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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Jul 04. 2021

개발자님, 제 힘듦도 피처플래그로 잠깐 꺼주세요.

PO의 감정표현은 팀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글의 BGM으로는 이하이의 한숨을 권합니다.

남들 눈엔 힘 빠지는 한숨으로 보일 진 몰라도
나는 알고 있죠
작은 한숨 내뱉기도 어려운 하루를 보냈단 걸
- 이하이 한숨 가사 中





 스테이시, 김긍정이잖아!

최근 한 동료가 작은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스테이시, 김긍정이잖아!"라는 말과 함께 어깨를 토닥이고 갔다. '김긍정'은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내가 너무 부정적이라 긍정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주신 예명이다. 이 전 포스팅에서 스스로를 '쵸파'에 비유했듯, 나는 본래 눈물도 걱정도 많으며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성격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4년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는 일에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웃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그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내 일만, 내 성과만 내면 되었다. 소속감 없이 돈과 시간에 칼 같은 삶이란 그렇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한다는 건 REC가 꺼지지 않는 다큐멘터리 같달까? 출근부터 퇴근까지 하루에 기본 8시간, 어쩔 땐 12시간을 함께하며 나도 모르게 내 감정을 많이 드러내곤 했다. 처음엔 긴장감을 놓지 않으려 애를 썼는데, 사람도 업무도 익숙해지다 보니 또 회사가 당시에는 평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다 보니 스스로 감정표현에 안일해지는 아찔한 순간들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6월을 회고해 보자면 일을 하며 한숨을 쉬었고, 눈물을 보였다. 꽤나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참 부끄럽게도 그 감정의 파도들은 내가 스스로 PO로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오는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부터 길러라"

처음에는 내색을 안 했다. 되려 당당했다. 모른다 어쩔래 ㄴʕʘ‿ʘʔㄱ 그래서 인턴으로 왔잖아!

인턴 기간 중 2개월은 고객의 유입부터 결제까지의 퍼널을 담당하는 셀에서 기획 보조 업무를 맡았다. 타사 레퍼런스를 조사하고, 우리 제품과 고객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잘 몰라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되는 업무들이었다. 그 과정에서의 힘듦은 되려 배움의 즐거움으로 느껴졌고, 밤을 새워도 입꼬리가 씰룩거리며 행복했다.


유명한 최우식 인턴 짤. 스테이시의 하루는 언제 끝날까요?

 

남은 1개월은 조직이 개편되면서 대부분의 업무를 내가 맡게 되었다. 우리 팀의 디자이너나 개발자와만 소통하다가 BO, CXD, MD, 마케터, 에디터, PD, DA, QA 등 다양한 직무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B2B라는 새로운 사업과 고객도 알아가야 했다. 이해관계자가 많아질수록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무언갈 빠르게 결정하기 힘겨워졌고, 매일 회의가 많다 보니 개인 업무를 할 시간이 부족해 야근하는 빈도와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부터 길러라"는 미생의 명대사처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몸뚱이가 받쳐주질 않으니 너무나도 힘들었고, 점점 예민해졌다. 그래서 처음엔 이 힘듦을 내가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개발자들에게 많이 기댔다. 힘들다, 어렵다, 모르겠다, 이거 내가 결정해도 되는 걸까, 나 더 이상 못하겠다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인 말들을 했다. ㅎㅅㅎ. 그리고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확실한 문제 해결 대신 쉽고 빠른 꼼수를 택하면 벌어지는 일.txt

최근 정말 작은 위기를 대응해야 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담당 CXD와 이야기를 끝낸 뒤 핫픽스를 위해 QA팀을 찾아갔다. 그런데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리소스를 고려해 내가 생각한 방법 대신 다른 방법을 제안해주셨다. 그래서 우선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개발자 동료와 간단하게 테스트를 진행해보았다.


여러 기기로 시도해보았고 크롬 웹으로 접근할 경우, 번거로운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객들이 갖는 변수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한 방법 대신 QA팀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당시 프로모션의 막바지라 모두가 바쁜 와중에 또 금요일 저녁이었기 때문에, 작업자들의 리소스를 고려해 확실한 문제 해결 방법보다는 가장 쉽고 빠른 작업 꼼수를 택했다.



그런데.. 나와 당시 작업자였던 개발자가 스테이징에서 테스트해 볼 생각을 못해본 것이다. (핫픽스 태울 거니깐,,)

QA팀에서는 당연히 사전에 테스트를 해야 하니 피처 플래그를 제안했고, 개발자 동료는 다시 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밤 10시까지 함께 남아 테스트, 배포 이후 국내/해외 스토어 프로덕션에서 정상적으로 운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같이 퇴근을 하는데 그때 또 다른 변수를 마주하게 되었다. ʕʘ‿ʘʔ


그래서 결국 우리 팀 개발자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새벽까지 작업을 하고 상황을 공유해주고 나서야 해당 이슈가 종결되었다.


Feature Flags (피처 플래그)
: 코드를 배포하지 않고 원격으로 기능을 비/활성화하는 데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로, 새로운 기능은 유저에게 노출되지 않고 배포할 수 있다.






 개발자님, 제 힘듦도 피처 플래그로 잠깐 꺼주세요.

이 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르겠다 ⇡▽⇡ 나의 무지함과 줏대 없는 선택이 사무치게 미안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조직개편 이후 처음으로 합을 맞춘 개발자였는데, 정말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자기였어도 그런 의사결정을 했을 거라며 되려 나를 다독여주었다.


처음으로 맡은 업무가 어렵거나 체력이 받쳐주질 않아서가 아닌 '내가 선택을 잘못하면 다른 사람까지 고생할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힘듦(?)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여파는 내가 이 일을 맡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진지하게 지금보다 규모가 작은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미 배포되어 버린 내 힘듦도 피처 플래그로 잠깐 끌 수 있다면, 그렇게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보이게 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O의 감정표현은 팀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뒤로 팀원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말수가 줄었고, 같이 밥을 먹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러자 한 동료는 스테이시는 가르쳐주는데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게 아깝지 않다고, 어떤 동료는 자기가 더 많이 일하고 짊어지더라도 스테이시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또 다른 동료는 자기도 다 겪은 감정과 과정이라며 함께 일찍 일어나고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하기를 제안했다. 모두가 사실은 나의 감정을 마주하고 있었고, 그에 크고 작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쓰나미가 온다면 거기서 서핑을 할 거야

6월 회고를 마무리하자면 한 마디로 힘들었다. 그렇지만 이 힘듦을 7월까지 가져갈 순 없다.

최근 우리 팀이었던 한 개발자가 퇴사하며 자신의 신념이 담긴 플래그를 건네주고 갔다. "쓰나미가 온다면 거기서 서핑을 할 거야." 그가 내게 남기고 간 말을 벗 삼아, 남은 2주 동안 나는 감정의 파도들을 즐겨보려 한다.


흠뻑 젖어야만   있는 바다의 시원함처럼, 흠뻑 몰입해야만 느낄  있는  역할과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한다.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파도 앞에 적어도 이제는 준비되어 있다. 드루와!


기나긴 6월 회고 마침.

숨이 벅차올라도 괜찮아요
아무도 그댈 탓하진 않아
가끔은 실수해도 돼 누구든 그랬으니까
- 이하이 한숨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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