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포랑이 Oct 05. 2019

18. 진짜 선배가 되는 법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이 전하는 당신이 잠든 사이의 이야기

[새벽 4시] 18. 진짜 선배가 되는 법   


    

    모든 조직 생활에는 상하관계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조직에서 상하관계의 형성은 일반적으로 입사 시기기에 따라 선배와 후배로 나뉘고, 경찰이나 군인과 같은 계급사회 조직에서는 계급에 따라 상하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물론 일반 회사도 입사 시기와 달리 직급에 따라 상하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로 선배(先輩)란,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예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뜻하고 물론 후배는 그 반대의 의미다. 선배와 후배의 관계는 사전적 의미대로 고정적인 관념을 뜻하지만, 실무상 선배가 후배보다 항상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이번 이야기는 나 역시 아직 누군가의 선배가 되기에는 한 참 모자란 경력이지만, 그래도 나보다 뒤늦게 경찰에 입직한 후배들과 함께하며 겪었던 선배보다 나은 후배들의 이야기다.  



"와! 경찰차다!"


    관내 주택가 주변 공원 놀이터를 순찰하고 있을 때였다. 꼬마 아이는 실제로 경찰차를 처음 보는지, 마치 만화에 나오는 로봇을 본 마냥 눈을 반짝이며 들떠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잠시 순찰차를 멈추고 창문을 살짝 내리고 물어보았다.


"안녕? 몇 살이니?"


    아이는 고사리 같은 왼손을 쫙 펴서 손가락 다섯 개를 만들고, 오른손으로는 엄지를 치켜올리며 외쳤다.


"여섯 살이요! 그런데 아저씨, 이거 폴리에요?"


    나는 아이의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당황했다. 겨우 여섯 살 아이가 벌써 이렇게 영어를 잘하다니. '역시 요즘 아이들의 영어 조기교육의 효과는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잘못 알고 있는 건 바로 잡아줘야 좋은 어른이지.


"응? 아니야, 폴리가 아니고 폴리스야. 폴! 리! 스!"


    나는 아이가 다시 따라 할 수 있게끔 일부러 한 글자씩 또박또박 천천히 발음해 주었다. 물론 내가 학창 시절 배웠던 전통 한국식 영어 발음으로. 곧잘 따라 할 줄 알았던 아이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외쳤다.


"아닌데! 폴리 맞는데!"


"폴리가 아니고, 폴리스야. 뒤에 '스'를 붙여야지. 따라 해 봐, 폴. 리. 스."


"폴리스 아닌데! 폴리인데! 폴리에요, 폴리!"


"폴리스라니까!"


"폴리에요!"


    한가한 평일 오후, 어느 주택가 공원 놀이터 앞. 30대 대한민국 경찰관과 6살 아이의 열띤 공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목에 핏대를 세운 채 '폴리'를 외치고 있었고, 경찰관도 어느덧 얼굴이 조금씩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순찰차 조수석에 앉아 치열한 논쟁을 한 동안 바라보고 있던 동료 경찰관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왜 신고 들어왔어? 아니잖아, 기다려봐. 아무리 꼬마 아이라도 잘못 알고 있는 건 제대로 알려줘야지."


"아니, 선배님. 그게 아니고… 이것 좀 보시라고요."


    동료 경찰관은 흥분해 있는 내게 조용히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건넸다. 휴대폰 화면에는 경찰차 모양을 한 로봇 이미지와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로보카 폴리] :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 구조대 '로보카 폴리'의 구조 이야기.


    머쓱해진 나는 다시 아이를 보며 어른스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건넸다.


"그래, 폴리 맞아. 멋지지?"


    아이는 치열한 논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폴리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전히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어린 고객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흥분해 있는 사건 관계자나 만취한 주취자는 여러 번 상대해 봤지만 이런 유형의 고객은 처음이었다. 강적이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한담? 진짜 폴리로 변신할 수도 없고… …'


    고민하고 있는 나와 달리 옆에 있던 동료는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 버렸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붉고 푸른빛이 영롱하게 빛나도록 순찰차 경광등 조도를 한 껏 올린 후, 서비스로 사이렌 소리까지 살짝 울렸다.


'위잉~'


    갑작스러운 사이렌 소리와 밝게 빛나는 경광등을 본 꼬마 고객은 잠시 흠칫 놀라더니 이내 처음 순찰차, 아니 폴리를 봤을 때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외쳤다.


"우와!"


    난처한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몰라 당황하는 나와는 달리, 옆에 있던 후배 동료 경찰관은 한 마디 말없이 응어리진 고객의 마음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그렇게 폴리는 꼬마 고객을 뒤로한 채 유유히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비록 로봇으로 변신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출동하기 위해.




 





    더운 여름날, 현장인 관내 어느 버스정류장에 도착해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께서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다. 하지만 얼굴은 엄동설한에 들판에 서 계신 듯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우리는 순찰차에서 내려 할머니를 만나 보았다.


"할머니, 어떻게 되신… …."


"아이고, 경찰 아저씨들. 나 좀 도와줘요. 내가 버스에다가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 그게 우리 딸이 여행 가서 사준 가방이야. 그게 얼마나 소중한 가방인데… 내가 노망이 났는지 그걸 놓고 내리다니… 아이고 어떻게 좀 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할머니는 우리가 112 신고 경위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전에 곤경에 처한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셨다. 사건 종별이 명확히 파악됐고, 해결 방법도 단순했다. 분실 접수.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일단 분실물에 대한 접수를 해야 해요. LOST112라는 경찰청 유실물 종합 안내 사이트가 있는데… …."


    매뉴얼에 따른 분실물 사건 접수 절차를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절실한 도움이 필요해서 112 신고를 했는데, 도착한 경찰관은 가방을 찾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도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주절주절 하고 있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그런 표정을 보며 그저 매뉴얼대로 일처리를 하려 했던 경솔한 나 자신을 반성한 후, 바로 추가적인 질문을 이어 나아갔다.


"할머니, 버스는 어디서 타고 어디서 내리신 거예요? 버스 번호는 기억하세요? 가방 안에는 뭐가 있었죠? 놓고 내리신지는 얼마나 지나셨어요?"


"그게, 내가 버스를 탄 곳이 우리 집 앞이고 나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나온 건데… 그게… …."


    속사포 같은 내 질문에 할머니는 또다시 말문이 막히셨다. 그때 함께 있던 후배가 순찰차 뒷 좌석 문을 열고 할머니를 모시며 말했다.


"할머니, 일단 날이 더우니 차에 타시고 천천히 이야기해 주세요."


    최근에 같이 한 조가 되어 근무하게 된 여성 경찰관 후배였다. 나는 그녀의 세심한 배려와 나보다 몇 수 위의 현장조치 모습을 보며 감탄하고 난 후 또다시 경솔하게 대처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우리는 할머니를 차에 모시고 버스 정류장 부근에 오래 정차할 수 없어 자리를 옮겼다. 그 사이 동료 경찰관은 편의점에 들러 요구르트 하나를 사서 할머니께 건네며 물었다.


"할머니, 많이 더우시죠? 이거 하나 드시고 저희가 여쭤보는 거에 대해 생각나시는 대로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이후 동료 경찰관은 할머니로부터 버스 탑승장소, 하차 장소, 하차시간, 가방 안 내용물, 버스 번호 등 할머니가 기억하시는 정보 중 우리가 할머니의 가방을 찾는데 도움이 될만한 질문들을 하였고 하나하나 답을 얻어가며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비록 후배이지만 나보다 뛰어난 조치에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아니 그녀는 할머니로부터 얻은 정보를 토대로 버스회사에 연락을 하여 버스기사의 개인 연락처를 확보하였고 이후 버스기사가 할머니의 가방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버스 노선에 따라 우리를 만나 할머니의 가방을 건네줄 장소를 선점하였다. 나는 그저 그녀가 시키는 대로 그 장소로 순찰차를 운전해 이동하였다. 버스기사로부터 할머니의 가방을 건네받아 혹시나 분실한 물건이 없는지 가방 안 내용물까지 꼼꼼히 확인하였다.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께 다시 말을 건넸다.


"가방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그럼 조심히 가세요."


    다시 순찰차에 오르는 나와는 달리 동료 경찰관은 할머니와 몇 마디를 더 나누었다. 그리고 차에 타지 않고 창문이 열린 조수석으로 내게 말했다.


"선배님, 할머니 목적지가 이 부근이시래요. 날도 덥고 버스는 이미 갔으니 특별한 112 신고가 없다면 저희가 모셔다 드려도 되지 않을까요?"


"어… 그, 그래. 그러자. 아니, 그래야지."


"할머니, 타세요. 저희가 목적지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이후 할머니는 목적지에 도착해 동료 경찰관의 양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셨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여성이 도넛 한 박스를 들고 지역경찰관서를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저희 어머니가 얼마 전에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리셨는데, 여기 계시는 경찰관이 찾아주시고 친절하게 목적지까지 모셔다 주셨다고 해서 제가 감사 인사라도 드리려고 왔어요. 성함은 잘 모르겠고,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어머니 말로는 귀엽고 이쁘장하게 생긴 여성 경찰관분이라고… …."


    친절하고, 섬세하고, 상냥한 이름 모를 어느 여성 경찰관.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나는 없었다. 당연하다. 당시 할머니가 만난 고마운 경찰관은 그녀뿐이었다. 혹시 서운하냐고 묻는다면 천만의 말씀. 전혀 서운할 것이 없을 만큼 당시 나는 순찰차 운전 외에 한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런 동료 경찰관이 고마웠다. 처음 마주한 상황에서 선배로서 내가 미처 착안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세심하게 챙겨가며 더 나은 조치를 한 후배 동료 경찰관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동료 후배 경찰관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에는 남성 두 명뿐이 었으나, 상황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날이 유난히 술을 많이 마신 날인지, 항상 술을 마시면 만취할 때까지 마시는지는 모르지만 그 날 남성은 거하게 취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음주운전을 하지 않고 대리기사를 불러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그는 대리기사가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에 왔다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고, 급기야 돌아가려는 대리기사를 몸으로 막으며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대리기사는 우리에게 정확히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회사를 통해 그가 목적지 주소를 말했던 녹음된 전화통화 음성을 들려주었다. 현장은 그가 말한 장소, 그의 거주지로 추정되는 아파트 입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사유인지 남성은 이곳은 목적지도, 자기 집도 아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리기사와 우리가 그렇다면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었지만 그는 이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잘못된 곳으로 자신을 납치해 온(그의 표현에 의하면) 대리기사를 힐난하며 처벌을 요구했다.


"선생님, 저희가 선생님께서 대리기사를 부르실 때 말씀하신 전화통화 녹음 기록을 들었는데 여기가 맞아요. 그리고 저희에게 건네주신 신분증 상 선생님 주소지도 여기가 맞는데 왜 자꾸 아니라고 하시는 건가요?"


"아니라고! 그거 전화… 뭐냐, 그거 녹음? 그거 조작이야! 내가 아니라고!"


"그럼 목적지가 어디신데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해? 저 새끼가 나 납치했다니까! 저 새끼 체포하라고 당장!"


"자자, 진정하시고 가족분 연락처 있으면 좀 알려줘 보세요. 저희가 연락해볼게요."


"야, 이 짭새 새끼들아 체포 안 해? 너희도 한 통속이지? 어? 저 새끼한테 돈 먹었지?"


"말씀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모욕죄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날 체포한다고? 해봐! 해봐 이 새끼야!"


    남성은 마치 소싸움을 하는 황소처럼 머리로 내 가슴을 몇 차례 들이 받았다. 나는 그런 그의 어깨를 막아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더 이상 접근하지 마십시오. 지속적인 폭언과 유형력 행사 시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하겠습니다."


"해보라고 이 새끼야!"


    그는 급기야 내 목을 손으로 한 차례 밀친 후, 또다시 머리를 들이밀며 접근하였다. 나는 빠르게 무전기로 지원 요청을 하였다. 이후 남성은 도착한 지원 경찰관에게도 똑같이 폭언과 손찌검을 하더니 길바닥에 드러누웠고, 일으키려는 아버지뻘 되는 경찰관의 안면부를 발로 걷어찼다.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 시간부로 공무집행방해죄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고 변명의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남성에게 피의자 제반 권리를 고지한 후 공무집행방해죄로 수갑을 채우기 위해 결국 유형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남성은 덩치가 크거나 힘이 센 것은 아니었지만, 술에 취해 되는대로 팔과 다리를 휘젓고 있어 안전하게 수갑을 채우기가 영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세 명의 경찰관이 달려들어 몇 분간의 사투 끝에 수갑을 채워 순찰차에 태웠다. 그런데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문득 옆에 있던 동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임 경찰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당시 상황에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신임으로서 자신이 나서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선배들이 수갑을 채우는 상황에 합류하지 않았다.


    지역경찰관서에서 사건 서류 작성을 마치고 피혐의자의 신병을 경찰서 형사과로 인계한 후 다시 순찰차에 올랐다.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 휴식의 보상이 주어진 것인지, 다행히 이후 이렇다 할 112신고는 없었다. 피혐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언제 그랬는지도 모를 작은 상처들이 손과 팔 여기저기에 가득했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함께 뒹굴다 보니 제복 여기저기가 흙투성이었다. 반면 옆에 있는 후배 동료는 다친 곳도 없었고 제복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하여 날 세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가만히 있었어?"


"예?"


"선배들 수갑 채울 때 왜 멀뚱멀뚱 서 있었냐고!"


"아, 저… 그게… 전 그때 다른 걸 하느라… …."


"다른 거? 다른 거 뭐? 그 순간에 다른 거 할 겨를이… 후, 됐다."


    기가 막혔다. 선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데 다른 걸 한다니. 그것도 가장 빠릿빠릿해야 할 때인 신임경찰관이! 더 이상 물어보고 싶은 의욕도, 기력도 없어 입을 닫았다. 평소 좋게 보았던 후배 동료였기에, 그 순간 실망감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순찰차 안에서 어색한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피혐의자의 신병을 인계한 경찰서 형사과의 담당 형사로부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아까 사건 인계받은 형사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피혐의자가 지금 경찰관 폭행이나 욕설한 사실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데 범죄사실이나 수사보고 외에 채증 자료(경찰관이 현장 상황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한 기록)가 있을까요?"


"아, 죄송한데 당시 현장이 너무 경황이 없어서 미처 채증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능하면 현장에 CCTV가 있는지 다시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아마 CCTV가 없을 텐데… …. 일단 현장으로 다시 가 보겠습니다."


    모든 사건 상황에서 항상 채증자료나 기타 증거자료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 서류 일체에 당시의 정황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였고, 추가로 피혐의자에게 폭행당한 경찰관들의 상흔 등에 대해 사진을 첨부하였다. 하지만 피혐의자가 범죄사실 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고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형사 입장에서 명확한 입증자료 없이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디 현장에 CCTV가 있길 바라며 다시 사건 현장으로 이동하려는 때, 옆에 있던 후배 동료 경찰관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게 건넸다.


"선배님, 이거… …."


    그의 휴대폰에는 피혐의자가 최초 내 가슴팍을 머리로 들이받고, 손으로 목을 치고, 욕설을 하며, 다른 선배 경찰관의 안면부에 발길질을 하는 모습 피의 사실에 대한 모습들이 동영상으로 선명하게 촬영되어 있었다. 나는 그 영상을 형사과로 가져갔다. 다시 도착한 형사과 사무실에서 피혐의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을 부인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담당 형사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양손으로 관자놀이 부분을 주무르고 있었다. 곤혹스러워하는 담당 형사에게 동료 경찰관이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이 있었습니다."


    담당 형사는 약 20분가량의 영상을 다 보고 난 후 한층 환해진 얼굴로 말했다.


"이 정도면 뭐 더 이상 부인도 못하겠네요. 감사합니다."


    담당 형사에게 영상을 건네 준 후 우리는 다시 순찰차에 올랐다.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계속됐다. 하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온도였다. 다소 뻘쭘한 상황에 처한 나는 딱히 이렇다 할 말문을 열지 못하고 어색하게 휴대전화기를 만지작 거리다가 조끼 안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휴대전화기를 넣는 곳에 같이 보관하던 지역경찰수첩이 보이지 않았다. 수첩 안에는 사건과 관계된 내용들 뿐만 아니라 각종 사건 관계자들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어 분실 시 보안상 위험이 다분했다. 당황한 나는 조끼와 바지 주머니 이곳저곳을 더듬거렸다. 하지만 작은 수첩은 온데간데 보이지 않았다. 그때 동료 경찰관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저, 선배님 이거… 아까 체포하실 때 떨어뜨리셔서… …."


    내 근무수첩이었다. 체포 과정에서 현장 채증을 하느라 빠져있던 후배 동료에게 아무것도 모른 채 큰 소리를 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못해 한심한 처지였는데, 길바닥에 흘린 내 수첩까지 챙겨준 그를 보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머리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야간 근무였고 어두운 순찰차 안이라 상기된 내 얼굴이 들키지 않았음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아까 전 성질을 내던 때와는 달리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아까 잘 알지도 못하고 쓴소리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후배 동료 경찰관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하게 내 인사와 사과를 받아주었다. 얼굴 표정 어디에도 나를 원망하는 표정이 없었다. 사실 신임경찰관 시절 선배로부터 질책을 받을 때 억울한 상황이 많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그가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했는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그는 우리가 피혐의자에게만 집중하고 있던 당시 신고자였던 대리기사에게 사후조치에 대해 설명하고 그를 케어했으며, 피혐의자의 차 키를 건네받아 담당 형사에게 인계하였다고 했다. 완벽한 현장조치였다. 분명 나는 신임경찰관 시절, 그가 했던 것처럼 완벽하게 일처리를 해내지 못했다. 그의 꼼꼼한 현장조치에 놀랐지만, 선배로서 내가 그를 존중함을 넘어서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게 했던 건 그의 의연함이었다. 그는 약속되지 않은 급박한 현장 상황에서 스스로 명확한 업무 분담에 따른 조치를 하였고, 자신의 책무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여 선배들이 놓친 현장 조치 사항들을 완벽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분명 신임경찰관으로서 기대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코 이에 대해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이거나, 나의 경솔함 혹은 선배들이 놓친 부분들을 자신이 커버했다는 우월감에 젖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한번 자신이 놓친 부분이 없는지, 그 상황에서 어떤 부분들을 더 신경 써야 했는지 묻는 모습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가 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최근 청소년들이 쓰는 은어는 그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직관적인 해석이 어려워 뜻 조차 알기 어렵다. 이런 은어들 중 때로는 표준어보다 그 의미가 확실하게 다가오는 은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쓰고 있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은어가 있다. 바로 '꼰대'라는 은어다. 꼰대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말 끝마다, '나 때는 말이야'를 붙인다거나, 조언을 빙자한 충고, 경험을 포장한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면 된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자신을 꼰대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자신은 스스로를 꼰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배와 꼰대는 같지만 다르다. 상대방보다 먼저 조직 생활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 선배와 꼰대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선배는 후배를 이끌어 주면서 함께 발맞추어 걷는다. 하지만 꼰대는 항상 후배보다 앞서 걷는다. 그러다 보니 앞 길을 먼저 볼 수는 있을지언정, 뒤에서 걷는 후배의 걸음걸이를 보지 못한다. 나의 후배가 내가 먼저 밟은 길을 따라 걷고 있는지, 얼마만큼의 속도와 보폭으로 걸어오고 있는지 헤아리지 못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선배가 되기에는 이 조직에서 한참 모자란 경력이다. 하지만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의 차이가 나는 조직원들이 있고 분명 나는 그들의 선배다. 내가 그들보다 현장조치가 우수하다거나, 사건 서류를 잘 정리해서 선배가 된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보다 조금 일찍 경찰이라는 조직문화를 먼저 경험했기에 내 노력 없이 선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선배는 자연스럽게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후배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그들이 성장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 선배의 책무다. 또한, 선배라고 하여 무조건 후배보다 더 나은 모습일 필요도 없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생각, 다른 인격을 가진 후배로부터 선배인 내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점 또한 무궁무진하다. 모르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모르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는 아집(我執)이다.


    정리해보자면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선배란, 아는 것은 후배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모르는 것은 감추려 하지 말고 새롭게 터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상대가 자신보다 후배라고 하더라도 배워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겸허히 수용하여 훗날 이를 더 큰 가치로 만들어 되돌려 줌으로써 받았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포부(抱負)와 아량(雅量)을 가진 사람. 그것이 진짜 선배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조직의 선배라는 위치를 재조명해본다면, 배움에 보다 몰두해야 하는 것은 후배가 아닌 선배일지도 모른다. 더 나은 선배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후배들을 보고, 후배들에게 들으며, 후배들로부터 배운다. 그들은 경찰 후배가 아닌 나와는 다른, 나보다 나은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경찰관이다. 



서로간에 소통을 위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입니다.

작가에게, 혹은 구독자분들간에 언제든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브런치 <새벽 4시> 구독자분들, 경찰 가족분들, 경찰 수험생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https://open.kakao.com/o/gYbTF0Bb


참여 코드 : 2019

매거진의 이전글 17. 빛과 어둠(下)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