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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May 22. 2022

일곱번째 꿈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아버지가 무엇을 주셨다. 침대에 누워서 떠올려 보았다. 과일인 것 같았다. 봉투 같은 것을 주셨던 것 같기도 했다. 과일과 봉투는 상관이 없는데 왜 두 가지를 떠올렸을까.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기록을 남겼어야 했는데 다시 잠들고 말았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에 동생과 통화했다. 동생은 최근에는 꿈에서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생한테 아주 어릴 때 아버지가 커다란 비닐봉지 가득 군것질거리를 담아서 양손에 들고 오셨던 기억이 나는지 물었다. 동생은 너무 옛날이라서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너무 많이 사서 놀란 동네수퍼 주인이 장사하러 가는지 물었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런 날에는 냉장고와 찬장에 먹을 것이 가득했다. 동생과 둘이서 먹으면 며칠 지나서 냉장고도 찬장도 텅텅 비었다.

Dmitry Demidov @ Pexels

이삼일 전에 첫째가 새벽에 잠꼬대를 했다. 갑자기 일어나서 귤을 먹고 싶다고 울었다. 첫째를 껴안고 등을 쓰다듬으면서 "저녁에 귤 사올께"라고 타일러도 다시 잠들지 못했다. 다른 방에서 둘째와 누워있던 아내가 와서 겨우 재울 수 있었다. 그날 퇴근길에 황금향인지 카라향인지 귤 비슷한 과일을 사왔다. 비쌌다. 제철에 귤은 한박스에 만원 정도였는데 다섯알 여섯알 들어있는 투명 플라스틱 한상자에 만원이었다. 첫째를 생각하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내가 먹고 싶었으면 사지 않았을 것이다. 소파에서 양손에 귤을 들고 먹는 첫째를 보면서 뭉클했다.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들 둘이서 무지막지하게 먹어서 힘들었 것 같았다.

Karolina Grabowska @ Pexels

생전에 첫째를 데리고 아버지를 뵈러 자주 갔었다. 그때는 첫째가 고구마 케이크를 좋아해서 아버지가 미리 케이크를 사놓고 기다렸다. 다같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부르고 촛불을 불었다. 갈때마다 고구마 케이크를 먹어서 첫째는 아버지를 고구마 할아버지라고 부를 정도였다. 가끔씩 간단한 음식과 과일을 담아서 가기도 했다. 대부분 냉장고에 보관하다가 버렸지만 메론을 맛있게 드셨던 기억이 났다. 락앤락에 조금 담아와서 감질났다. 메론을 사러 마트 몇 곳에 갔는데 시골이라서 그런지 없었다. 근처 메론 농장에 전화했는데 몇 주 지나서 출하된다고 대답했다. 그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으며 돌아다녔다. 그날 이후 다음주인지 다다음주인지 메론 한통을 사들고 찾아뵈었던 것 같다. 잘 드시지 못해서 반통을 잘라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남은 반통은 들고와서 아기들을 먹였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또 꿈에서 뵐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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