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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Feb 28. 2022

네 잎 클로버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네 잎 클로버



  

  범죄가 아님에도 모든 경찰관들이 촉을 곤두세우는 사건이 있다. 바로 실종 사건이다. 실종 사건은 언제든지 강력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험이 생길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실종 사건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하는 경찰관의 모습이 그려지곤 하는데,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다. 실제 실종 사건은 접수 즉시 긴급(Code 1) 사건으로 분류되어 발생지 부근 지구대뿐만 아니라 경찰서 전체가 촉각을 곤두 세우고 일제 무전 전파가 이루어진다. 그만큼 실종 사건은 범죄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민감하게 대처한다. 이번 이야기는 범죄가 아니지만 범죄보다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실종 사건에 관한 이야기다.      





  



  동장군의 기세가 절정에 달한 1월 말, 치매노인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셨는데 귀가하지 않고 있다. 고령이시고 치매가 있다. 휴대폰은 없다.]


  나와 후배는 요구조자인 치매노인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자 신고자의 집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희가 아버님을 찾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아니, 그런 거 물어볼 시간에 빨리 찾아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요구조자의 경우 휴대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 위치추적이 불가능했다. 이 경우 가능한 요구조자에 대한 가능한 많은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성별, 연령, 인상착의는 물론이고 취미, 습벽, 주변인물, 말투와 성격까지 확인 가능한 모든 정보를 꼼꼼히 수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요구조자를 가장 잘 아는 가족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가족을 찾는 사람의 마음이 어디 그토록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겠는가. 애타는 심정의 그들은 대부분 우리가 바라보는 곳과는 다른 방향, 혹은 더 먼 곳을 보려 한다. 경찰관은 매번 반복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고 어떻게든 신고자를 안심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신고자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업무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신고자에게는 일생일대의 절망적인 상황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풋내기 경찰관이지만 몇 차례 경험한 실종 사건 수사 경험을 토대로 신고자를 설득했다. 


  “불안하신 심정 십분 이해합니다. 지금 다른 경찰관들은 주변을 수색중인데, 가능한 많은 정보를 파악해서 수색중인 경찰관들에게 전달해야 한시라도 빨리 아버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후우… 알겠어요. 아버님께서는 몇 년간 치매를 앓고 계세요. 다양한 증상이 특히 집에 계시는 걸 매우 답답해하세요. 그래서 불안하지만 외출을 시켜드리곤 합니다. 집 근처를 산책하시다가 한두 시간 안에 돌아오시곤 하는데 오늘처럼 오랜 시간 나가 계셨던 적은 없었어요.”


  “감사합니다. 외출하셨을 때 주로 어디로 가시나요? 혹시 주변에 만나시는 분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지금… 머릿속이 복잡하네요.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가족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불길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아쉽게도 수색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는 얻지 못했다. 어느덧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고 동장군의 기세가 한껏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실종 수사팀과 형사팀도 합류하여 실종자 수색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반가운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어디로 가셨을까? 무엇을 하러 가신 걸까? 왜 돌아오시지 않을까? 누군가와 같이 계신 걸까? 다친 곳은 없을까? 계속 걷고 계신 걸까?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신 건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릿속에는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해처럼 요구조자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도 점차 사그라지고 있었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생각에 잠겨있던 경찰관이 갑자기 무언가 촉을 느끼고 백지였던 판에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문제를 해결한다.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초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곤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합리화할 젊은 경찰관의 패기뿐이었다. 하지만 그따위 패기는 실종 사건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풍부한 경험, 폭넓은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냉철한 이성이었다. 초조해진 마음을 달래고자 원론적으로 접근해 보기로 하였다.


  ‘치매 노인을 찾으려면 치매 노인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나는 곧장 휴대폰으로 치매 노인의 특성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나를 흘끔거리는 후배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잠시 무시하기로 했다. 


  [치매노인의 특징]

  - 방금 했던 말과 행동을 금세 잊어버린다.

  - 동네 슈퍼에 물건을 사러 나왔다가 목적을 잊고 정처 없이 떠돈다.

  -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눈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치매노인의 특징은 가지각색이었다. 이러한 특징들의 나열만으로 수색에 도움이 될 만한 정형화된 정보를 도출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가지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 과거 강렬했던 기억, 직업과 관련된 습벽, 오래된 습관 등을 떠올리며 특정 행동을 반복한다. 

    예시) 오래전 죽은 반려견을 부르거나 전에 살던 집에 찾아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등의 행동.’

  

  나는 곧장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생님, 혹시 아버님께서 젊으셨을 때 무슨 일을 하셨나요?”


  “예? 갑자기 무슨… 아버님께서는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어요.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도시로 올라오셔서 저희가 모시고 살고 있고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아닙니다. 혹시 아버님께서 평소 농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던가요?”


  “특별히 이야기를 하신 건 없는데… 집에 있는 화분에 흙을 다 드러내신 적이 몇 번 있어요. 제가 뭐하시는 거냐고 여쭤보았더니 대뜸 밭을 갈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터무니없는 근거였지만, 나는 후배와 함께 근처에 있는 야트막한 동산들을 수색해 보기로 했다.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한 수사 방향이었음에도 싫은 내색 없이 묵묵히 도와준 후배가 고마웠다. 두어 곳의 동산을 수색해봤지만 성과는 없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며 손과 발에 감각이 점차 무뎌졌다. 춥고 해가 짧은 겨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선배님, 이게… 맞을까요?”


  후배는 몸이 지쳐가자 마음이 꺾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구조자가 야산에 있으리라는 확신만 있었어도 좀 더 힘을 내자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작은 손전등 불빛에 의존하며 계속해서 주변을 수색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나를 부르는 후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여기 이거… ….”


  후배의 손전등 불빛은 야산 구석진 곳에 놓인 어떤 커다란 물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썩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물건, 여행용 캐리어였다. 나 역시 영화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불길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땀으로 촉촉이 젖어있던 등골이 한순간에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캐리어를 열어보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제발… ….’


  다행히 이번에는 불길한 예감이 틀렸다. 후배를 보니 나와 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엇다. 그러던 중 우리의 손전등 빛이 비추는 방향에 또 다시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이번에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빛이 비추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쪼그려 앉아 나무 작대기로 땅을 헤집고 있었다.


  “헉, 헉… 저기… 어르신… …?”


  노인은 대답이 없었다. 왜소한 몸으로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 노인은 계속해서 나무 작대기로 땅만 헤집어 놓을 뿐이었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 노인의 얼굴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어! 맞아요! 찾았어요 선배님!”


  후배는 어린 시절 드넓은 동산에서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어린아이마냥 신이 나서 소리쳤다. 우리는 곧장 노인을 모시고 지구대로 돌아와 신고자인 아들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아버지! 도대체 어디 가셨던 거예요!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씨를 뿌려야 해. 이제 곧 봄이 올 거야. 그 전에 언 땅을 갈아야 해… ….”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우리의 두 손을 감싸 쥐고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얼어있던 우리의 손은, 따스한 그의 손과 뜨거운 그의 눈물에 조금씩 녹아내려갔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과 함께 산과 들을 노닐며 행운의 상징인 네 잎 클로버를 찾아다녔다. 푸른 들판 위로 황금빛 노을이 드리울 때까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풀밭을 헤집고 다니다 보면 결국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곤 했다. 큰 소리로 ‘찾았다!’라고 소리쳤을 때, 이미 주변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그토록 어렵게 발견한 네 잎 클로버.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느 책 한 페이지에 고이 넣어 두었다. 어떤 행운이 찾아올까 하는 설레는 마음과 함께.     


  당시 나의 실종자 수사는 민망할 정도로 근거 없는 수사였다. 결과가 좋았을 뿐, 과정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그야말로 무모한 노력 끝에 찾아온 행운이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았던가. 실종자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그 뜻을 하늘이 헤아려 주었는지도 모른다.     


  살아온 날 만큼이나 남아있는 내 경찰관으로서의 삶에, 이와 같은 행운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또 다른 행운이, 그 행운을 찾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소리 없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현장이라는 넓은 들판에서, 작은 네 잎 클로버 하나를 찾기 위해 묵묵히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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