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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푸드레터] 아이스크림 계절 - 빙과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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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직원공제회 전문가 칼럼 시리즈로
매달 <이주현의 푸드레터>를 연재합니다.

이번달 주제는 "빙과류 이야기"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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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의 푸드 레터 7월호>

아이스크림의 계절, 얼음과자부터 시작된 빙과류 이야기


차가운 아이스크림 하나가 행복을 선사하는 계절이다. 입안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그 찰나에 우리는 짧고도 긴 황홀함을 만끽한다. 최근 디저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아이스크림은 이제 여름에만 즐기는 간식을 넘어섰다. 크로플, 떡, 쿠키 등의 디저트 위에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이색 메뉴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다. 화룡점정으로 아이스크림을 올린 이 디저트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맛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삭아삭 부서지는 청량한 얼음 알갱이가 가득한 질감에서부터 우유가 듬뿍 들어간 부드러운 형태까지, 아이스크림은 천의 얼굴로 변신하며 사시사철 우리의 식생활에 유쾌함을 더해주고 있다. 과연 아이스크림은 언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을까?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에 담긴 거대한 시대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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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아이스크림 형태는 얼음에 약간의 향신료를 곁들여 먹는 빙과류에서 시작하였다. 출발점은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빙과류 형태에서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다양한 형태의 아이스크림까지 진화해왔다. 간혹 아이스크림은 냉동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역사가 짧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빙과류’라는 커다란 영역으로 살펴보면 아이스크림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긴 빙과류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얼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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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얼음을 먹기 시작했을까?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 시대부터 얼음 창고인 ‘장빙고’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백제 유적지에서는 빙고를 놓았던 장소인 빙고 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얼음을 먹기 시작한 기록을 이 시기부터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얼음은 무척 귀한 존재여서 지금처럼 일상 여러 곳에서 쓰이지 못했다. 이후 고려 시대에 들어서야 무더운 여름에 얼음을 넣은 시원한 꿀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얼음을 잘게 부수어 화채로 만들며 본격적으로 얼음을 넣은 여러 음식을 즐겼다.


빙과류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점은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이다. 1900년부터 경성 시내에는 ‘빙수점’이라는 가게가 하나둘씩 등장한다. 빙수라고 해봤자 지금의 화려한 빙수는 어림도 없다. 그 당시에는 얼음을 갈아 설탕과 우유를 곁들인 단순한 간식 정도였다. 빙수점은 빙수기와 냉동고만 있으면 바로 창업이 가능하였으므로 많은 조선인들이 빙수 사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1940년대부터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설탕, 향신료의 구입이 어려워지면서 빙수 사업은 침체기를 맞이한다.


한국전쟁의 여파가 희미해질 즈음에 1960년대부터는 길거리에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아이스께끼’ 장수의 등장이다. 한국의 빙과시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시점이기도 하다. ‘아이스께끼’는 아이스케이크(ice-cake)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되었다. 그 당시 우리말로는 ‘얼음과자’ 또는 ‘물뼈다귀’라고 불리기도 했다.


원색적인 색소를 탄 물에 설탕만 넣고 얼린 이 얼음덩어리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동네에 리어카를 끈 ‘께끼 장수’가 등장하면 아이들은 재빨리 집에서 고무신, 녹슨 그릇 등을 갖고 나와 아이스께끼와 교환하였다. 그 시대를 거쳐간 사람들의 추억 속에는 이 단맛 나는 얼음덩어리가 하나씩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아이스께끼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빙과통을 어깨에 짊어 메고 다녔던 께끼 장수는 아예 소규모 공장을 차리기 시작한다. 생산 과정이 체계화되면서 아이스께끼의 메뉴도 덩달아 진화한 것이다. 또한 색소, 설탕으로 이루어진 단순했던 조합에 단팥, 우유 등을 혼합하며 맛의 다양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런 적극적인 시도의 흐름 속에서 1962년에 공표된 식품위생법에 따라 안타깝게도 무허가 아이스께끼 공장은 문을 닫게 되었다.


어려웠던 시대와 함께 성장한 아이스크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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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삼강’은 전설적인 아이스크림 제품을 탄생시킨다. 일명 ‘삼강 하드’이다. 삼강은 국내 최초로 위생 설비 시스템을 갖춘 자동화 아이스크림 공장을 설립했다. 그리고 하드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삼강 하드’를 출시하였는데, 이 전의 단순한 아이스께끼만 맛보던 소비자들은 풍성하고 세련된 맛의 삼강 하드에 폭발적으로 열광한다. ‘하드’라는 단어가 막대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자리 잡은 것만 봐도 그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후 삼강 업체가 주름 잡고 있던 아이스크림 시장에 ‘해태’가 새롭게 등장한다. 해태는 그 당시 제과업으로 성공 궤도를 달리고 있었다. 동시에 아이스크림 제조기, 포장기를 갖춘 대대적인 공장을 설립하며 ‘부라보콘’, ‘훼미리 아이스크림’, ‘누가바’등 지금도 국민 아이스크림으로 사랑받는 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특히 부라보콘은 2023년 기준으로 53살이 넘어가는 대표 장수 아이스크림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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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삼강과 해태가 박빙으로 아이스크림 시장을 주름 잡을 때 등장한 업체가 ‘대일유업’이다. 대일유업은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내세우며 차별화 전략을 펼쳤다. 생우유를 넣은 아이스크림인 ‘투게더’와 ‘비비빅’을 출시하며 그 당시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해태를 공격적으로 추격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당시에는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거듭하면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시기였다. 이런 뜨거운 시장 경제 흐름에 힘입어 식품업계에서도 이전에 없던 신제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때 출시된 제품들은 지금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롱런 히트(Long-run Hit) 제품’으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스크림 업계의 메이저 회사인 삼강, 해태, 대일의 경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뜨겁게 과열됐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은 75년부터 대대적인 광고전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아이스크림 광고는 당대 가장 주가가 높은 스타들이 차지했다. 지금도 아이스크림 브랜드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장수 제품의 광고를 맡았던 추억의 스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보면 조금 유치할 수 있으나, 이제는 중년 배우가 된 스타들의 풋풋하고 어린 시절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의 고급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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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부터는 아이스크림 시장에 프리미엄 바람이 불어닥친다. 독특한 이름으로 1986년 명동에 1호점을 개업한 ‘배스킨라빈스’가 그 주인공이다. 호불호 논란의 원조 격인 민트 초코 등 생소한 맛과 예측할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히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혁신적인 맛이었다. 이후 기존 하드 아이스크림의 서너 배에 달하는 비싼 가격의 ‘하겐다즈’와 롯데제과에서 만든 브랜드 ‘나뚜루’가 편의점 아이스크림 코너에 진입했다. 더 이상 아이스크림이 저렴한 간식이 아니라 값비싼 고급 메뉴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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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2000년대 중반부터는 저지방, 저칼로리의 이점을 강조한 요거트 아이스크림이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쫀득쫀득한 질감의 젤라또 아이스크림 또한 신선한 재료를 직접 배합해 만들어주는 수제 아이스크림의 매력을 전파했다. 불량식품의 인식이 강했던 아이스크림이 맛과 건강을 모두 만족시킨 웰빙 디저트로 변화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아이스크림의 소비자층이 확대되면서, 더욱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아이스크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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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자로 불리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아이스크림 시장은 가파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어쩌면 시대의 흐름과 함께 진화해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먹거리는 그 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대변한다. 그렇기에 거센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굳건히 국민 아이스크림을 자리를 잡고 지키고 있는 제품은 맛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다. 우리는 이 작은 아이스크림을 통해서 그 시대의 추억을 음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아이스크림은 급변하는 시대 문화를 반영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이 시원하고 달콤한 것이 또 어떤 즐거움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지, 벌써부터 여름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 본 칼럼은 한국교직원공제회 포스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s://naver.me/Gpeqx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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