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현의 푸드레터] ‘뜨겁거나 차갑거나’ 보양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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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직원공제회 전문가 칼럼 시리즈로
매달 <이주현의 푸드레터>를 연재합니다.

이번달 주제는 "보양식 열전"입니다.
즐겁게 읽어주세요 :)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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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현의 푸드 레터 8월호>

'뜨겁거나 차갑거나' 한국인의 보양식 열전

‘삼복지간(三伏之間)에는 입술에 붙은 밥알도 무겁다’는 옛말이 있다. 그만큼 삼복더위에는 몸의 기력이 쇠해져 입술에 붙은 밥알 떼어내기도 힘들다는 뜻이다. 복날은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 사이의 절기이다. 우리 선조들은 무더운 이 시기에 바쁜 농업 일로 피로가 쉽게 쌓였기 때문에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을 찾아먹곤 했다.


지금도 이맘때면 한국인의 밥상에는 보양식이 빠지지 않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정신까지 홀랑 빼앗아가는 이 시기에 우리의 선택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뜨거운 보양식을 먹거나 차가운 보양식을 먹거나. 대개 뜨거운 보양식으로는 삼계탕, 장어, 백숙 등이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복날을 기점으로 마치 약을 섭취하듯 부지런히 보양식 맛집을 찾아다닌다. 반면,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뜨거운 음식을 무리하게 먹는 것보다는 차가운 음식으로 열을 식히는 것이 좋다. 대표적으로 냉면, 콩국수 등의 시원한 면 요리가 있다. 모두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음식들이지만 무더위가 작렬하는 이 계절에 더욱 빛을 발하는 대표 보양식 두 가지를 살펴보자.



1. 이열치열 땀 흘리며 먹는 보양식 <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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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닭 요리는 많다. 하지만 한국의 삼계탕처럼 닭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물을 넣고 끓인 요리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닭을 통째로 조리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삼계탕에는 어려운 요리 난이도를 뛰어넘는 한국 전통문화 개념인 ‘식치(食治)’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식치’란 약으로 병을 다스리기 전에 음식으로 몸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몸에 좋은 식재료 인삼, 대추 등을 넣고 푹 끓여 낸 삼계탕은 요리를 넘어 하나의 약으로 여겨져 왔다. 무더운 여름 뜨거운 삼계탕을 먹는 것 역시 ‘식치’와 함께 이열치열 정신을 담은 한국 문화의 정수라고 볼 수 있다.



“삼계탕, 원래 이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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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은 사극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 역사가 굉장히 유구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삼계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청동기 시대부터 닭을 사육하기 시작했으나 삼계탕에 대한 기록은 딱히 찾을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 시절에 멀겋게 끓인 백숙이나 닭 국물에 인삼가루를 첨가한 ‘닭국’이 삼계탕의 최초의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삼계탕에 관련하여 몇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삼계탕의 이름이다. 초창기에는 삼계탕이 아닌 ‘계삼탕’으로 불렸는데,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이 부재료였기 때문이었다. 계삼탕이 점차 사랑을 받으면서 196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었다. 이 때부터 몸에 좋은 인삼을 강조하고자 ‘삼계탕’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삼계탕 속의 대추 먹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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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쟁 중 하나는 삼계탕에 들어간 대추이다. 새빨간 대추 몇 알은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삼계탕에 꼭 들어가는 필수 식재료이다. 하지만 이 대추가 삼계탕에 들어간 재료의 독성을 모두 흡수한다는 속설이 돌았다. 그래서 삼계탕을 먹을 때 대추를 골라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대추가 약재의 기운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 것은 맞지만, 몸에 이로운 성분들이라 먹어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이보다는 인삼은 열이 많은 식재료이기 때문에 평소에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주의하며 삼계탕을 섭취해야 한다.


최근 외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음식 중에 삼계탕이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식문화가 그대로 담긴 삼계탕이 외국에도 널리 퍼지면서 해외의 여러 항공사에서 기내식으로 제공되고 있다.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까지 우리의 전통 음식 삼계탕이 사계절 내내 사랑받기를 염원해 본다.



2. 속까지 시원해지는 차가운 보양식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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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냉면은 무더위에 잃어버린 입맛까지 찾아주는 여름 대표 보양식이다. 냉면은 조선시대부터 그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사실 여름보다는 주로 겨울철에 먹는 음식이었다. 과거에는 겨울에 아궁이에 불을 때서 추위를 이겨내었다. 그때 방바닥이 쉽게 뜨거워지는 바람에 열기를 식히기 위해 시원한 냉면을 즐겨 먹곤 했다. 냉면 육수로 사용하던 동치미가 가장 맛있게 익는 계절 역시 겨울이었다. 삼계탕의 ‘이열치열’에 이어 냉면은 ‘이냉치냉(以冷治冷)’ 정신을 담은 것이 아닐까. 현대 시대에 이르러 사계절 내내 온도 조절이 쉬워지면서 냉면은 추운 겨울에서 무더운 여름에 즐기는 별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시대의 변천사를 담은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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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중에서도 단연코 화제가 되는 것은 ‘평양냉면’이다. 슴슴한 맛의 맑은 육수에 메밀 함량이 높아 툭툭 끊기는 식감은 일명 ‘평냉 매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평안도식 냉면의 면 재료가 메밀인 것은 기후 영향이 크다. 밀이 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메밀 함량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6.25전쟁을 기점으로 상당수의 북쪽 사람들이 월남하였고, 이에 냉면은 자연스럽게 남쪽 사람들 취향에 따라 변형되었다. 메밀 함량이 줄어듦에 따라 툭툭 끊기는 식감 대신에 쫄깃쫄깃한 면발이 사랑받게 되었다. 냉면의 육수 역시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변천사를 거쳤다. 처음에는 동치미 육수가 기본이었지만,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닭고기나 꿩고기로 육수를 내기도 하였다. 지금은 냉면 하면 두 가지 육수를 동시에 떠올리며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다.

“외국인은 놀라는 한국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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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그릇째 잡고 차가운 육수를 시원하게 마시는 냉면을 상상하면 무더위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외국인들은 냉면을 보고 의아함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치맥, 갈비찜, 비빔밥 등 외국인에게 사랑받는 많은 한국 음식 중에서 냉면은 왜 비선호 음식이 된 걸까? 그 이유는 차가운 면 요리라는 점에 있다. 외국인들에게 면 요리라 하면 따듯한 파스타, 뜨거운 라멘 등 온도가 높은 요리들이 익숙할 것이다. 그들에게 면을 차갑게 하고, 살얼음까지 띄운 육수를 붓는 냉면은 놀라움을 넘어 문화 충격으로 다가온다는 반응이다. 특히 유럽의 식문화를 살펴보면 살얼음이 들어간 음식은 아이스크림 외에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사랑받는 여름 별미 음식이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차가운 면 요리를 먹는 것은 한국 식문화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 기반한 보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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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삼계탕, 냉면 등의 여름 대표 보양식은 한국 전통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 외에도 예로부터 보양식은 회복이 필요한 환자, 영양 보충이 필요한 산모 등을 위해 필수적으로 마련되었다. 특히 일부 음식은 특정 축제나 절기와 관련이 있어 한국 문화에서 음식과 건강이 얼마나 긴밀하게 이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무더운 계절,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으로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한국교직원공제회 포스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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