐? 근무 중에 빠져가지고. 좋아 죽네, 죽어.”


  옆에 있던 선배가 나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여친 아니에요.”


  “그럼 누군데 그렇게 문자 한 통에 실실거려?”


  나는 그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친한 동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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